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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승일-대안연대 정책위원/경제학 박사
[특별기고] 정승일-대안연대 정책위원/경제학 박사
  • 정승일
  • 승인 2003.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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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따로, 외국자본 따로...이중 잣대가 한국 금융 교란” 노무현 정부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은행과 마찬가지로 보험 등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대주주 자격요건’을 법규에 명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업자본, 즉 재벌이 보험, 증권 등 제2금융권에 진출할 경우, 일정한 재무요건을 충족하도록 법에 명시하고, 진출 뒤에도 이를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대주주 자격요건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소유지분 처분명령을 포함한 강력한 규제조치를 내리는 방안이 현재 논의되고 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과 금융계열 분리청구제 도입도 검토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과 황제경영 이면에 금융계열사들이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전제로 깔려 있다.
최근 동부금융, 동부화재 등 금융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아남반도체를 인수한 동부그룹의 사례가 비난받고 있고, 또한 대한생명을 인수한 한화그룹의 대주주 자격도 논란거리다.
삼성생명 등 업계 1위 금융계열사들을 거느린 삼성그룹도 당연히 이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은행 대형화, 외국자본에 힘 실어주는 꼴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재벌의 대주주 자격을 거론하는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외국 자본, 그것도 투기자본에 의한 은행지배와 그로 인한 시스템 교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연 지난 5년 사이 급격하게 재편된 한국 금융시스템이 교란되고 있는 주요인을 재벌만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게 내 판단이다.
우선 현재 소규모 금융위기를 일으키고 있는 카드사 및 카드채 부실 문제를 보자. 삼성, LG 등 재벌계 카드사만 아니라 국민, 외환 등 은행계 카드사에도 부실은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
카드사 부실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경기부양을 목표로 한 김대중 정부의 카드사 감독규제 완화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또한 수익증대를 즐거워하며 가계대출, 카드대출을 대폭 늘려온 시중은행들의 지난 5년간의 영업 행태와 이를 격려한 정부의 금융정책 역시 카드사 부실의 중요한 요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계-카드여신 증가의 배경에 외국인 투자자본의 이익이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은행에 참여한 골드만삭스,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릿지, 한미은행의 대주주로 등장한 카알라일 등은 모두 은행업을 장기적으로 영위할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단기투자자들이다.
이들에게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한국 은행산업의 장기적 발전, 나아가 자신이 대주주인 은행의 장기적인 경쟁능력 창출은 관심사가 아니다.
수년간의 투자기간 동안 최대한의 이익을 내고 철수하면 그만이다.
이들은 인수은행의 주가와 수익을 단기간에 상승시키기 위해 최적의 방안을 찾았고 그 일환으로 은행합병, 가계-카드대출 증가를 이용했다.
가계-카드대출의 선두주자인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을 성사시켜 주가를 크게 상승시킨 골드만삭스는 불과 3년 만에 3배의 투자이익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도 합병을 소재로 한 주가상승 모멘텀을 창출하기 위해 뉴브릿지와 카알라일이 새로운 은행합병을 모색중이다.
외환은행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는 론스타 역시 마찬가지 행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재경부의 은행대형화 정책은 이들 외국 투기자본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돕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은행구조조정은 첫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97년 위기의 와중에서 해외자본 유치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내걸고 덜컥 금융시스템의 핵심인 시중은행 지배권을 외국 투기자본에 넘겨버린 탓이다.
대주주 자격요건을 제대로 심사하지도 않고서 말이다.
외국 투기자본의 문제점을 뒤늦게나마 인식한 정부와 국회는 은행, 보험 등 금융업을 영위하지 않는 자가 시중은행의 대주주로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은행법의 관련조항을 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금융주력자에 해당되지 않는 재벌 혹은 외국 투자펀드는 시중은행 의결권 주식의 10%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
이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카알라일, 뉴브릿지, 론스타 등이 모두 대주주 자격 심사에서 탈락할 수 있다.
따라서 논란의 초점은 이들 외국인을 금융 주력자로 볼 것인가 여부다.
지금 이와 비슷한 문제가 조흥은행을 인수하려는 신한금융지주회사의 경우에도 발생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회사는 조흥은행 인수에 필요한 3조~4조원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환우선주’ 1조6천억원을 발행하겠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금조달과 자기자본확충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우선주 인수주체로는 워버그핑크스와 같은 외국 투자펀드가 거론되고 있다.
이때 상환우선주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놓고 세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로, 만일 상환우선주를 자기자본으로 해석한다면 조흥은행 인수주체 대주주로 워버그핑크스라는 무자격자가 등장하는 문제가 생긴다.
비금융주력자의 은행 대주주 지위를 제한한 은행법 15조를 위배하는 것이다.
또한 은행법은 컴소시엄 등 단기투자 목적의 자본결합에 의한 은행 인수 역시 제한하고 있는데, 신한금융지주와 워버그핑크스가 결합된 컨소시엄 역시 불법이라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상환우선주를 차입금, 즉 부채로 해석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즉 워버그핑크스를 단지 채권제공자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은행법에는 저촉되지 않지만 금융지주회사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법은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100%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은 재벌그룹 부채비율 200%, 재벌 지주회사 부채비율 100% 규제와 마찬가지로 금융지주회사가 차입금을 동원하여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따라서 신한은행 등 자회사 주식지분을 제외한 자기자본이 3천억원에 불과한 신한지주회사가 1조6천억원의 차입금을 동원해 조흥은행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부채비율을 제한한 금융지주회사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이 두번째 문제다.
조흥은행 매각시 외국자본 경영 간섭 우려 이에 대해 신한금융지주측은 상환우선주를 말 그대로 우선주, 즉 의결권 주식도 차입금도 아닌 하이브리드 증권으로 해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본다면 분명 신한금융지주는 은행법도, 금융지주회사법도 어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을 수용할 경우엔 세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즉 재벌들도 하이브리드 증권을 이용해 자금조달에 나선다면 회계규정상 무엇이 자기자본이고 무엇이 차입금인지가 애매해지는 까닭에 재벌의 부채비율 200%, 100% 규정이 완전히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현재 금감위와 재경부는 신한금융지주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하게 재벌/제2금융권과 외국자본/은행을 차별하는 이중 잣대 적용이다.
게다가 조흥은행 인수자금의 대부분을 제공하는 워버그핑크스는 단기투자펀드의 성격상 단순히 차입금 제공자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명목상 의결권이 없다 하더라도 단순히 이자수익에 만족하지 않고 대주주 지위에 상응하는 여러가지 혜택을 얻기 위해 조흥은행 및 신한금융지주회사 경영에 간섭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재벌을 규제하기 위해 금융업에서 대주주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있는 정부가 외국 투기자본에는 오히려 규제를 없애고 있는 꼴이다.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의 근본 취지를 위반하면서까지 말이다.
일관성을 결여한 이 같은 이중잣대 적용은 금융시스템 안정 확보라는 금융감독의 기본 임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금융산업이 산업자본으로부터 분리, 보호되어야 한다면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도 분리, 보호되어야 한다.
SK그룹의 지배권을 노리는 소버린/크레스트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늘날 한국의 대기업 및 금융시스템을 교란하는 최대요인은 재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외국 (투기)자본이다.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외국 자본의 이익과 결합된 은행 대형화 정책과 가계-카드 대출 증대가 초래한 89조원 카드채 부실 사건은 외국 자본의 경제지배가 초래할 심각한 위험성의 단초를 보여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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