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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이진순 숭실대 교수
[사람들] 이진순 숭실대 교수
  • 이승철 기자
  • 승인 2003.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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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에서 시장 해방시키자”


DJ 정부 초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서 4대부문 구조조정 등 경제개혁과제 입안을 주도했던 이진순(53) 숭실대 경제국제통상학부 교수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한국경제 위기와 개혁>이라는 책을 발간한 것이다.
“3년간 KDI 원장이라는 분에 넘치는 자리를 맡았으니, 국민에게 보고서를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DJ의 경제자문그룹인 ‘중경회’ 멤버였던 이 교수는 “1990년부터 DJ와 정기적 토론을 거치면서, 관치를 청산하자고 오래 전에 의기투합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DJ 정부가 결국 관치를 법적·제도적·인적으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완의 개혁에 머물렀노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99년 10월 대우사태 때가 관치의 망령이 부활한 분기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 전 ‘4·3 카드사 대책’에서 똑같은 잘못이 반복된 것을 안타까워한다.
“한국은행이 나서서 유동성을 일시 공급할 수는 있지만, 왜 시중은행에까지 책임을 전가해 개별 기업의 리스크를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시키느냐”는 것이다.


DJ 정부 초 시중은행 퇴출과 빅딜 정책은 관치가 아니냐고 묻자, “은행 퇴출은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뜨린 옳은 정책이었지만, 빅딜은 명백한 관치로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실패작으로 끝났다”고 별개의 평가를 내렸다.


이 교수는 각종 ‘경제법’을 철폐할 것을 역설한다.
그는 국가가 사법(私法)을 무시하고 경제주체를 지시, 통제하려는 일체의 법으로 경제법을 정의한다.
“공무원은 죽었다 깨어나도 스스로 관치를 없애지 못합니다.
” 그래서 그는 개헌의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관치경제의 근거가 되는 헌법 제119조 2항 ‘국가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는 부분을 삭제하면, 여러 경제법 조항이 줄줄이 위헌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경제법에 대해 적극 위헌판결을 내리면 관치 철폐에 앞장설 수 있다”며, 처남인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에게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단다.


정부에 참여한 개혁파 학자와 관료의 끊임없는 불화설에 대해 묻자, 민감한 문제라며 고개를 젓는다.
자신도 관료들과 싸우느라 한때 불면증과 소화불량에 시달렸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더라고 토로했다.
“DJ 정부 조각 무렵 경제장관을 관료가 아니라 시장에서 발탁하고자 열심히 물색했어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같은 인물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더군요. DJ가 개혁 인재 풀이 없으니 보수세력을 쓰게 된 겁니다.
그건 현 정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그도 기존 관료집단을 보수세력으로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면 정부에 참여했던 학자들은 번번이 실패만 한 것인가. “아닙니다.
적어도 자본시장을 전면개방하고 대마불사를 청산함으로써 시장경제로 물꼬를 텄다고 자부해요. 앞으로 관치국가 청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특히 기업, 금융분야에서 개혁주체 세력을 만드는 겁니다.
” 이 교수는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꿈꾸다가 학계로 돌아선 경험이 있다.
그만큼 분배문제에 남달리 주력했던 그는 “지금은 소득재분배를 위해서도 시장원리가 가장 중요하고, 시장경쟁을 통해 분배를 가장 잘할 수 있다”며, 관치로부터 시장을 해방시킬 것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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