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6:34 (금)
[글로벌] 미국-세기의 합병, ‘파경’으로 치닫나
[글로벌] 미국-세기의 합병, ‘파경’으로 치닫나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05.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OL타임워너, 적자·부채규모 ‘눈덩이’…회계조작 혐의도 분리 주장에 힘실어

지난 2000년, ‘세기의 합병’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온라인-오프라인 최강자들인 AOL과 타임워너가 뭉쳐 만든 AOL타임워너의 앞날에 갈수록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애초 기대했던 합병의 성과가 나타나기는커녕, 실적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면서 두 회사가 예전처럼 각자 제 갈 길을 가야 한다는 압력이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힘을 얻는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규모인 1천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던 AOL타임워너는 여전히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2002년 말 기준으로 총부채 규모는 275억달러에 이른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1분기 동안 부채가 312억달러로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오는 2004년 말까지 부채규모를 200억달러 내로 줄이겠다던 경영진의 공언을 무색하게 만드는 상황인 셈이다.



AOL, 다른 사업부문 성적 깎아먹어

회사측은 비주력 사업분야 매각을 통해 20억~40억달러를 조달하는 등 부채를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영진의 기대만큼 성과를 거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기에 6월말까지 타임워너케이블의 기업공개를 끝내고 20억달러의 자금을 마련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여름이 끝난 시점에서나 기업공개 작업이 비로소 시작될 것이라 보고 있다.


공룡기업 AOL타임워너가 이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바로 닷컴 신화의 상징인 AOL의 위세가 크게 꺾인 데서 비롯한다.
두 회사의 합병소식이 알려질 당시, 사람들이 드디어 온라인시대가 승리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도 결국 AOL이 덩치가 훨씬 큰 타임워너를 인수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AOL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압도적인 건 물론이다.


AOL은 이 회사 전체 사업부문 가운데 지난해 동안 전년도에 비해 이윤이 줄어든 유일한 사업부문이다.
옛 타임워너 계열사인 워너브라더스와 HBO가 각각 <해리포터>와 <소프라노>라는 걸출한 히트작을 내놓은 것과는 달리, AOL의 성적표는 그야말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쯤 되면 미운 털이 톡톡히 박히기에 충분한 셈이다.
타임워너로서는 온라인 사업부문인 AOL과 함께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말들이 내부에서 서슴없이 나올 만큼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는 상태다.
현재의 합병회사를 계속 끌고갈 경우, 결국 옛 타임워너 계열의 알짜배기 기업들을 내다팔 수밖에 없을 것이란 두려움도 비난 여론을 확대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오는 5월 이사회 의장직에서 사임하는 AOL 창업자 스티브 케이스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사건이 터져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합병 이전 AOL이 독일 미디어기업인 베텔스만과의 온라인 광고거래 매출액을 의도적으로 부풀렸다는 혐의를 잡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나섰다.


AOL과 베텔스만의 관계는 예로부터 늘 화젯거리였다.
베텔스만의 전 이사회 의장이었던 토마스 미델호프는 90년대 중반 이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해 5천만달러를 AOL에 투자하게 함으로써 훗날 몇년 만에 시가기준 지분평가액을 100억달러로 늘리게 한 장본인이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그는 이후 베텔스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권을 휘둘러왔다.
하지만 미델호프 역시 베텔스만의 실적부진에 대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물러난 상태다.
두사람의 운명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이런 극적 요소도 보탬이 됐다.



일부 주주 “합병 사기” 소송 진행중

하지만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사건의 폭발력을 좀처럼 가늠하기 힘든 까닭은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법정소송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탓이다.
지난해 10월, 일부 주주들은 AOL이 타임워너를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하기 위해 AOL의 기업가치를 실제 이상으로 부풀렸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거짓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합병은 곧 사기”란 주장을 편 셈이다.
지난 2000년 두 회사가 합병할 당시, AOL은 타임워너의 주주들에게 타임워너 주식 1주당 50달러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기까지 했다.
만일 증권거래위원회가 밝힌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당시 합병과정에 관여했던 전현직 경영진들은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그 중심에 스티브 케이스가 있음은 물론이다.
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 언스트영이나, 컨설팅 파트너였던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도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물론 그 파장은 단순히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때 온라인 최강자로 군림하던 AOL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며 회사 전체에 부담을 안겨주는 상황에서, 합병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인정될 경우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지금보다도 더욱 힘을 받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