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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홈쇼핑 ‘괴담’의 진실
[커버] 홈쇼핑 ‘괴담’의 진실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3.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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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신세계 입성 소문 무성…당사자들 부인 속 업계 바짝 긴장

이른바 ‘홈쇼핑 괴담’이 업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괴담’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오프라인 유통을 주름잡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가 차세대 사업으로 홈쇼핑 진출을 노리고 있다.
” 그런데 다른 유통업태와 달리 홈쇼핑은 진입장벽이 꽤 두텁다.
방송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진입장벽 자체가 허물어지길 기다릴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요원하다.
따라서 롯데와 신세계가 홈쇼핑에 진출하려면 기존 홈쇼핑 5개 업체 가운데 한곳을 인수하는 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4년 상반기가 되면 후발 3개업체의 지분변동금지 규제가 풀린다는 점에서 이번 ‘괴담’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진 홈쇼핑에 군침을 흘려온 롯데와 신세계의 행보가 좀더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진출은 업계 판도를 뒤바꿀 가능성이 있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홈쇼핑업계는 선발업체는 선발업체대로, 후발업체는 후발업체대로 조심스레 앞으로 일어날 지각변동을 점쳐보고 있다.



후발업체 인수설 구체적으로 나돌아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롯데나 신세계가 후발 3사 가운데 한곳을 인수하는 것이다.
현재 홈쇼핑업계는 LG홈쇼핑과 CJ홈쇼핑 등 2개의 선발업체와 지난 2001년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현대홈쇼핑, 우리홈쇼핑, 농수산홈쇼핑 등 3개의 후발업체 구도로 나뉘어 있다.
사업승인장을 교부받던 당시 후발 3사는 “3년 이내에 구성주주와 출자지분 변경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방송위원회에 써냈다.
따라서 약속기한인 2004년 5월27일(우리, 현대)과 6월3일(농수산)이 지나면 후발업체들의 주주변경이 자유로워지게 된다.


후발 3사 중에서도 표적이 되는 곳은 우리와 농수산이다.
다른 업체에 비해 자금력이 달린다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홈쇼핑업체들은 2~13번에 이르는 이른바 ‘로(Low)채널’을 확보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선발업체인 LG와 CJ는 전국 각 지역의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에 대여 또는 출자형태로 150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결과로 두 업체는 로채널을 85~90% 가까이 확보하고 있다.
또한 후발업체 중에서도 현대백화점을 등에 업고 있는 현대홈쇼핑은 1300억원가량을 SO투자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우리나 농수산은 그만한 자금 여력이 없는 탓에 로채널을 확보한 비율이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쟁이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까지도 “막강한 자금력을 갖고 있는 롯데가 우리홈쇼핑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은 꽤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롯데가 SO에 대한 투자비용을 포함해 3천억원의 인수대금으로 우리홈쇼핑을 인수하기 위해 접촉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이에 대해 롯데쪽은 “사실무근”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롯데그룹 최형 이사는 “브로커들의 입소문일 뿐 인수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올해는 지난해 인수한 미도파나 TGIF, 올 초 인수한 현대석유화학 등의 사업 안착화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인수대상 업체로 거론된 우리홈쇼핑 임채병 상무도 “주요 주주인 경방과 아이즈비전이 모두 우리홈쇼핑을 주력사로 삼고자 할 만큼 애착을 갖고 있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롯데가 지난 2001년 신규 사업자 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이후로도 끊임없이 홈쇼핑 진출에 대한 내부검토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근거는 이렇다.
할인점인 롯데마트는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비교적 일찌감치 시작했던 인터넷 쇼핑몰 롯데닷컴도 LG이숍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다.
LG이숍은 TV홈쇼핑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결국 롯데는 백화점말고는 이렇다 할 차세대 주자가 없는 것이다.
특히 2006년까지 할인점 투자에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신세계에 비해 홈쇼핑을 향한 롯데의 행보는 좀더 빠른 것으로 감지된다.



CJ홈쇼핑 매각설, LG·롯데간 빅딜설도

롯데가 우리를 인수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동원증권 송계선 연구원은 “롯데가 들어오면 시장 자체는 커지겠지만 선발 2개사에 상당히 위협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LG와 CJ, 현대에 이어 롯데까지 대기업 4강구도가 형성되면 그야말로 치열한 한판 경쟁이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3위업체인 현대홈쇼핑의 경우 롯데의 진출 여부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롯데가 후발업체를 인수하지 않고 아예 선발업체를 인수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 지난 3월 CJ홈쇼핑이 그룹의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롯데에 매각의사를 타진해왔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런 시나리오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CJ홈쇼핑의 한 관계자는 매각설은 극구 부인하면서도 “후발업체를 인수할 경우 재미를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선발업체를 따라잡으려면 추가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다, 현대의 경우를 봤을 때 자금력있는 업체가 투자한다고 해도 그 격차를 쉽게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간간이 제기돼왔던 LG와 롯데의 빅딜설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그룹간에 유화와 유통부문을 맞바꾸자는 것이다.
롯데로서는 LG의 유통부문을 모두 가져오게 되면 편의점 1위 업체인 LG25까지 가져올 수 있는 것이어서 홈쇼핑 진출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LG나 CJ가 현재로서는 홈쇼핑 사업을 놓치 않으려고 한다는 데서 선발업체 인수설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LG홈쇼핑의 최대 주주는 (주)LG(30%), CJ홈쇼핑의 최대 주주는 CJ(30%)다.
인수가 성사되려면 그룹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CJ홈쇼핑 김홍창 부사장은 “식품과 신유통, 엔터테인먼트, 생명공학 등 그룹의 4대 사업군을 구축했고 홈쇼핑은 신유통 사업부문의 중심축”이라며 미래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라고 강조한다.


이런 가운데 롯데나 신세계가 홈쇼핑 진출을 그다지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존 업체들에 비해 기왕 늦은 만큼 좀더 신중하게 진출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시말해 홈쇼핑이 장기적으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하상민 연구원은 “할인점에 뛰어들 때처럼 무조건 돈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진출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과다경쟁체제에 돌입했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기간도 언제가 될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올 들어 홈쇼핑업계의 고속성장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이런 관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업계 1위 업체인 LG홈쇼핑은 4월25일 1분기 영업실적을 공개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매출액이 417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성장률이 -1%로 오히려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년에 비해 101% 성장률을 보였던 것을 고려하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CJ홈쇼핑도 올 1분기에 3470억원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1% 성장에 그쳤다.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125.6%의 성장률에 비하면 큰 차이를 보인다.


실제 불황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은 접어두고라도 지난해 케이블TV 시청 가구수가 1020만가구로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초고속 성장기는 막을 내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증권가에선 “LG와 CJ홈쇼핑이 과거 연평균 76%의 성장을 보였지만 향후 3년간은 잘해야 18% 정도로 그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가뜩이나 반품률이 높아 골치였는데, 후발업체인 현대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후 과열경쟁으로 마케팅 비용까지 높아져 수익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홈쇼핑 5개업체가 저마다 고객들의 반복구매율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상품군을 발굴하고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는 차별화 전략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존 5개업체간 인수합병 시나리오도

자연스레 롯데나 신세계도 내부적으로는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세계 관계자는 “초창기 홈쇼핑에 진출하려면 1천억원대로 투자비가 얼마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몇배로 뛰었다”며 “아직까지는 이마트 점포를 몇개 더 출점하는 게 훨씬 수익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롯데쇼핑 관계자도 “시장상황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기존 유통업태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신중함을 보였다.


롯데와 신세계의 진출이 요원해질 경우 기존 5개업체간 인수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홈쇼핑업계 일각에서는 지난 2001년 후발업체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이미 이동통신 시장 상황과 흡사해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동통신 시장은 초기에 011이 시장을 독점하다가 017을 비롯해 PCS 3사인 016, 018, 019가 등장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체력이 떨어진 018이 016으로, 017이 011로 흡수되면서 현재의 통신3강 체제가 구축됐다.
홈쇼핑 시장 역시 경쟁이 심화하면 선두업체와 자금난에 시달리는 후발업체간에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형성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홈쇼핑업계의 재편구도를 묻는 질문에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섣불리 단언하긴 힘들다.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툭툭 불거져 나오는 홈쇼핑 괴담에 업계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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