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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0월이 오면 위기도 온다
[커버스토리] 10월이 오면 위기도 온다
  • 박종생
  • 승인 2000.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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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나라 인터넷 기업들에게는 ‘겨울’이 빨리 찾아올 것 같다.
그것도 아주 혹독한 한파가 몰아닥칠 것으로 보인다.
dot21은 5월19일부터 2주일 동안 전국 65개 벤처캐피털에 소속된 벤처캐피털리스트 100명을 대상으로 ‘벤처기업 위기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여기에는 10명의 벤처캐피털 사장과 25명의 임원들이 포함돼 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이들이 벤처기업에 실제 투자했고, 사후관리까지 해오고 있어 벤처기업의 실상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 4분기 유동성 위기 절정 조사결과 인터넷 기업의 유동성 위기는 그리 멀지않은 시기에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미 시작됐다는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올 3분기부터 시작해 올 4분기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인터넷 벤처기업에 유동성 위기가 언제 올 것이냐’는 질문에 4분기라는 응답자가 39명(39%)으로 가장 많았으며, 3분기라고 응답한 사람이 28명(28%)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어 내년 상반기(17명), 내년 하반기(7명) 등 순이었다.
결국 전체 응답자 100명 중 67명이 올 하반기에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본 것이다.
‘위기를 겪을 인터넷 기업 비중이 얼마나 될 것이냐’는 질문에 인터넷 기업 중 50%가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7명(27%)으로 가장 많았다.
30%가 위기를 겪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18명(18%)으로 그 뒤를 이었다.
또 70%와 80%에 이를 것으로 보는 사람도 각각 11명이었으며, 90%에 이를 것으로 본 사람은 3명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평균은 47% 정도로 현재 인터넷 기업 중 절반 가까이가 심각한 자금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전체 응답자 가운데 25명(25%)은 올 4분기에 인터넷 기업 중 평균 63%가 유동성 위기를 겪을 것으로 내다봤으며, 17명(17%)은 올 3분기에 인터넷 기업 중 평균 62.8%가 유동성 위기를 겪을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전체 응답자 중 42명(42%)이 올 4분기까지 인터넷 기업 중 평균 62.9%가 유동성 위기를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벤처캐피털리스트 100명 중 42명이 올 4분기까지 벤처기업 100개 중 62.9개가 유동성 위기를 겪을 것으로 예측한 것으로, 상당히 충격적인 전망이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지금 벤처기업을 보는 시선은 상당히 차갑다.
이런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 벤처투자를 둘러싼 외부시장 상황의 악화에도 일부 있지만, 상당수는 그렇게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인터베스트의 정성인 부사장은 “인터넷업체들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장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적정주가 168포인트 이런 점은 코스닥지수와 인터넷 기업의 주가와 관련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조사가 진행되는 기간 중 코스닥지수는 130포인트대에 머물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도 인터넷기업들의 주가가 고평가됐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4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적정하다’(17%), ‘저평가됐다’(16%) 등 순이었다.
인터넷 기업들에는 아직도 거품이 남아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코스닥 적정지수를 얼마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예측의 자의성을 우려해서인지 58명만이 응답했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자 중에는 200∼219라는 응답이 22.4%로 가장 많았으나, 200 이하라는 응답이 65%나 나왔다.
전체 평균은 168포인트였다.
올 초 290포인트까지 올라갔던 코스닥지수는 거품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인터넷 기업의 거품 원인에 대해서는 흔히 얘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익모델의 부재를 가장 많이 꼽았다.
50명이 이렇게 대답했다.
또 코스닥의 ‘묻지마 투자’와 인터넷 기업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응답(9명), 수익성이 검증되지 못한 상태에서 벤처붐 및 코스닥 활황으로 시중자금이 과잉공급됐기 때문이라는 응답(8명)도 적지않게 나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벤처기업들에게 유동성 위기가 심각하게 다가올까.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미 자금을 확보해 이른바 실탄이 있는 기업들은 당분간 괜찮을 것이고, 아직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앞으로 자금 마련이 어려운 업체들은 고난의 시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얘기다.
이들 기업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난해나 올해 초에 코스닥에 등록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은 대부분 코스닥 활황을 기회로 자금을 풍부하게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지만 한겨레IT 기업평가센터가 코스닥 IT기업 132개의 올 1분기 실적보고서를 토대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단기 유동성이 좋지 않은 벤처기업들도 적지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의 단기유동성을 드러내는 지표인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이 일반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 기업이 30여개에 이른다.
이 기업에는 드림라인, 삼진, 메디다스, 한국정보통신, 디지털임팩트 등이 포함된다.
(<표> 참조).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은 각각 유동자산과 당좌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수치로, 각각 2, 1 정도를 넘어서면 일반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다음, 이익 창출하거나 신규자금 유치해야 또 영업이익을 통해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를 측정하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기업도 22개에 이르렀다.
(<표> 참조) 특히 골드뱅크, 다음, 새롬기술, 인터파크 등 인터넷 대표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이 1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나타남에 따라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이거나 1 이하라는 것은 영업활동을 통해서는 이자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내 인터넷 기업들의 현주소를 잘 드러내준다.
물론 이들 기업들은 주식발행초과금 등으로 영업외수익이 많은 경우도 있다.
새롬기술과 골드뱅크는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이 높아 단기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파크도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이 각각 4.0, 3.9로 마찬가지였다.
반면 다음은 유동비율이 1.7로 나타나 이른 시일 안에 이익을 창출하거나 신규자금을 유치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이들 지표들은 현재 시점에서의 유동성을 분석할 때는 유용하지만 각 기업의 향후 성장성이 감안되지 않은 수치여서 한계를 갖고 있다.
두번째는 코스닥에 등록은 되지 않았지만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은 경우다.
주요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은 벤처기업은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기업은 벤처캐피털로부터 대개 수십억원의 자금을 조달받았기 때문에 당분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얘기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식시장의 침체가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에는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한국아이티벤처투자의 연병선 사장은 “인터넷 기업의 경우 수입보다 비용이 훨씬 많으며 연말까지 역전이 안된다는 게 지배적 견해”라며 “우리의 경우에도 연말에 투자기업을 평가해 2년 정도 더 버틸 수 있도록 추가 투자할지 아니면 투자를 중단할지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절반 정도”라고 덧붙였다.
군소 벤처캐피털들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벤처투자시장이 과열상태였던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투자를 한 벤처캐피털들은 지금 증시 침체 여파로 자금이 묶여 있는 상태”라며 “군소 벤처캐피털의 70∼80%는 이미 투자를 ‘올 스톱’한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 군소 벤처캐피털들은 이미 투자한 기업에도 후속투자를 할 여력이 안되기 때문에 해당 벤처들은 조만간 위기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도 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앞으로 가장 열악한 처지로 몰릴 기업들은 아무래도 인터넷 공모를 통해 9억9천만원 이하의 자금을 모았거나, 소규모 자금으로 최근 설립한 벤처기업들이다.
신흥증권 김관수 벤처투자팀장은 “9억9천만원 정도의 자금을 모은 기업들은 이 자금으로 보통 반년에서 1년 정도는 기업을 꾸려나갈 수 있다”며 “그러나 그 뒤에 추가로 자금조달을 하지 못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군소 신생 벤처기업들이 인터넷 공모를 주로 한 시기는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초다.
그렇기 때문에 올 하반기에 들어가면 자금난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또 설령 코스닥이 다시 활황세를 보여 벤처투자시장에 햇살이 비친다 해도, 이제는 경쟁력이 의심되는 업체에는 투자를 기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는 기업인데도 벤처붐에 휩쓸려 경쟁적으로 투자를 했다가 막대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이제까지의 뼈아픈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열악한 곳은 신생 벤처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고민스럽다.
인터넷사업에서 수익을 올리는 게 쉽지 않은데다 자금시장마저 악화해 있기 때문이다.
한 벤처캐피털업체 사장은 “인터넷 기업의 경우 수익모델 찾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원론적으로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가급적 빨리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최대한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크게 두가지 정도를 제안하고 있다.
우선 해외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다.
KTB네트워크의 박훈 이사는 “경쟁력있는 기업들은 국내의 증시상황으로 인해 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면 해외에 나가서 펀딩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국내 벤처들은 일본이나 홍콩, 유럽 등보다 경쟁력이 앞서는 만큼 이들 국가로 사업진출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나는 국내 업체간 인수합병(M&A)이다.
이것은 국내 대표적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이구동성으로 주문하는 사항이다.
수익창출이 안되는 기업들은 빨리 큰 사이트의 일부로 들어가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이트벤처의 신장철 이사는 이를 “벤처가 죽어야 벤처가 산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경쟁력없는 벤처가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돼야 그나마 경쟁력있는 업체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M&A를 기피하는 정서가 팽배해 있어 이 방법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좀비’(zombi)라고 불리는 벤처기업들이 있다.
경쟁력이 없어 기업공개시장(IPO)에도 못 나가고 그렇다고 M&A 대상도 안되는 기업들로, 그렇고 그렇게 연명하는 회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곧 이런 ‘좀비 벤처’들이 사회문제로 대두할 것으로 보인다.
박종생 기자 park@hani.co.kr 김찬수 연구기자 cskim@dot21.co.kr 이정환 기자 jlee@dot21.co.kr
“생명공학에 유혹당하다”
국내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현재 어떤 업종에 투자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떤 곳에 투자하고 싶어할까. dot21은 100명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에게 현재 투자 포트폴리오의 내역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정보통신 부문이 33.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기전자(23.4%), 인터넷 서비스(18%), 기타(17%), 소프트웨어(14.2%), 생명공학(11.9%) 등 순이었다.
이 결과를 보면 요즘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부문에도 벤처캐피털들이 투자를 적지않게 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앞으로 투자에 중점을 두고자 하는 사업분야를 자유문답식으로 세개씩 적어내게 한 결과, 생명공학 부문이 17.8%로 가장 많은 응답자가 나왔다.
이는 앞으로 우리나라 벤처캐피털들도 생명공학 부문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물론 IT분야는 세부항목별로 분류했기 때문에 부문별 순위에서 생명공학이 1위를 차지했다고는 볼 수 없다.
(<표> 참조) 그 다음은 네트워크(16.4%) 분야였다.
이어 정보통신(13.2%), 인터넷 솔루션(8.2%), 반도체(7.1%), 무선인터넷(6%), 통신장비(5.7%),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4.6%), 인터넷 서비스(4.6%) 차례였다.
주목되는 것은 벤처캐피털 사장과 임원 3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생명공학 부문이 19.6%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보다 오히려 더 많은 답변이 나왔다는 점이다.
또 인터넷 솔루션의 경우에도 사장과 임원들은 12%나 투자유망 분야로 꼽았다.
사장과 임원은 최종 투자결정권을 갖고 있는 만큼 이들 분야는 실제 투자로 연결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네트워크 분야에서는 임원급 이상이 8.7%만을 꼽아 대조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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