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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김순진 (주)놀부 대표
[사람들] 김순진 (주)놀부 대표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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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솥밥 경영으로 불황 이긴다”


조리란 참 묘하다.
신경 조금 더 썼다고, 손길 한번 더 갔다고 맛이 확 달라지곤 한다.
사람 사귐도 그 같을까. 적어도 (주)놀부 사람들은 그런 것 같다.
놀부 직원의 이직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단다.
창립 16년째인 회사의 이직률이 그리 낮다는 게 믿기지 않아 지나가는 젊은 직원 한명을 붙잡고 슬며시 물으니 맞다며 자기도 입사한 지 10년째라고 한다.


이것은 세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놀부를 떠나는 사람이 없다.
놀부가 내치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했어도 놀부는 망하지 않았다.


망하긴커녕 놀부의 경영실적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놀부 본사 총 매출은 400억원이다.
놀부보쌈, 놀부부대찌개 등 가맹점 수는 322개로 지난해만 53개가 늘었다.
올해 들어서만도 70여곳에서 놀부 개업을 계획하고 있다.
놀부는 지난 3월 직원 급여를 11% 인상했다.
다들 불황이라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되레 곳간을 푼 것이다.


놀부 김순진(51) 대표는 “역수를 뒀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기업 수익이 늘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직원들 사기를 더 살리려고 급여를 올렸단 얘기다.
“그저 한솥밥을 먹는 게 한식구가 아닙니다.
어려울 땐 먹던 밥도 퍼주는 게 한식구예요. 저 사람 입에 들어갔던 숟가락이 내 밥그릇에 쑥 들어와도 아무렇지 않아야 한 식구죠.” 그의 역수가 먹혔는지 올해 들어 놀부 수익은 지난해보다 더 늘었다.


그는 호황일 땐 직원들한테 가족 운운하다가 불황이 오면 직원들을 자르는 일부 대기업들의 경영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다.
“경제가 어렵다고 어떻게 한식구를 내몰아요. 진짜 식구라면 더 감싸안아야지. 남은 사람들 마음은 어떻겠어요.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할 거 아녜요. 그런 회사엔 역동성이 생기질 않아요.”

호황 때 하는 게 경쟁이라면 불황 때 하는 건 전투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싸움에서 직원들의 사기, 기업의 역동성은 매우 중요한 무기다.
이것이 김 대표의 경영 철학이자 전략이다.


그의 ‘한 밥그릇’ 철학만으로 놀부가 잘나가는 건 아니다.
그는 가맹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일한 브랜드 이미지, 동일한 음식맛을 유지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본사 이익과 점포 이익이 일치해야 그게 가능해요.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 교육은 본사와 가맹점의 공동체 의식을 높여준다.


교육으로 전파되는 노하우는 상당히 정교하다.
철마다 조리기술서가 달라질 정도다.
보쌈 속을 예로 보자. 겨울 내 묵은 봄 무는 양념에 버무려도 수분이 많이 빠지지 않으니 가늘게 썬다.
물이 오른 가을 무는 탈수가 많으니 굵게 썬다.
무의 당도가 낮은 봄엔 보쌈 속에 배와 설탕을 더 넣는다.
철이 바뀌어도 아삭아삭 시원한 보쌈 속맛은 그렇게 유지되고 있었다.


보쌈용 돼지고기 삶는 법 등 세세한 조리비법을 모두 경영진이 개발하긴 어렵다.
토론회, 품평회를 통해 직원, 점장 등 전 구성원간 지식 공유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면 놀부의 정교한 비법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지식경영시스템 따위 수많은 학술용어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런 용어 하나 몰라도 초등학교 졸업 학력 창업자와 놀부는 여지껏 성장했다.
지식보다 마음. 어쩌면 경영은 조리와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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