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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공급은 실종 장기채 시장 시들시들
[커버] 공급은 실종 장기채 시장 시들시들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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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간다.
6월 둘째 주 주가가 신나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동안 금리는 팍 고꾸라져 6월11일엔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1990년대 말부터 금리는 쭉 주가와 동행했었다.


외국인의 움직임도 주식시장과 다르다.
외국인들은 주식시장에선 현·선물을 양쪽으로 사들이며 지수상승을 이끌었지만, 채권시장에선 국채 선물을 공격적으로 매수하면서 금리하락을 주도했다.
한국기업은 좋아지는데 한국경기는 좋아질 가망이 없다고 보는 걸까? 의문은 이어진다.


장·단기 금리도 뒤집어졌다.
원래 장기 금리는 단기 금리보다 높다.
투자기간이 긴 만큼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6월11일 3년짜리 국고채가 하루짜리 콜금리보다 0.01% 낮은 금리에 거래되는 사건이 터졌다.
사상 두번째 기현상이다.
왜? 어떻게? 이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선 시장 저 밑 깊은 곳, 정부정책과 세계 통화전쟁의 영역으로 시선을 던질 필요가 있다.





6월11일 오전 11시20분, 서울 금융가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3.99%. 3년만기 국고채 금리가 한국 금융 사상 최저치를 갱신했기 때문이다.
다음날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가 더 인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시장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매매 주문엔 ‘팔자’는 나오지 않고 ‘사자’만 쏟아졌다.
당연히 채권값은 상승, 즉 금리는 하락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반영됐다.
6월말에 발표될 5월 거시지표가 4월보다 더 나빠질 것 같다는 우려, 6월24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 미국달러 약세가 지속되면서 유럽과 일본이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미국채를 사들일 것이라는 추측….

하지만 금리를 끌어내린 가장 강력한 요인은 뭐니뭐니 해도 ‘수급’이었다.
한 보험사 채권 운용역의 말이다.
“시장이 관성의 힘으로 가고 있다.
수급이 큰 변수다.
국고채 장기물 발행이 너무 늦춰졌다.
그 와중에 시장에 왜곡이 생겼다.
채권을 수집하는 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놓는 물량이 없어 금리가 하락했다.
기관들 입장에선 국채 발행 물량이 지난해보다 적은 상태에서 물건을 내놓으면 다시 살 수가 없다.
그러니 ‘팔자’ 주문은 없고 ‘사자’만 나온다.



정부 개입으로 국고채 금리 상승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는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재경부 권태신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은 12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이나 예금보험기금채권을 동원해 국채시장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평채와 예보채를 국고채와 통합 발행해 국채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통화안정증권을 통해 통화공급을 조절하고 있는 한국은행도 만기 1년 이하 단기물 발행을 중단하고 만기 1년 6개월 이상짜리 장기물 발행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에서 통안증권은 물량이 모자란 국채를 대신해 국채 투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발표 직후 국고채 금리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13일 오전장에선 3년만기 국고채가 금리 4.08%, 5년만기 국고채가 금리 4.19%를 기록했다.
채권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은 금리가 3%대로 또 다시 떨어지더라도 오래 머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이들은 국고채와 통안증권 물량 증가를 기대한다.


정부는 당초 국고채를 올해 28조9천억원어치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6월 현재까지 발행된 물량은 10조 남짓. 앞으로 시장엔 18조원 이상의 국고채가 나올 전망이다.
특히 9월께엔 예보채와 자산관리공사채권 14조원어치가 국고채로 바뀌어 무더기로 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금리 추세가 반전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 국채 물량은 OECD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다.
2001년말 GDP 대비 국채 발행 잔액을 보면 우리나라가 16.1%, 미국이 29.1%, 일본이 76.5%였다.


게다가 채권의 최종 수요처인 보험사, 연기금의 운용자금은 꾸준히 늘고 있다.
기관들엔 유동성이 차고 넘친다.
외평채, 예보채를 국채로 바꾸고 통안증권의 만기를 늘린다고 국채에 대한 넘치는 유동성이 흡수될 수 있을까? 외평채, 예보채, 통안증권은 벌써 시장에선 국채처럼 통용되고 있다.
채권 펀드매니저들은 한은과 재경부의 조치로 금리가 당분간 4% 이하로 떨어지진 않겠지만 이것이 곧 추세 전환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본다.


외국인의 국채 선물 매수세도 금리상승을 제한하고 있다.
11일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것도 이날 국채선물가격이 110.83까지 치솟으면서 엿새째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데에 큰 영향을 받았다.
즉,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 더 독(Wag the dog)’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국채 선물이란 미래의 국채를 미리 사놓는 것을 말한다.
즉, 미래의 채권 금리가 어떻게 될지를 놓고 투자자들이 배팅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국채를 선물로 사들이고 대금 결제를 하지 않은 계약을 나타내는 순매수미결제약정을 보면 외국인들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가 나타난다.



금리 재하락 가능성 여전히 상존

이에 대해 국민선물 박종연 연구원은 외국인들이 우리 국채 금리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우리 경제에 아직 회복 신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원화 환율은 1192원으로 상당한 강세를 보인다.
달러 약세 때문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구조에서 이런 강세는 좋지 않다.


미국, 일본, EU가 자국 통화의 강세를 막기 위해 금리인하 전쟁을 벌이게 되면 우리나라만 독야청청 콜금리 4%를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
금리 강세는 곧 통화 강세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 경제의 호조는 달러 약세에서 힘을 얻었고 달러 약세는 미국채의 저금리 기조로 지지를 받고 있다.
동원투신 황보영옥 채권팀장은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내다본다.


저금리는 시중자금의 단기화를 촉발한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 채권운용팀 오주호 팀장은 “지금보다 금리가 더 떨어지면 장기운용이 어려워지므로 2~3년 뒤 시장 상황이 좋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주식이나 채권 단기물 투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금이 단기화되면 시장은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게 된다.


통화전쟁이든, 채권수급이든 개별 기업이나 개인이 대처할 만한 영역의 일은 아니다.
정부가 능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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