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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경부 기획예산처 “균형재정 유지” 신중
1. 재경부 기획예산처 “균형재정 유지” 신중
  • 이승철 기자
  • 승인 2003.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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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채 시장 키우고 싶지만…”


과열 수준을 넘어 투기판으로 변질될 우려마저 낳고 있는 국고채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 관계자들의 눈빛이 무척 근심스럽다.
3년만기 국고채 금리가 장중 한때 연 3.99%를 찍으며 사상 최저를 기록했던 11일 오후, 재정경제부 담당자에게서는 냉소 섞인 분노감마저 묻어 났다.
“금융기관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며 위험부담을 전혀 지지 않겠다는 보수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어요. 이 정도로 리스크 관리를 안하려면, 더이상 장사를 하지 말아야죠. 어쨌든 앞으로 국고채 금리가 올라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니, 그들은 큰 손해를 입을 겁니다.
” 한 재경부 과장의 말이다.


지난 4일에는 김광림 재경부 차관이 “최근 국고채 수익률곡선(일드커브)의 움직임이 평탄한 수준이 아니므로, 계속 예의주시하는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때만 해도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애써 여유를 보였지만, 11일에는 “한주 만에 10bp(0.1%포인트)나 더 떨어졌는데 우려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라고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변양호 국장은 현 상황을 시장에서 콜금리가 추가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배팅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하면서, “위험한 지경인데도 민간 금융기관이 물량이 부족한 국고채만 사들이니, 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국고채 금리가 콜금리를 밑도는 기현상이 빚어진 요즘, 신이 나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곳도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그렇다.
캠코는 올해 4조원의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을 차환발행하기로 국회 동의를 받아뒀다.
올해 만기상환을 해야 할 물량이 12조2천억원이나 몰렸기 때문이다.
캠코는 국고채 금리가 워낙 좋은 이때를 틈타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을 집중적으로 발행할 태세다.
5월에 5년물 9천억원, 6월12일에 3년물 8천억원을 각각 발행한 데 이어 16일과 23일에도 8천억원씩 연이어 발행하기로 했다.
발행조건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은 “장기 통안증권 발행하겠다”

5월에 발행된 5년만기물의 금리가 연4.53%였다.
역시 지난달 발행된 국고채 5년물 금리 연4.55%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캠코 천영환 기금기획팀장은 “예금보험공사채권(예보채)과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 등 양기금채권은 국고채보다 유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프레드가 꽤 컸지만, 지금은 별 차이가 없어졌다”고 반색했다.
정부가 지급보증한 특수채까지 덩달아 인기를 톡톡히 누리는 양상이다.


비상이 걸린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장기채권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단기 통화안정증권 발행을 중단하고, 만기가 1년 6개월 이상인 장기 통안증권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기채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편으로 현재 1년물 중심인 통안증권을 2년 이상으로 장기화하거나 국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부가 공식적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앞서 11일에는 재경부 권태신 차관보가 한 포럼에 참석, “채권시장 발전을 위해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국채시장 규모를 더 늘릴 것이며, 이중 장기채 발행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21조원 규모인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과 예보채를 동원, 현재 70조~80조원인 국채시장 규모를 늘리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권태신 차관보는 이와 관련 12일 “국고채가 표준금리로 작용해야 하는데, 현재 시장에는 국고채 물량이 적고 금리변동폭이 너무 커서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예보채 등 공적자금관리채권도 국고채로 전환해서 공급물량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추가 설명했다.


예보채 등 기금채권을 국고채로 전환발행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국채에 비해 기금채권의 발행금리가 높기 때문에, 정부가 대신 발행해줌으로써 이자비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신중히 검토한 적이 있지만, 결국 예보공사와 캠코가 자체 발행, 상환하기로 결론을 맺었다.
그러나 권 차관보의 주장이 이런 협소한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대신에 기금채권과 외평채 등을 국고채와 완전히 통합 발행함으로써 국채 발행잔액 규모를 늘리고 유동성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올해 이미 발행했거나 발행할 예정인 국고채 28조8천억원 중 절반 가량인 14조6천억원은 양기금의 부족한 돈을 국채발행으로 메우기 위해 전환발행하는 물량이다.
이 액수만큼 정부의 부채가 늘어나고 보증채무가 줄어들게 된다.
완전한 국가채무인가 아니면 보증채무인가라는 형식만 다를 뿐 국가가 떠안은 빚이라는 실질적 내용은 마찬가지이므로, 통합 발행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재경부와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단, 균형재정 운영방침이 확고한 기획예산처의 동의 여부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재경부 신제윤 금융정책과장은 “콜금리와 역전 가능성까지 보이는 말도 안되는 시장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 방안을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신 과장은 예를 들어 “올해 5조원으로 예정된 외평채 발행을 늘리거나, 국고채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남은 국고채 물량 약 19조원을 조기에 발행하거나 단기채를 장기채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최규연 국고과장은 “재정자금 조달방법을 차입에서 국고채발행 중심으로 변경할 것”이며, 이를 위해 “국민연금, 우편예금 등에서 빌린 차입잔액 약 38조원 중 국고채 발행으로 전환할 수 있는 액수가 얼마나 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증요법 보다 장기적 플랜 마련해야

정부로서는 단기적으로 과열된 국고채 시장의 급한 불도 꺼야 하지만, 이때를 기회삼아 고질적인 국고채 물량 부족, 특히 장기채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장기적 플랜도 함께 내놓기를 강요받는 상황이다.
통안증권의 국채전환을 주장해온 서울대 경제학부 이창용 교수는 “통안증권 장기화와 외평채, 예보채 국채전환 방침은 바람직하지만, 외평채와 예보채 물량이 많지 않아 단기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경부측은 국채발행 확대를 놓고 균형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예산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야 국채를 수십조원씩 투여했으면 좋겠지만, 예산처는 균형재정밖에 관심이 없다”는 재경부측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일단 기획예산처측은 좀더 지켜보자는 신중한 반응이다.
변양균 차관은 “건전재정 유지는 국채발행 확대보다 더 상위개념이므로 둘을 선택적 문제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며 “국채시장 발전은 장기적 과제로 추진돼야 하며, 건전재정 원칙은 국채발행을 제한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다분히 원칙론을 폈다.


그러나 국채시장을 확충해야 하고 국채수요가 많기 때문에 발행물량을 늘리겠다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논리라는 노골적 비판도 적지 않다.
한 예산처 과장은 “필요도 없는 돈을 만들어서 어디에 쓰겠다는 것이냐”며 “일본이 90년대 내내 적자재정을 폄으로써 국채시장이 활성화한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참담한 실패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외평채 등을 국채로 전환한다면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부담이 생기는 데다가, 외평채 본연의 기능이 도외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MBS를 대체 국채로 활용할 수도



지표채권의 부족은 우리나라에서만 부닥친 문제가 아니다.
미국, 일본을 뺀 OECD 나라 대부분이 2000년 이후 재정이 흑자로 바뀌면서 국채 발행량이 줄어들어, 국채의 지표채권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나라들은 국채 발행 종목이나 발행 주기를 줄이거나 역경매를 통한 조기상환(buy-back), 스왑을 활용해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홍콩과 싱가포르는 정부의 재정차입 수요가 없는데도 일부러 국채를 발행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창용 교수는 “싱가포르의 경우 해외투자를 하다가 역마진이 나더라도 국채를 발행한다”고 설명한다.
채권시장 유지가 정부의 건전재정보다 나라경제에 더 유익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의 허브인 홍콩과 싱가포르는 금융산업이 나라경제의 근간이기도 하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미국도 한때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면서 지표채권의 유동성을 걱정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년 전에 작성한 보고서 한 건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재정흑자로 정부의 재무부 채권이 공급부족에 빠지게 될 사태를 대비해 작성한 것이었다.


여기서 거론된 대안은 주택저당증권(MBS)의 활용. 미국의 정부출연 모기지 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여지껏 1조3천억달러에 달하는 저금리 채권과 주택저당 채권을 냈다.
당시 재무부 채권 규모가 6천억달러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두 회사의 채권시장이 이렇게 커진 건 재무부 채권과 같은 신용등급인데다 다른 공개회사들과는 달리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를 받지 않는 ‘특권’까지 누린 덕분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지는 못했다.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 이라크 공격의 여파로 재정흑자의 꿈이 물건너갔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2003년 회계분기 재정적자가 사상 최고치인 4천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것은 국내총생산(GDP)의 4%에 달하는 금액이다.


어쨌든 균형재정을 지향하는 우리 정부로선 주택저당증권 활용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선임연구위원은 “당장 국채시장 육성이 어렵다면 대체 국채라도 발전시켜야 자금의 조달과 운용이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마침 우리 정부는 내년에 주택(저당)금융공사를 설립해 서민의 장기주택자금과 학자금 대출을 지원할 계획이며, 이를 통한 주택금융공사증권(MBS) 발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재경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10년내 장기국고채권을 능가하는 큰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며, 당장 내년부터 장기채 수요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예상했다.


MBS 발행의 가장 큰 이점은 투자자 수요에 맞춰 다양한 만기물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1년짜리 단기물부터 20년짜리 장기물까지 골고루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며, 특히 10년 이상 장기채 비중을 높일 방침이다.
금융정책과 주환욱 사무관은 “국내 주택담보 대출이 135조원이나 되는데, 그 중 절반만 들어와도 70조원 가까운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0조원에 이르는 통화안정증권도 ‘대체 국채’의 자질이 농후하지만, 국가채무 증가라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국회통과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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