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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 지상중계] 기업가치와 사회책임투자는 비례
[SRI 지상중계] 기업가치와 사회책임투자는 비례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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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 국제 콘퍼런스 성료


“왜 한겨레 매체가 이런 콘퍼런스를 엽니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 기업들, 세계화 추세 따라가느라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이건 또 다른 세계화 압력 아닙니까? 한겨레 매체는 세계화의 반대편에 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 금융학자가 따지듯 묻는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사회책임투자의 현실성을 비판한다.
“제가 대기업에 있을 때 사회책임투자 개념이 들어간 외국 자금을 받아 설비투자를 하려고 했어요. 금리가 낮았거든요. 그 자금을 쓰려면 환경 기준에 맞춰 설비를 해야 하는데 거기에 돈이 너무 많이 들더군요. 그래서 결국 금리가 좀 더 높은 국내 자금을 썼습니다.
” 사회책임투자는 우리 현실에 비춰 동떨어진 개념 아니냐는 속뜻이다.


그럼에도 사회책임투자를 향한 관심과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지난 6월17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한겨레E&C와 에코프론티어가 공동 주관한 제1회 사회책임투자(SRI) 국제콘퍼런스가 열린 서울프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는 대기업, 금융, 학계, 시민단체 인사 250여명이 모여들었다.
토론이 길어져 콘퍼런스가 예정보다 30분 이상 늦게 끝났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발제자들은 사회책임투자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아시아SRI협회(ASrIA) 테사 테넌트 회장의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수준으로 에너지와 자원을 계속 쓰려면 지구가 5개는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하나가 아닙니까. 경제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문제는 경제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시장이 지금처럼 투기적으로 움직여선 지구의 제한된 자원을 보호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에코프론티어 정해봉 사장은 추구하는 가치와 경제적 이익의 상충을 푸는 코드가 사회책임투자에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환경보호 의지가 어느 시민단체보다 높더라도 그것이 경제적 이익과 상충하면 현실화될 수가 없습니다.
기업의 환경적 성과로 기업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으면 이런 문제는 해소됩니다.
” 그래서 사회책임투자는 우리가 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란다.


여기서 ‘사회책임’이란 단순히 지구 환경의 보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책임엔 인간 사회의 생태계, 즉 기업과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



기업의 사회책임 투자자들이 나서야

이런 이유로 사회책임투자를 논하는 이번 콘퍼런스에선 기업의 지배구조, 지속가능한 발전 같은 이슈들이 더 많이 다뤄졌다.
유엔환경계획(UNEP) 필립 모스 자문위원은 “재무 같은 기업의 계량적 측면 못지않게 윤리, 환경 등 질적 측면 역시 기업과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미국 금융시장을 뒤흔든 엔론의 회계 부정, 마사 스튜어트 리빙옴니미디어의 주식 내부자 거래 같은 사건들도 기업의 질적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변화엔 압력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선 정부, 투자자,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나서서 기업에 사회책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요구한다.
G10 등 선진국에선 바젤3 협약에 기업의 질적 위험 평가 요소를 삽입하자든가, 런던 원칙(Principle)을 통해 기업 약관에 이사회를 통한 권력 분산 조항을 넣자든가 하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에선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도드라진다.
사회책임투자펀드로 유명한 미국 팍스월드펀드의 다이안 키프 펀드매니저는 “미국에선 팍스월드펀드 등 펀드들이 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한다”고 말한다.
경제의 중요 원칙은 기업의 소유주들이 자산의 가치를 통제하고 방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최근 들어선 주당 수익만 챙기던 주주들이 기업 임직원, 지역 사회, 정부, 납품업체 같은 다른 이해관계자의 권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이 발전을 지속해 자산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 요소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주영 소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사회책임투자는 기업경영의 투명성, 임직원과 지역사회 같은 다양한 이해집단의 보호, 기업의 부패 방지 등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주주 제안, 집단소송, 기관투자자의 다양한 투자 유도 같은 활동들을 두 진영이 함께 할 수 있단다.



선진국에선 관련 펀드 규모 크고 인기

맞다.
다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으로 투자자, 기업가들을 설득해 돈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애널리스트, 브로커, 펀드매니저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김정래 제일투자신탁증권 팀장은 우려를 나타낸다.
“과연 사회책임투자니, 지속가능성이니 하는 이야기를 투자자가 참을 수 있는 한계가, 소화 한계가 어느 정도 일까요. 이런 복잡한 이야기는 힘을 잃기 쉽습니다.


기업한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투자자, 기업한테 가장 좋은 인센티브는 역시 경제적 이익이다.
일본에서 사회책임투자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아사히생명자산운용 타다시 하야미 선임펀드매니저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펀드를 만들기 전 우리는 사회책임투자가 무엇인가부터 분석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사회책임투자 역사를 보면서 결국 우리는 사회책임투자란 (사회적) 가치를 돈에 연결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이렇게 만들어진 아사히의 ‘아수노한 펀드’는 3500만달러, 우리 돈으로 420억원을 운용하고 있다.
환경, 사회,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펀드 규모가 크다는 건 그만큼 펀드 성과와 인기가 좋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사회책임투자 펀드시장은 99년 첫 펀드가 나온 이래 지난해까지 18억달러 시장으로 성장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이 시장은 잘 자라고 있다.
유엔환경계획 필립 모스 위원은 2002년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미국이 2조3320억달러, 영국이 3260억달러, 캐나다가 314억달러, 유럽이 176억달러를 기록했다고 전한다.
미국에선 사회책임투자 펀드의 증가율이 전체 펀드 증가율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운용 성과가 부진한데도 잘 팔릴까? 시장은 수익을 따라간다.


기업한테는 경쟁력 향상이 인센티브가 된다.
국제적 경영 환경은 벌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몬트리올 의정서, 바젤협약은 가전제품, 자동차 등 각종 제품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했다.
납, 수은 등 인체 유해물질이 함유된 부품이나 전자기기의 전자파에 대한 규제도 강해지고 있다.
이것은 기업한테 기회이기도 하다.
사전 대응해 제품을 내놓으면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이병욱 환경경영연구센터장은 “이젠 환경 성과나 사회적 활동 정보를 투자자와 이해관계자한테 제공해 지속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책임투자가 뿌리 내리기에 우리의 풍토는 아직 척박하다.
첫째 문제는 자산시장의 투기성이다.
요새 종합주가지수는 680대에서 노닌다.
10년 전보다도 낮다.
그동안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는 3300대에서 9300대로 높아졌다.
주가는 주식을 오래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야 꾸준히 오른다.
한국 주가가 지수 500~1000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즉 장기투자자보다 단기투자자이 더 많단 얘기다.
어찌나 단기투자가가 많은지 한국의 주가지수 선물옵션 거래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런 시장에서 장기투자인 사회책임투자를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국내 풍토 척박하지만 가능성도 많아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연기금과 투자문화의 변화에 희망을 건다.
“연기금에 200조원, 투신권에 250조원의 자금이 있습니다.
국민연금만 해도 세계 5위 안에 드는 단일 연금입니다.
자금력은 풍부합니다.
이것을 사회책임투자로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 우 사장이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부분은 또 있다.
기업연금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는 것,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한다는 것, 사회적으로 장기투자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또 하나의 난제는 고용, 노사문제이다.
이것은 환경 이슈와 달리 글로벌한 대기업들도 묵과해 버린다.
기업책임을 위한 시민행동연대 최정철 운영위원은 “사회책임투자가 정착하려면 노동, 인권을 포함한 더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종업원, 주주, 환경, 납품업체, 지역사회, 정부에 책임을 다하는 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에 신경 쓰는 대기업들도 종업원에 대한 부분은 슬쩍 넘어갑니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따라서 그는 기업의 사회 보고 의무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제가이드라인인 GRI 보고서엔 경제, 환경적 가치뿐 아니라 종업원 고용관계 평등, 원만한 노사 관계, 기업 윤리, 공정경쟁 등 사회적 가치도 포함돼 있다.
이런 가이드라인은 다국적 기업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멋대로 경제 생태계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견제한다.
사회책임투자나 지속가능성 이슈는 세계화의 또다른 얼굴인 셈이다.






휴손 발트젤 이노베스트 사장 - “환경경영이 곧 경쟁력”


6월 중순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3대 산업의 환경경영 평가를 발표한 이노베스트의 휴손 발트젤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기업은 두 그룹으로 갈라집니다.
아주 좋은 기업과 아주 좋지 않은 기업”. 이번 평가에서 삼성전자는 AAA, 포스코는 AA, 현대자동차는 A로 업계 최고 수준의 점수를 받은 반면 나머지 기업들은 바닥권 점수를 받았다.
묘하게도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점수가 좋다.


“한국 기업들한테는 공통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지속가능성 이슈에 사전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보고(리포팅)를 중시하지 않고, 성과 지표를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 성과 지표는 기업의 과거, 보고는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그린라운드니 블루라운드니 하는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기업의 사전적 대응은 곧 기업의 경쟁력을 뜻한다.
예컨대 환경친화 제품을 먼저 개발하면 환경 규제가 강한 선진국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제적 장기투자자들은 기업의 보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기업의 미래를 가늠해보지 않고 5~10년 이상 투자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이노베스트가 한국의 에코프론티어와 손 잡고 한국 기업들의 환경경영 평가에 나선 것도 한국 투자에 관심이 높은 국제적 기관투자자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노베스트에 한국 기업들의 환경경영 정보를 요구하는 고객들은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리먼 브러더스, ABN암로 등 거대 투자기관이다.
이들은 우리 시장에서 어느 때엔 장기 투자자로, 어느 때엔 투기꾼으로 활동한다.
이들을 바꾸는 스위치는 투자대상인 기업,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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