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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일본 - 점점 얽혀가는 리소나 사태
[글로벌] 일본 - 점점 얽혀가는 리소나 사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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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감사에 금융청 입김 드러나…일부선 다케나카 금융상 연루설도


금융청(FSA) 관리가 리소나은행의 몰락을 막기 위해 회계법인 신니혼에게 분식회계를 용인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금융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리소나 사건이 더욱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리소나는 지난해 10월 출범한 일본 5위의 금융그룹으로, 최근 1조9600억엔(약 2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 받고 사실상 국유화되는 운명을 맞았다.
2002년 결산 회계감사를 맡은 회계법인 신니혼이 그동안 눈감아온 분식회계 관행을 인정하지 않고 회계기준을 엄격하게 적용,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루아침에 감독 최저치인 4%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리소나의 가쓰다 야스히사 사장은 “회계법인에 배신당했다”며 공개적으로 분노를 터뜨렸지만, 이번 사건으로 저항세력에 밀려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금융개혁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이전에도 감사포기·자살 등 잡음

금융청의 개입을 입증하는 메모를 공개한 민주당 오츠카 고헤이 의원은 “리소나는 일본의 엔론이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회계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하도록 감독당국이 막으려 했다는 것”이라며 정부에 강펀치를 날렸다.
재미있는 것은 그동안 과감한 금융개혁을 주장해온 다케나카 헤이조 금융상이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는 점이다.
특히 다케나카의 ‘과격한’ 개혁 처방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일부 보수파 정치인들이 그가 겉으로는 금융개혁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적당히 타협하는 이중 플레이를 벌였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9월 자민당 총재 선출을 앞둔 고이즈미 총리가 당내 보수여론에 밀려 다케나카 금융상을 조만간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본인이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데도 해임을 예상한 다케나카 금융상이 미국 유력 대학의 교수직을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마저 끊이지 않고 있다.


리소나의 회계감사 과정에 뭔가 심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처음 드러난 것은 지난 4월말이었다.
신니혼과 함께 리소나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아사히가 리소나 측이 제시한 ‘이연법인세자산’ 계상액을 인정할 수 없다며 돌연 감사 포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며칠 뒤 리소나의 회계감사에 참여했던 아사히의 젊은 회계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연법인세자산은 이미 금융개혁과 연관돼 은행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라 있는 상태였다.


논란의 핵심은 일본 은행들이 이연법인세자산을 부풀려 취약한 자본상태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된 리소나의 경우, 기본 자기자본의 77%를 실현 가능성이 확실치 않은 이연법인세자산으로 충당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정부의 주문대로 회계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이연법인세자산을 대폭 삭감하면, 리소나의 자기자본비율은 당초 예상했던 6%대에 크게 못미치는 3.78%에 지나지 않게 된다.


리소나는 지난해 다이와은행과 아사히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할 때부터 기존 4대 금융그룹에 비해 약체로 평가받았다.
대부분의 일본 은행이 부실대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오사카 지역에 영업 기반을 두고 있는 다이와은행의 경우 사정이 더 좋지 않았다.
한때 일본 경제의 엔진이었던 이 지역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 저가 제품의 상륙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지역이기도 했다.


에쿠아도르의 한해 GDP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을 받은 리소나는 우선 점포를 줄이고, 직원을 15% 감축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올해 635억엔의 순이익을 달성한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리소나의 앞날이 그렇게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이와은행과 아사히은행은 98년과 99년에 이미 1조1천억엔의 공적자금을 받았지만 홀로서기에 실패한 것이다.



금융개혁 다시 불길 당기나

일본 언론들은 리소나의 경영진과 금융청 관리들의 회계법인이 내놓은 ‘당혹스런’ 감사결과를 바꾸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했다는 것이 드러남에 따라 아사히 소속 회계사의 자살 사건도 이 과정에서 빚어진 비극으로 보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리소나를 궁지로 몰아, 공적자금 투입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배후 인물로 다케나카 금융상을 지목한다.
자신은 표면에 나서지 않은 채 회계사들을 이용해, 국유화를 통해 부실은행을 신속하게 정리한다는 구상을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연법인세자산 인정 범위 축소는 다케나카가 취임 직후 내놓은 초기 개혁 프로그램에 이미 들어 있다.
하지만 리소나 사건과 다케나카를 직접 연결 짓는 것은 금융청 관리들이 그의 급진적인 계획에 반대해 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미국의 엔론 사건이 일본 회계법인들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세계적인 회계법인 아더앤더슨이 엔론의 분식회계를 눈감아 준 대가로 몰락했다.
어떤 경우든 이제 일본에서 회계법인의 역할이 확실하게 바뀌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이연법인세자산 남용이 리소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케나카 금융상이 해임 위기를 잘 넘기고, 리소나의 국유화 과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된다면, 일본의 금융개혁은 또다시 숨가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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