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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서평]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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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그 대안을 찾아서


그들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단어만이 깊숙이 박혀 있다.
단 하나의 단어만이 그들의 심장박동을 요동치게 한다.
진보! 누가 뭐래도 그들은 세상의, 역사의 진보를 믿는 휴머니스트다.
그들의 눈앞에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진보의 물결이 온 세상에 넘실댄다.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공적 자산을 세련된 민간의 손에 넘겨주는 것, 그리하여 국가라는 낡아빠진 존재를 멀찌감치 몰아내고 그 자리에 시장이라는 구세주를 올려 세우는 일이야말로 진보의 진정한 얼굴이란다.
민영화와 자유화, 세계화는 이 세상에서 빈곤을 쫓아버리고 더렵혀진 지구 환경을 치유하는 요술방망이며, 그래서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아서는 그 어떤 이름의 장애물도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방해하는 사탄일 뿐이란다.
이게 바로 진보야! 이 위대한 사명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진 주인공이 누구냐고? 황금빛 갈기를 휘날리는 준마인 양, 이 나라 저 나라가 쳐놓은 담장을 훌쩍 타고 넘는 글로벌 거대기업이 그 답이다.


국가 대 기업? 그 싸움은 이미 싱겁게 끝난 지 오래다.
왠지 괜스레 미련이 남는다고? 그럼 국가냐 기업이냐를 막론하고 세계 100대 경제 단위를 추려놓은 리스트를 잠시 들여다보라. 그 가운데 49개는 어렸을 적 지도책을 펴놓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이리저리 짚어가며 이름을 외우던 여러 나라들이 차지할 게다.
나머지 51개는 어쩌면 이제는 나라 이름보다 더 익숙하게 들릴지도 모를 글로벌 거대기업들의 몫이다.
이미 세상은 소리 없이 ‘기업국가’로 변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미쓰비시가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고, 도이치뱅크가 감옥이나 공원을 운영하고, 디즈니가 BBC를 경영하고, 벡텔이 전 세계 수자원을 통제하는 세상”은 더 이상 공상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다.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세상의 진짜 모습일 뿐.


거대기업이 지배하는 세상

다음 문제. 그럼 글로벌 거대기업들이 펼쳐가는 이 세상에서 혜택을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 진보의 열매를 고스란히 따먹는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여기 “이런 게 바로 진보야”라며 한껏 뽐내는 사람들을 향해 “진짜 수혜자는 오로지 너희들 자신일 뿐이며, 너희들이 내세우는 수혜자들이란 실제로는 세계화의 물결 앞에 맥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패배자들”이라고 외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99년 11월 시애틀을 시작으로 포르투알레그레, 프라하를 거쳐 얼마 전 프랑스 에비앙의 뜨거운 아스팔트는 이른바 ‘기업세계화론자’들이 내세우는 진보의 허상을 한 꺼풀 벗겨내며, 전혀 다른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함을 온몸으로 증명하려는 수십만의 사람들로 뒤덮였다.
이제 우리 손에 들린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는 바로 그 중심에 섰던 ‘세계화에 관한 국제포럼(IFG)’이 대안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99년부터 2002년까지 3년 동안 공동토론한 성과를 묶어낸 이 시대의 소중한 기록이다.
“세계화, 이젠 비판을 넘어 대안이다!”

왜 지금 우리에겐 ‘더 나은 세계’가 필요할까?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은 진정 가능할까? 두꺼운 책장을 힘겹게 넘길수록 “우리가 반대하는 것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인 모습들”이라며, 못내 발걸음을 떼기 주저하는 우리를 마구 채근하는 목소리가 여지없이 파고든다.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어떤 세상이냐고? 요즘 세상에서 농민들이 다음해 농사를 위해 종자를 비축하거나 이웃에 나눠주는 행위는 수천 년을 내려온 삶의 지혜가 더 이상 아니다.
이미 그 종자의 특허권을 거머쥔 거대기업의 사유재산을 훔치는 ‘도둑질’일 뿐. 종이를 만들 때 나무에서 섬유소를 추출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낸다고 치자. 그러나 실제로 사용되는 부분은 겨우 20~25%. 나머지는 울창한 삼림의 아스라한 추억과 함께 고스란히 쓰레기로 내버려질 뿐이다.
부유한 소수의 식탁 위를 기름진 육류 요리가 뒤덮을 때, 전 세계 수억 명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곡물들은 한낱 가축사료로 둔갑할 뿐인 바로 그런 세상 말이다.
또 최고경영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연봉이 노동자가 받는 연봉의 500배가 넘는 세상. 1세기 전에 이름을 날렸던 금융업자 JP 모건조차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자기 회사에서 가장 적게 받는 노동자에 비해 20배 이상 받지 말라”고 했다는데, 그 후예들은 이 말을 어렴풋이 기억이나 할까. 잠깐! 그런데 글로벌 거대기업들이 사라지면 우리는 일자리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총생산의 27.5%를 차지하는 세계 200대 거대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겨우 0.78%라는 수치를 가만히 쳐다보라. 경제적 성과의 대표적인 측정체계가 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GNP에서 GDP로 슬그머니 바뀐 것에도 글로벌기업들의 기여를 과장하기 위한 술수가 반명되어 있는 것이다.
이익은 고스란히 모국의 주머니로 들어가는데도 숫자상으로만 현지생산국의 실적을 높여주는 요술방망이….


기업은 인격을 가진 존재다?

이제 남은 문제는 단 하나다.
‘더 나은 세계’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99년 11월 시애틀 거리에 뿌려졌던 수천 종의 문건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몇 개의 단어들은 ‘더 나은 세계’를 가꾸는 소중한 실마리다.
무엇보다도 이쯤에서 한 가지 신화를 꼭 깨뜨리자. “기업은 인격을 가진 존재다!”라는 신화. 오늘날 기업은 가공의 인간이며 법적으로는 엄연히 인격권을 누리고 있으나, 실제 인간에게 요구되는 책임을 따르도록 요구받지는 않는다.
기업활동이 ‘공개’되어 있지 않냐고? “기업이 공개적으로 거래된다는 말이란 바로 기업의 운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으면서 단지 금융수익을 노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업의 주식을 자유롭게 매매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기업의 책임 있는 행위를 보장하고 기업경영의 가치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규칙들을 연방기업헌장에 담으려는 노력이나, 국가가 내준 기업허가권을 30년으로 제한해 주기적으로 재검토하려는 운동 등, 풍부하고 창의력 넘치는 귀한 사례들과 끊임없이 마주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주는 값진 선물이다.
50여 년 전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에서 세상에 태어난 현 세계화체제의 기둥인 세계은행, IMF, WTO 등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체제를 그려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대안은 있다.
기업세계화론자들이 제공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실제로는 우리 손에 쥐어주지 못한 것들을 우리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할 때다.
가슴속에 묻어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꿈을 꺼내, 이 책을 읽고 있을 전 세계 독자들과 함께 상상력의 나래를 마구 펼쳐 봄이 어떨는지. “모든 사회운동은 격렬한 상상력에 의해 불타올랐다.




*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세계화 국제포럼 지음
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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