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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보아 프로젝트
[커버] 보아 프로젝트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3.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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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메이킹...기획에서 제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SM엔터테인먼트는 98년부터 국내시장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가수를 키우는 프로젝트를 소리없이 진행시키고 있었다.
중국은 시장이 넓고 잠재성은 풍부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익을 올리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는 당장 중국으로 진출하기에 앞서 일본시장 진출을 먼저 염두에 두고 예비스타를 물색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당시 사장이었던 이수만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회사의 역량을 총동원해 캐스팅에 집중했다.
“10만명 가운데 한 명을 발굴하는 것도 힘든 게 연예계 인재”라고 업계 종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끼 있는 아이’ 하나를 골라내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콘테스트와 경연대회장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고 오디션을 개최하기도 했다.
SM엔터테인먼트 김경욱 사장은 “무작정 중·고등학교에 가서 아무 학생이나 잡고 그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이가 누군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할 정도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의 캐스팅 작업의 결과물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밖에 안 되는 평범한 소녀 보아가 우연히 오빠를 따라 SM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장에 왔다가 ‘흙속의 진주’에서 ’빛나는 보석’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귀여워서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는데 꽤 잘 불러서 직원에게 나중에 데려와 보라고 했다”고 한다.
한편 다른 직원은 보아가 춤추는 것을 보고 이 프로듀서에게로 데려왔다.
이 프로듀서는 노래를 듣고 보아를 선택했고 직원은 춤을 보고 보아를 선택한 셈이다.
이때 이 프로듀서는 “바로 이 아이다”라고 느꼈다고 한다.



해외진출 염두, 처음부터 외국어 교육

보아가 98년에 바로 가요계에 데뷔했다면 지금의 보아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여기서 SM엔터테인먼트의 자랑인 ‘인재양성’ 시스템이 빛을 발했다.
이 프로듀서는 “보아에게 처음 가르친 것은 노래와 춤이 아니라 어학이었다”고 말한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보아도 “외국어, 예절, 인간미에 대한 교육을 먼저 받았다”며 “SM엔터테인먼트의 방식이 장기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일단 교육이 시작되자 영어와 일어 개인교사가 보아에게 붙여졌고 보아는 외국인 학교로 전학했다.
특히 방학 중에는 일본에 머물도록 해 어학과 노래, 댄스 등 일본 진출에 대비한 기본교육을 받았다.
NHK 아나운서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정확한 발음을 배우고 현지 문화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철저한 교육을 통해 일본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으며, 영어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댄스를 위해 일본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최고의 댄서로 평가받는 사쿠마 마사히데가 보아를 직접 가르치도록 했다.
데뷔 앨범을 준비할 때는 힙합댄서 마카사와 가즈히로가 한국에까지 와서 안무를 담당하게 했다.
가즈히로는 일본의 인기 남성 4인조 힙합그룹인 ‘Da Pump’의 안무를 담당했고,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였던 이주노의 뮤직비디오 안무를 돕기도 했다.


보아는 이 프로듀서가 노래실력을 보고 뽑았다고 할 정도로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보컬에 있었다.
보아는 당시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곡의 분위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맞추는 능력을 보여줬다.
이런 능력은 프로듀싱을 통해서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보아가 비록 천재성은 가지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대중의 취향에 맞추는 상품화였다.
한국은 단순히 중고생, 대학생으로 층이 단순화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팬들이 세부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초등학생 보아를 캐스팅한 것도 3년간의 교육과정을 통해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아우를 수 있는 팬층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일본 중고생의 성향을 분석하고 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과 보아의 스타일이 일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보아의 상품화에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다.
제조업체에서 상품을 만들 때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상품이 출시되지 않는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보아의 상품화 역시 도공이 청자를 빚어내는 것처럼 정교하게 진행됐다.
초등학생 시절에 캐스팅을 했는데 3년 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면 문제다.
이 프로듀서는 “보아의 외모가 바뀌거나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보아는 자신의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이를 발전시키는 데 능동적이었다.
이 프로듀서는 “학교를 가지 않으니 스스로가 찾아서 선생님을 붙여 달라고 할 정도로 학습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고 평가한다.


보아의 일본 입성은 2001년 3월에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것은 단순한 일본 진출이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한 일본인의 이미지를 바꾼 계기가 됐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일본의 레코드 회사인 에이백스(AVEX), 일본 최고의 TV프로덕션인 요시모트와 함께 현지법인 SM재팬을 설립해 보아를 선보였다.


보아의 일본 입성은 현지법인 설립과 해외 진출이라는 단순공식 이외의 의미를 담고 있다.
SM재팬을 설립하는 과정은 하나의 시련이었다.
당시에 일본 음반사들은 한국 음반사들을 ‘보따리장사’ 정도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 음반업계는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고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 프로듀서는 SM엔터테인먼트의 코스닥 등록을 추진했고, 두 번째 시도만에 성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일본 회사와 계약할 수 있었다.
보아의 일본 진출은 이 순간부터 급물살을 탔다.
기업으로 따지면 해외 지사가 설립되고 본격적인 수출의 길이 열린 셈이다.



현지화 전략 그리고 꾸준한 업그레이드

보아는 일본 진출 후 2개월 만에 첫 번째 싱글 ‘ID: Peace B’를 발표해 일본 최고 권위의 음반판매 차트인 오리콘 차트 17위에 랭크시켰다.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가능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보아는 첫 싱글 발표 후 채 1년이 되지 않은 지난해 3월에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최초의 한국산 ‘수출 기획상품’이 일본 가요계를 강타한 것이다.
일본 현지에서도 16살 한국 가수 보아가 일본가요 정상에 오른 것을 대서특필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 2월에 발표한 2집 앨범 ‘발래티’가 발매 당일 100만장 판매를 넘어섰고 다시 1위를 차지했다.
이젠 누가 뭐래도 일본에서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SM엔터테인먼트는 보아의 중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김경욱 사장은 “최근에 미국에서 보아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김 사장이 미국의 차이나타운에 가니 중국계 아이들이 보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한 아이가 “학교에서 보아경연대회를 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미국에서 보아를 알 정도면 중국 본토는 더 대단할 것이다”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SM엔터테인먼트는 보아에게 중국어 공부와 안무, 노래를 새로 준비시키고 있다.
중국 진출을 위해 본격적인 업그레이드를 시작한 셈이다.
이 프로듀서는 “아직까지 보아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내년 3월부터 6월까지 깜짝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중국 진출을 위해 보아는 영화에도 출연하고 안무에도 변화를 줄 전망이다.
이 프로듀서는 보아의 춤에 ‘쿵푸’의 색깔을 입힐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프로듀서는 “음악과 무술은 통한다”며“브레이크댄서가 쿵푸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처럼 보아의 춤도 힘이 넘칠 것이다”고 설명한다.


보아의 나이는 올해 17살로 아직 한창이지만 SM엔터테인먼트는 보아의 뒤를 이을 가수를 키우고 있다.
사실 SM엔터테인먼트가 3명의 강사를 붙여 교육시키는 학생들만 해도 현재 60~70명에 이른다.
이뿐만 아니라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방학 때면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SM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는 제품개발실의 ‘개발 중인 상품’인 셈이다.
이들 가운데 보아와 같은 대박이 나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1년 만에 데뷔하는 경우도 있지만 5년이 넘도록 데뷔도 못하고 교육만 받는 예비가수도 있다.
벤처기업이 수년씩 연구개발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리는 것처럼 SM의 ‘스타제조시스템’은 벤처비즈니스와 뭔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어쨌든 SM엔터테인먼트는 보아 모델을 따라 ‘보라’, ‘수영’ 두 명의 여가수를 일본에서 먼저 데뷔시킬 계획이다.
특히 보라는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을 통해 먼저 선을 보이기 위해 내년 3월로 데뷔를 늦추고 있다.


보아가 가요계를 강타하고 한일정상회담의 초대가수로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자, 보아에 대한 경제적 가치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잠재가치 ‘1천억원’이니 ‘1조원’이니 하는 추정도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연구원은 “보아의 가치는 경제가치, 파급효과, 홍보효과를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평가한다.
단순히 보아가 전속회사를 옮기는 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따지면 수십억원에 불과하지만 파급효과를 놓고 본다면 1조원까지 그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보아의 경제적 가치 그리고 수익률은?

하지만 파급효과를 일일이 계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보아가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들인 수입에 가중치를 곱해 그 가치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
SM엔터테인먼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보아는 지난해 국내에서 대략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중에는 앨범판매 50억원, CF와 이벤트, 초상권 15억원, 해외로열티가 30억원을 차지한다.
일본내 수익은 국내 수익의 6배에 이른다.
1집 정규앨범의 판매액이 400억원이고 싱글앨범이 150억원, 라이센스앨범이 30억원, 여기에 CF를 포함한 기타 수익을 추가하면 대략 600억원 가량을 벌어들였다.
국내외 수익을 합하면 대략 7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민 연구원이 제시한 가중치 1.67을 곱하면 보아가 지난해 미친 경제적 파급효과는 1170억원으로 계산된다.


올해는 수익이 큰 폭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상반기 일본에서 음반판매로 벌어들인 수익만 대략 526억원에 이른다.
보아의 3집 앨범 ‘아틀란티스 소녀’가 국내에서만 3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고, 해외에서는 이미 대만 라디오 방송 ‘키스’에서 아시아 음악 주간 순위 1위에 올랐다.
‘아틀란티스 소녀’는 대만의 유력 음반유통회사 G-뮤직이 집계한 아시아 부문 음반 판매량에서도 일본의 ‘케미스트리’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그러면 ‘보아’라는 브랜드의 수익률은 어느 정도나 될까. 일반적으로 가수가 앨범을 출시하는 데는 뮤직비디오 비용까지 포함해 대략 3억원 가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아에게는 개인투자비로 대략 30억원이 들었다.
여기에 일본에서 음반을 출시하는 데 한국에서 드는 비용의 10배인 30억원이 들었다.
보아에게 대략 60억원의 기본투자비가 들어간 셈이 된다.
여기에 간접비를 포함하면 그 액수는 더욱 커진다.
이 프로듀서는 “보아의 성공으로 떼돈을 번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만큼 투자비용도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
실제 60억원을 투자한 보아의 앨범이 실패했을 경우 SM엔터테인먼트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움직이는 기업’ 보아는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많은 돈을 버는 단순한 가수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전도사로도 바라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기업이 설립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획, 제조,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유기적인 조화가 필요하듯 보아의 성공에는 기업의 장기적인 안목과 과감한 투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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