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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린스펀 따라잡기
[서평] 그린스펀 따라잡기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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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읽는 힘을 키워라


미국 시각 7월15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다시 한 번 전 세계인 앞에 선다.
이날 그린스펀은 매년 7월에 열리는 미국 의회에서 미 연준의 경제 전망을 보고한다.
같은 시각 전 세계 주식, 채권,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손가락을 매매 주문 단말기에 올려놓은 채 그린스펀의 입술에 온 정신을 모을 것이다.
그린스펀이 미 연준 의장에 취임한 뒤 16년 동안 변함 없이 펼쳐진 풍경이다.
내년이면 임기가 끝나는 ‘세계경제의 대통령 그린스펀’한테는 레임덕도 없다.
‘그린스펀이 한다면 한다.
된다면 된다.


<그린스펀 따라잡기>의 지은이 로버트 스타인은 그린스펀 효과의 신화에 쐐기를 박는다.
“그린스펀은 말이지, 맘만 먹으면 시장을 띄울 수 있는 산타클로스가 아니야. 경제적으로 훌륭하고 적절한 최신 도구들로 무장한 금융 분야의 특별기동대도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그린스펀은 일종의 경제 트레이너일 뿐이야.”

그린스펀이라는 인물로 체현된 미 연준은 경제가 불안정할 때엔 경제가 잘 굴러가도록 기름칠을 해주고 경제가 너무 빨리 달릴 때에는 고삐를 죄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그린스펀은 운동화를 신고 경제를 방문해 말한다.
“이봐, 너무 열심히 하는데. 건강을 해치겠어. 좀 쉬어.” 아니면 이렇게 말한다.
“뭐하는 거지? 너무 오래 놀았잖아. 이번엔 이 운동을 좀 해봐.”


그린스펀은 단지 경제 트레이너일 뿐

지은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세계경제의 대통령 그린스펀’을 감히 일개 트레이너에 비유하는 것일까. 금융 웹사이트인 스톡브로커스 닷컴 설립자이자 선임 이코노미스트이며 시카고 애스트로애셋매니지먼트 LLC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연준에서 몇년 동안 애널리스트로 일한 적이 있다.
그린스펀과 함께 일하기도 했단다.
이 정도면 연준과 그린스펀에 대해 이야기할 만하다.
그러면 연준이 과연 어떻게 돌아가는 조직인지, 그린스펀은 어떤 사람인지 지은이의 견해를 좀 더 들어 보자.

미 연준의 가장 우선적인 역할은 통화량 조절이다.
미국 국채를 사고 파는 공개시장 조작, 연방기금 금리의 인상이나 인하, 은행 지급준비율의 설정 같은 것이 연준의 도구이다.
연준은 통화량을 모니터링하고 유동성, 즉 은행시스템의 피를 통제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
잘 돌아가는 경제에서 수표는 곧 현금으로 바꿔 쓸 수 있어야 하고 돈은 이 계좌에서 저 계좌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경제엔 문제가 생긴다.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온다.
연준은 경제를 관찰하며 인플레이션을 막고 경제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연준이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유일한 손은 아니다.
지은이는 말한다.
“누가 경제를 통제하는가? 바로 당신이다.
” 경제의 핵심에는 대형 디지털TV나 최신형 휴대전화기를 사거나 사지 않는 소비자, 투자한 돈을 그대로 묻어두거나 현금으로 바꾸는 투자자가 있다.
소비자들이 일자리나 투자자금을 잃을까 두려워 피할 곳을 찾는다면 경제는 더 하락할 것이고, 평소대로 지갑을 열어 가전제품과 펀드를 산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지은이는 그린스펀과 연준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장막 뒤의 남자’에 빗댄다.
“마법사의 흐릿하고 묘한 얼굴은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도로시와 친구들은 이내 그것이 장막 뒤의 남자가 만들어 낸 특수효과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자기 운명을 결정할 힘은 바로 자신의 손에 또는 자신의 상자와 루비 구두에 있다는 것을 도로시는 재빨리 알아챘다.
투자자들이여, 연준이 당신의 모든 걱정거리를 없애 주리라 기대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의 운명과 더 나아가 경제를 통제할 힘을 갖고 있다.


물론 여기서 그가 말하는 ‘당신’, 그러니까 루비 구두를 신고 있는 도로시는 미국 소비자와 투자자다.
미국 소비자는 전 세계 경제의 25%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에서 GDP의 67%를 좌우한다.
미국 투자자는 전 세계 증시 시가총액의 57%를 차지하는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의 85%를 주무른다.
그뿐인가. 미국 주식형 뮤추얼펀드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베스트먼트(MSCI) 편입 종목 기준 전 세계 시가총액 15조달러 중 20%에 달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린스펀의 입술 끝을 주시하는 건 그린스펀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도로시의 루비 구두’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말해주기 때문이다.
서글퍼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벌써 오랫동안 한국 경제와 증시에 대한 미국 소비자와 투자자의 영향력을 체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우리는 트레이너 그린스펀과 그의 ‘도로시’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역발상도 할 수 있다.
그의 ‘도로시’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트레이너 그린스펀이 도로시한테 어떤 운동을 지시할지, 다시 말해 경제에 어떤 처방을 내릴지 유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만 의존하지 말라

이 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제목으로만 보기엔 이 책은 언뜻 그린스펀 비평서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린스펀이 주로 ‘참조할 만한’ 경제지표들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참고서에 가깝다.
이 책의 원제는 ‘그린스펀의 서류가방 속(Inside Greenspan’s Briefcase)’이다.
그러니까 “그린스펀의 경제 분석이나 연준 조치에 대한 전문가 분석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경제를 읽는 힘을 키우라”는 얘기다.


미국 경제지표에 대한 지은이의 설명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논리적 매력이 있다.
한 예로 경제분석가들과 언론이 요즘 가장 많이 인용하는 지표로 ‘실업급여 청구건수’라는 것이 있다.
“미국 노동부는 7월10일 지난주 신규 실업급여 청구건수가 5천명이 늘어 5월 마지막주 이후 최고 수준인 43만9천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는 식이다.
이날 미국 증시는 예상보다 높은 건수에 실망해 일제히 하락했다.


이 책의 지은이가 이날 발표를 들었다면 다르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왜? 그는 고용지표가 경제 실적뿐 아니라 경제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본다.
90년대 중반에 그랬듯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았는데도 경제는 확장될 수 있다.
그때도 고용통계에 잡히지 않는 컨설턴트, 소기업주가 늘어나면서 경제 확장을 이끌었다.
실업급여 청구건수가 높은 현상이 소위 ‘일자리 없는 확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분기별 GDP, 공급관리자협회(ISM) 동향보고, 모기지 금리와 주택 판매 등 여러가지 지표를 함께 봐야 한다.
지표별 의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책에 들어 있다.




* 그린스펀 따라잡기

로버트 스타인 지음
김현구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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