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6:34 (금)
[특집] 유기농 시장 뜰까
[특집] 유기농 시장 뜰까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 산업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바로 유기농 산업이다.
방송이 끝난 다음 날 도처의 유기농 식품매장에는 전화가 폭주했다.
매장에는 유기농 식품들을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물론 이런 사태는 2주일이 지나자 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확실히 2주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이다.
친환경농산물 전문 매장인 한겨레초록마을의 박병권 사업부장은 “반짝 열풍이긴 했지만, 그것은 의미있는 열풍이었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뀐 것은 그 만큼 잠재소비자들이 많아졌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유기농 시장의 특성을 잘 말해준다.
유기농 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소비자들의 인식과 먹거리 문화, 환경에 대한 이해 등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유기농 관련 산업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와 동시에 더디지만 하나의 산업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유기농의 시작

유기농산물이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다.
처음에는 생산자의 소명의식과 운동 차원에서 시작됐다.
지역단위의 생활협동조합이나 ‘한살림’과 같이 도농공동체를 지향하는 지역의 친환경 운동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다보니 생산 자체의 확대보다는 소규모로 점진적으로 진행됐고, 거의 대부분 직거래형태를 띄었다.


친환경농산물이 소비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90년대 중반부터다.
환경에 대한 관심과 건강,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대되면서 친환경농산물 시장이 더 넓어졌다.
이의 상업화를 위해 유기농산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유통업체들이 등장했다.
이런 전문 유통업체는 생산자로부터 친환경농산물을 구입해 백화점에 납품하거나 매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친환경 농업을 육성해오고 있는데, 이를 위해 1997년에 친환경농업육성법을 제정해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농림부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친환경농산물의 생산량은 매년 30~40%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12월 전체 친환경농산물 생산량은 59만4천톤으로 전체 농산물의 3%에 불과하다.
물론 이는 우리 시장의 상황만은 아니다.
2000년 기준으로 미국의 유기농산물 판매액은 80억 달러로 전체 식품판매액 중 1.5% 정도로 추산된다.
독일의 경우는 1.25~1.5%,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1% 정도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인 덴마크 경우도 2.5~3%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보다 유기농산물의 비중이 크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소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기농’이란 말이 부정확하게 사용되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기농산물에 대해 정확한 뜻을 모르거나 무농약으로 재배한 농산물 정도로 짐작한다.
실제 그동안 판매처에서 무공해, 청정, 유기농, 저공해 등의 말들을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바람에 소비자들을 혼란시켰다.
이에 대해 정부는 친환경농업에 대한 정의를 정하고, 친환경농산물 표시인증제도를 도입해 농산물의 안정성과 품질을 인증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농림부에서 제시한 친환경농업은 “농업과 환경의 조화로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을 유도해 농가소득을 증대하고 환경을 보전하면서 농산물의 안정성도 추구하는 농업”이다.
친환경농산물의 인증종류에는 유기농산물, 전환기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저농약농산물의 4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중 유기농산물이란 3년 이상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산물을 말한다.
만약 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유기농산물 유통량을 본다면 2002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농산물 생산량 중 7만톤으로 0.39%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 유기농산물은

우리의 유기농산물에 해당하는 기준을 일괄적으로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친환경농산물로 뭉뚱그릴 경우 현재 저농약과 유기농은 가격차이가 크지 않다”며, “상업적 이익만 차릴 경우 저농약 제품 위주로 흘러 산업의 올바른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친환경농산물 중에 저농약 제품은 61%로 절반이 훨씬 넘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매년 40% 이상 ‘순수’ 유기농산물 시장이 증가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2005년까지 국제적인 기준에 훨씬 못미치는 친환경농산물을 전체 농산물 생산량의 5%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유기농 가공식품 가능성 커

유기농산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반면, 관련 산업의 성장속도는 매우 더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 비해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해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수요가 아직 부족하죠.” 한겨레초록마을의 박병권 부장은 ‘잘먹고 잘사는 법’을 계기로 수요가 급증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수요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는 “수요가 부족한 데는 사람들이 유기농상품을 접하는 기회가 적은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한겨레초록마을이 적극적으로 프랜차이즈를 통해 판매망을 확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나는 유통의 문제다.
친환경농산물은 일반농산물과는 달리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생산량 자체가 계절별로 일정치 않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거나 적게 사용했기 때문에 외형적인 면에서 상품의 가치가 일반 농산물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은 상품성을 떨어뜨린다.
기본적으로 생산단가가 비싼데다 유통기간이 짧고, 따라서 재고의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많다.
더욱이 1차생산품에 치우쳐 있어 생산과 소비를 계획해서 판매하지 않을 경우 손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상품 유통시장이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친환경농산물의 주판매처는 소비자단체 및 생활협동조합이 77.9%인 반면, 일반 도매시장은 6.7%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7만 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지역 조직을 중심으로 도농간의 직거래를 하고 있는 한살림의 경우, 매년 생산량을 조율해 계획 생산을 하고 있다.
한살림 생산자모임의 배영태 사무국장은 “소비자 회원들과 생산자 대표들이 협의해서 생산량을 정하고, 생산량에 따라 연초에 가격도 결정한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까지 높은 가격대가 구매를 꺼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제는 그리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친환경농산물의 경우 일반 농산물보다 1.3~2배 정도 비싼 편이지만, 유기농 산업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면서 이 문제에 관한 거리감이 많이 좁혀지고 있다.


올해초 제일기획이 2001년과 2002년 전국2800명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유기농산물 소비 실태조사를 발표한 것에 따르면, 응답자의 29.8%가, 월소득 500만원 이상인 가구의 45.7%가 유기농 농산물을 먹는다고 답했다.
한 살림에서 자체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81%가 30% 정도의 가격차이를 인정한다고 조사됐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유기농과 관련한 다양한 제품 즉 유기농 가공식품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박 부장은 “현재 유기농 시장의 문제는 1차 농산물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라며 “유기농 가공 식품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비 시장에서 1차 생산물의 판매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일반 식품군들을 대체할 수 있으려면 그만큼 많은 가공식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나 농경지 면적 등 우리나라가 처한 여건을 볼 때 다양한 유기농 식품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뿐만아니라 아직까지는 국내 시장에서 특정 규격에 맞는 유기 농산물을 대량으로 구비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외국 유기농 가공 식품을 수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대기업들, 특히 식품 유통업체들은 유기농 가공 식품 쪽으로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현재 풀무원이나 동원F&B, 삼양사 등은 자체적으로 유기농 전문 브랜드는 물론 전문 매장들을 확보하고 수입 유기농 가공식품 판촉전에 들어섰다.
롯데백화점이나 신세계 백화점 등의 대형 유통업체들도 독자적인 유기농 매장을 마련해 수입유기농 가공식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입 유기농산물의 경우에는 수익성이 있는 걸까. 업계에 따르면 수입품의 경우에도 역시 적자인 경우가 많다.
현재 유기농 가공 식품의 경우 원재료가 95'% 이상 유기농재료만을 써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생산원가가 비싼 데다 국내로 들어오는 유통 경로를 보면, 유통 업자들이 이른바 ‘밴더’를 끼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두 단계를 더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판매가격이 훨씬 비쌀 수밖에 없고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의 상당수가 유통마진에 의한 가격거품이 형성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풀무원의 친환경식품 매장 올가의 이미경 홍보차장은 “현재 단계적으로 직수입 체체로 가고 있으며, 수입 유기농 가공식품의 가격안정화와 유통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모두 직수입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권 사업부장은 “국내 시장이 무르익고 있는 시점에서 수입유기농 가공식품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원재료는 물론 농장에서 가공식품 공장까지 전 과정에 대한 검증을 기준화해서 유기농산 가공 표시를 인증해준다”며 “국내에서도 관련 산업을 키우고, 제대로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국제수준에 맞는 체계적인 검증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