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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칼럼] 선진화로 가는 길목에서
[리드칼럼] 선진화로 가는 길목에서
  • 전광우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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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을 여행하다 보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다른 점이 경제 규모나 생활수준이라는 물질적인 차이 못지않게 의식이나 태도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차이에서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 가겠다는 기치를 걸고 중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등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환영할 일이고, 우리 국민 모두가 이런 꿈이 빨리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2만달러 시대로 향하기 위해서는 핵심 산업의 발굴이나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한 실물경제의 성장동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지나치게 숫자의 환상에 집착한 나머지 우리들의 의식수준이 소득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다.
이런 경우 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OECD 가입을 추진하고 있을 90년대 중반 무렵, 필자는 세계은행(IBRD)에 근무하던 시절에 만난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1인당 국민총생산이나 소득이라는 숫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 마인드가 얼마나 선진화되어 있는가, 즉 시민정신 또는 의식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달려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선진화로 가는 길목에서 과연 우리의 시민의식은 2만달러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수준과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후진적 정치행태나 파행적 노조문화가 빚어내는 극단적인 집단 이기주의, 합리성을 호도하는 과도한 정서주의, 나 혼자 잘살겠다고 이웃의 불행이나 불편은 모른 체 해버리는 결여된 공동체 의식, 우리 모두가 2만달러 시대로 향하는 길에서 버리고 가야 할 모습들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선진사회에 걸맞은 의식수준을 갖추기 위해서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도 우선 해야 할 일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공고히 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국가 경제의 활력은 심장과 신경의 역할을 하는 금융산업이라고 볼 수 있고, 금융의 건전한 발전은 상호신뢰의 틀 안에서 가능하다.
미국의 화폐에는 “In God We Trust”(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서로 신뢰한다)라는 글이 들어 있는데 바로 “신뢰기반 구축이 시장 중심체제의 근간이 된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러한 신뢰사회는 정직과 투명성, 그리고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시민정신과 확고한 시장규율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경제 현안의 하나는 300만이 훨씬 넘는 엄청난 숫자의 신용불량자다.
경제활동 인구의 근 20%에 달하는 신용불량자는 기업이나 금융회사에 비교하면 총체적 부실에 해당된다.
신용불량자의 양산은 경기불황과 고실업률과 같은 개인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도 큰 요인이지만 부채상환에 대한 철저한 책임 및 계약 정신의 결여 등 모럴헤저드(Moral Hazard)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크게 반성, 개선해야 할 점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로 향하는 여정은 우리의 의식과 관행이 선진국에 걸맞은 모습으로 거듭나는 자기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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