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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기의 한국농업, 비상구는 없나
3. 위기의 한국농업, 비상구는 없나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3.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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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개방은 대세인가?

지난 2000년 한중간 협상에서 빚어진 마늘파동. “휴대전화냐, 마늘이냐”로 대변된 마늘파동은 개방을 둘러싼 농업과 비농업 분야간의 갈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정부는 국내 휴대전화기의 수출을 위해 마늘의 수입물량을 늘리는 길을 택했고, 농민단체들은 울분을 터뜨려야 했다.

결국 개방을 둘러싼 찬반논쟁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굳이 농업을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할 것인지에서부터 출발한다.
또한 그 이면에는 식량자급 혹은 식량안보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깔려 있다.
최근 몇년 동안은 쌀이 남아돌고 있지만 농산물이 개방되면 안정적인 가격과 물량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농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반면 식량안보에 매달리기보다는 실리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단체들의 주장이다.


·윤석원 교수(중앙대 산업경제학) = 경제논리로도 농업은 독특한 기능을 인정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농업 문제의 핵심은 농지다.
국내 농지의 56%가, 논면적의 78%가 농업진흥지역으로 묶여 있다.
다시 말해 아파트나 골프장 등 다른 용도로 전용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사적 재산인 농지에 대해 규제를 가하면서 농산물만 시장경쟁에 맡기자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그만큼의 보호와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박찬호 실장(전경련 기획조정실) = 농업의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농가 인구의 비중은 8%에 달하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GDP의 비중은 4%에 못미친다.
또한 UR협상 이후 57조원이 넘는 돈을 농업에 지원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어떤 산업에 그만큼 돈을 투입한 적이 있나. 더 이상 보호를 논할 때는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WTO협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확연히 달라진다.
전국농민연대 등 농민단체들에선 WTO협상에서 아예 농업을 빼버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만큼 개방에 대한 위기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전체 농업소득의 40%를 차지하는 쌀이 개방되면 농민들이 입을 타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농협중앙회 이경원 조사역은 “쌀값이 폭락하면 금세 논값도 떨어지고 파산하는 농가가 많아질 것”이라며 “영세한 소규모 농가뿐 아니라 정부가 육성해 온 5ha 이상의 후계농들도 타격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박흥식 사무총장(전국농민회총연맹) = 5차 각료회의가 무산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왜냐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과 그들의 다국적 기업의 이익만을 창출하는 협상이 바로 WTO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곡물 메이저인 카길은 이미 국내 수입곡물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사정이 다른 선진국과 개도국을 붙여놓고 자율경쟁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 차라리 노동처럼 UN 산하에서 농업을 조정해 주는 기구를 만드는 것이 낫지 않나.

·송유철 실장(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 = 농업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수출 분야를 희생할 순 없다.
정부의 협상력을 탓하기도 하는데, 협상력이란 경쟁력을 갖추면 높아지는 거다.
농업도 산업의 측면에서 살려야 할 때다.
예컨대 바나나를 보자. 예전엔 바나나가 사치과일이었지만 수입자유화 이후 모든 사람들이 저렴하게 사먹는다.
농업에서도 모든 품목을 안고 갈 순 없다는 이야기다.


·윤석원 교수 = 무조건 개방이 대세라는 논리는 곤란하다.
지구상에 농업이 존재하는 나라가 어디냐. 바로 선진국이다.
가난한 나라에선 농업이 사라져 가고 있다.
왜 그럴까. 미국은 전체 농업예산의 20%를 직접지불제(농가에 대해 정부가 1평당 일정액을 직접 지불하는 형태)로 쓴다.
스위스는 67%, EU는 77%다.
반면 한국은 0.4%에 그친다.
심지어 미국은 UR협상 때 없어진 목표가격제까지 수십억달러를 더 들여 부활시킬 정도다.
그러면서도 개도국들한테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동등한 협상이 가능할 리 없지 않나.

·정영일 교수(서울대 경제학) = 개방 자체는 거꾸로 돌릴 수 없는 문제다.
UR협상에서 이미 농업은 자유무역체제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는 각국에 부담을 덜 가도록 한 흔적들이 많았다.
반면 이번 협상은 실질적으로 자유무역을 구체화하는 시기가 아닌가. 기본적으로 UR협상 때보다 개도국이 개방부담을 더 안아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2001년 도하개발 아젠다(DDA)로 명명된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면서도 기본 합의가 된 사항이다.
이제 와서 거부할 수 없는 문제다.
무엇보다 추후 강대국과 양자협상을 통하는 것보다 다자협상에서 실익을 챙기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방론자들은 지난해 10월 체결한 한-칠레 FTA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편다.
농업을 너무 지키다 보면 다른 분야에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자동차의 경우 EU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칠레와 FTA를 맺고 있는 나라들이 최근 무관세로 들어옴에 따라 한국 자동차의 칠레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2위에서 올 상반기에는 5위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무역협정이 발효되면 농업대책을 위한 기금마련이 가능한가도 논란거리 중 하나다.
정부는 수혜를 입는 업종이 기부금을 내는 식의 재원 확보를 구상하고 있지만, 실상 이에 동의하는 기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무역협회 정재화 FTA연구팀장은 “중국과 마늘파동이 일어났을 때 휴대전화를 수출하는 업계가 마늘재배 농민을 위해 기금을 낸 것은 잘못된 선례”라고 주장한다.



구조조정이냐? 소득보전이냐?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수석연구원은 “농업에서도 IMF위기가 온 것과 다름없다”며 “정부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미리 가정해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취약한 국내 농가들을 살리는 방안은 뭘까.

개방론자들은 자연스레 농업 구조조정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다.
쉽게 말해 경쟁력을 높여 살릴 수 있는 농가만 살리자는 것이다.
반면 소득보전 장치가 유명무실한 가운데 개방이 된다면 수많은 농가들이 몰락할 것이라는 게 개방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최세균 연구위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정연구센터) = 국내 농가 인구는 60살 이상이 절반을 넘는다.
이들이 하루빨리 농업을 떠나도록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은퇴장려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그래야 규모화도 이룰 수 있다.
지금처럼 호당 경지면적이 작고 생산비가 많이 들어서는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농가 인구가 지나치게 농업소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2001년 기준으로 일본은 농업소득이 18%에 머물고 대만도 18.5%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체 농가소득의 67.2%가 농업소득이다.
그만큼 농촌이 개발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민승규 수석연구원 = 농업 전체 평균으로 보면 경쟁력이 떨어지지만 일부 농민들은 엄청나게 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그런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리온실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정부는 지금까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일부 농민에게 많은 예산을 들여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경쟁력있는 농가를 어떻게 육성할 거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른 산업과의 연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농업 내부에서만 답을 찾으면 어렵지 않겠나. 예컨대 가나화랑에서 쌀을 소재로 한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
물론 농민들이 재료를 댔다.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린 성공적인 사례였다.


·윤석원 교수 = 개방이 대세라고 보면 대책은 일단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가격이나 품질경쟁력만을 주장하기엔 한계가 많다는 이야기다.
구조조정을 하자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정부가 6ha씩 재배하는 농가 7만호를 조성한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100만명 정도의 농민들이 빠져줘야 한다.
이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뭔가. 복지대책을 세우겠다고 하지만 농업예산은 계속 깎이는 게 현실이다.
먼저 소득보전에 대한 명확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정영일 교수 = 추곡수매로 대변되는 그동안의 가격지지정책은 사라져야 할 제도다.
쌀 생산의 과잉을 촉진시킨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나 정치권은 농민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제도라 포기하지 않아 왔다.
앞으로는 우리 쌀이 시장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 가지 더. 농업만으로 문제를 풀어선 안된다.
농촌에 대한 개발정책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농촌에 농가만 모여사는 곳은 이제 후진국뿐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손재범 실장(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 = 생산감축을 통한 구조조정방식은 쌀자급률을 떨어뜨리고 식량안보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우선 쌀자급에 대한 목표를 법률에 명문화하고 친환경직불제 등 다양한 형태의 직접지불제도를 확충해 소득보전에 힘써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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