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6:44 (수)
[특집] 한국 증시의 2대 주주,외국인을 따라잡자
[특집] 한국 증시의 2대 주주,외국인을 따라잡자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10.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인도 사람이다.
그들의 몸은 마음을 따른다.
외국인도 여럿이다.
여럿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군중심리다.


금융감독원의 집계를 보자.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등록한 외국인의 38.3%는 미국인이다.
1만439명 중 5676명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많은 국적은 영국이다.
1284명으로 8.7%이다.
일본인은 1201명, 8.1%로 영국인 투자자와 규모가 비슷하다.
알아채셨을 것이다.
한국시장 최다 투자자는 미국인이다.


미국인은 거래비중도 높다.
한국주식을 사고 파는 외국인 거래대금 중 미국인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래소에서 30.9%, 코스닥에서 34.3%이다.
두 번째로 많은 영국인 돈은 거래소에서 23.4%, 코스닥에서 11.4%로 미국과 차이가 크다.
한국 시장 최대 투자자도 미국인이다.
한국 시장에서 한국인을 빼고 가장 많은 투자자, 가장 많이 투자하는 투자자는 미국인이라는 이야기다.


미국인 투자자의 영향력은 한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전 세계 증시 시가총액의 57%를 차지하는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의 85%를 주무른다.
미국의 주식형 뮤추얼펀드는 전 세계 시가총액 중 20%에 달하는 3조달러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인 투자자들이 풀썩 주저앉으면 전 세계 증시는 자욱한 먼지에 휩싸인다.
미국 증시가 기지개를 켜면 전 세계 증시는 벌떡 일어난다.



심리적 동인,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여하간 미국인도 사람이다.
한국의 기관투자자, 개미 투자자들이 그렇듯 미국인 투자자들도 단일한 하나의 것이 아니라 연금부터 개인투자자까지, 뮤추얼펀드부터 헷지펀드까지 다양한 주체와 자금으로 구성된다.
이들 역시 때로는 경제 펀더멘털보다 심리적 요인에 좌우된다.
크게 보자면 미국 투자자도 한국 투자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원리로 움직이는 셈이다.


따라서 미국 자금이 어떻게 움직일까를 고민하기 전에 투자자 심리를 움직이는 보편적인 동인부터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언제 투자자금 유입세가 커지고 시장 참여자 수가 늘어나는가? 주가가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주식시장은 체감경기의 호전에 대한 바람으로 부풀어 오른다.
내 주머니에 돈이 없고 내 이웃이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투자자들이 주식시장 상승이 지속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 경기가 호전될 때, 미국에선 투자자가 늘어나고 투자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국 투자자가 한국 체감경기에 따라 증시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부터 미국 증시는 몰려드는 투자자와 몰려드는 돈으로 확실한 상승세를 탄다.
이렇게 몰려든 돈의 일부는 전 세계 증시로 퍼져 다른 나라 증시를 끌어올린다.
다른 나라의 투자자들은 미국 투자자금이 움직인다는 기대감으로 달려들어 함께 증시를 끌어올린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금이 한국 증시로 들어오는 경로도 그와 비슷하다.
우선 주가 상승 기대가 높아진 미국 투자자들이 펀드에 돈을 넣는다.
다우지수 편입종목 같은 우량주로 흘러든 돈이 넘쳐 나스닥 같은 기술주 주가에 불이 붙으면 기술주 비중이 높은 이머징마켓 증시로 주가 상승 기대가 옮겨온다.
극동아시아펀드, 이머징마켓 인덱스펀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펀드(Asia ex-Japan)로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펀드 유입세가 증가하면 미리 정해진 한국 투자 비중을 맞추기 위해 이머징마켓 담당 펀드운용자들은 한국 투자를 늘린다.
이들은 주로 MSCI지수에 편입된 한국 주식을 산다.
한국 주가는 시가총액 상위 우량주부터 뜬다.



한국 주식 매수세는 나스닥에 후행

한국 주식을 선별적으로 편입하는 글로벌펀드는 한국 증시의 상승세가 분명히 나타날 때부터 움직인다.
그러나 한번 움직이면 여파는 이머징마켓 펀드보다 크다.
MSCI지수를 기준으로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의 규모는 30억달러가 넘는다.
이 중 3%만 움직여도 1억달러, 우리돈으로 1200억원에 이른다.
‘바이 코리아’ 열풍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외국인, 특히 미국인의 한국 주식 매수세는 나스닥에 후행한다.
한국 거래소시장의 외국인 비중이 사상최고치인 38%를 찍은 올해 외국인 누적 순매수와 나스닥지수 추이를 보자. 3월말 나스닥지수가 오르기 시작했을 때도 한국 증시의 외국인 누적순매수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외국인 누적 순매수가 플러스로 돌아선 때는 5월말, 나스닥지수가 분명한 추세를 그리며 상승하고 있던 때였다.
대만 증시의 외국인 매수세도 패턴은 비슷했다.
한국 증시보다 덜 빠져 나가고 더 먼저 들어오긴 했지만 말이다.


외국인 매수세를 짐작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는 미국의 회사채 가산금리 추이다.
회사채 가산금리는 Baa 등급의 회사채와 미국 국채 10년물의 차이로 구한다.
Baa 등급은 A등급 우량채보다 투자위험이 크지만 이머징마켓 주식보다는 위험이 적은 자산이다.
Baa 등급 회사채 가산금리가 낮아진다는 것, 즉 Baa 등급 회사 채권값이 올라간다는 것은 곧 미국 투자자들의 위험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회사채 가산금리와 이머징 마켓 전체 펀드의 누적치를 비교해보면, Baa 등급 금리가 바닥을 찍고 한두달 뒤 이머징마켓 전체 펀드의 누적치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산금리 그래프의 축을 반전시켜 보면 상관관계는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국 투자자들은 무엇을 보고 나스닥, Baa 등급의 회사채, 이머징마켓 펀드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를 늘리기 시작할까?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세가지로 정리한다.
미국 경제 전망, 투자수익 전망, 금리 전망. 이 세 가지가 장밋빛이면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더 들어올 여지가 있다.


일단 투자수익 전망은 크게 높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증시는 4월 이후 50%나 올랐다.
급락했던 금리는 약간 반등해 이제 안정추세를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으로 돈이 유입될 매력도도, 채권시장에서 돈이 빠져 나갈 동인도 없는 셈이다.



분기 기업 실적·월간 소비지표에 주목

남은 변수는 미국 경제 전망. 미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미국 기업이 돈을 벌고 미국 소비자가 돈을 써야 한다.
이 센터장은 10월부터 발표될 3분기 미국 기업 실적과 월간 소비지표를 눈여겨보라고 조언한다.
특히 미국 상무성이 11일에서 14일 사이에 발표하는 소매보고서가 중요하다.
그달의 소비 유형과 소비자 지출유형을 보여주는 이 보고서는 월스트리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게다가 미국 소비자는 전 세계 경제의 25%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에서 GDP의 67%를 좌우하는 경제주체가 아니던가.

한국 투자자로선 긴장하고 바라봐야 할 변수가 하나 더 있다.
대만 주식시장 완전개방. 9월18일 대만 증권선물위원회는 10월 중순 적격외국인투자가제도(QFII)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계획보다 2∼3개월 앞당긴 것이다.
이에 따라 11월 열릴 MSCI 지수 검토회의에서 대만 편입 비중이 얼마나 확대될 것인가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만에 대한 MSCI의 이머징마켓 편입 비중은 현재 12.3%. 대만이 완전히 개방되면 최대 20.7%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MSCI에 따라 투자하는 펀드 자금에 조정이 일어나 대만으로는 최대 63억달러가 순유입되고 한국에선 최대 8억달러까지 순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미래에셋증권은 예측한다.


물론 대만 시장 완전 개방은 올해 초부터 알려진 변수다.
대만 증시가 이미 많이 올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지 어떤지는 가봐야 안다.
한국 증시에 영향력이 큰 미국 투자자의 마음은 IT붐과 안보 위협을 겪으면서 매우 변덕스러워졌다.
지난해 미국 증시의 변동성은 한국 증시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른다.
우산을 준비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