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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2020년 베이비부머들의 퇴직 그 이후
[커버] 2020년 베이비부머들의 퇴직 그 이후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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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시장 트렌드 대예측

20년짜리 모기지론으로 한도껏 대출받아 서울에 아파트를 사려 하시는가? 주식 투자는 위험하다 싶어 노후자금을 강남 오피스텔에 묻어두셨는가? 조심하시라. 부동산 투자 불패의 신화를 만들었던 베이비붐 세대의 첫 주자, 55년생들이 2011년부터 한국 평균 퇴직연령인 만 56살에 들어선다.
2019년엔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주자 63년생이 퇴직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퇴직 뒤에도 서울에서 살까? 노후자금은 쓰지 않고 부동산만 깔고 앉아 있을까?

올해 40살인 김아무개씨. 그의 아이들은 12살, 13살이다.
지난해 11월, 그들은 교육에 좋은 환경을 찾아 경기도 파주에서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단독주택 2층 30평형인데도 전세금은 2억6천만원. 다른 지역에선 같은 평수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대치동에 아이들 학원, 교육시설이 좋다고 듣고 무조건 옮겼어요. 제가 직장생활을 하니 아이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학원을 보내는 게 맘이 편해요.”

독서, 영어, 수학 분야는 소문과 달리 썩 맘에 드는 학원이 없어 요새는 본인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불만은 없다.
골프, 수영, 피아노 같은 예체능학원 선생들은 훌륭하기 때문이다.
단란주점, 술집이 없어 아이들을 안심하고 내보낼 수도 있다.


그는 노후자금을 연금과 저축으로 모은다.
직장일, 자기 공부에 바빠 주식, 채권은 할 시간이 없다.
“남편이 공무원이에요. 공무원 저축을 매달 50만원씩 20년을 부으면 퇴직 때 3억∼4억원을 받을 수 있어요. 공무원 연금도 있고요. 남편이 올해 45살이에요. 15년 뒤 퇴직하면 그 돈으로 세계 일주를 할 거예요. 함께 연구소를 차려 책도 쓰고요.”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그는 집을 공기 좋고 살기 복잡하지 않은 전원주택으로 옮길 작정이다.


40대와 성향이 비슷한 50대의 삶은 40대의 미래를 투영한다.
올해 53살인 최아무개씨. 그는 지난해 구리시 토평 동양아파트 48평형으로 이사 갔다.
15년 동안 살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은 전세를 놨다.
“둘째도 대학에 갔고, 공기 맑은 데서 넓직하게 살고 싶었어요. 회사(잠실)까지 버스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고….”

노후자금? 국민연금, 개인연금 말고 따로 마련한 것은 없다.
주식투자? 꿈도 안 꾼다.
97년 중간퇴직금과 여윳돈 1억5천만원을 넣었던 계좌는 지금 1500만원이 되었다.
재건축붐을 타고 다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값이 오르면, 얼마 전 분양받은 강남 갤러리아 팰리스 27평형을 세 놓으면 노후는 그럭저럭 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생각한다.
그 돈으로 그는 2010년 정년퇴직해 고향인 전주로 갈 계획이다.



2030세대 소비패턴, 4050세대와 달라

이들 기성세대를 읽는 키워드는 자녀, 건강, 전통이다.
방송광고공사가 지난해 6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MCR(매체 및 제품 이용행태)리포트는 40대의 제1관심사는 자녀 교육이라고 보고한다.
건강은 2순위란다.
40대는 전통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캐주얼보다는 정장을, 양옥보다는 한옥을, 양식보다는 한식 밥상을 좋아한다.
인터넷 이용비율은 56%. 20∼30대의 이용비율이 72∼86%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재테크 수단으로는 다른 세대보다 부동산 선호도가 높고 주식 선호도는 낮다.


그럴 만하다.
55∼63년생 1차 베이비부머들이 사회에 진출해 집을 사기 시작한 80년대부턴 부동산시장이 상승세를 탔고, 교육, 문화 등 생활환경을 고려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는 강남 아파트 붐이 일어났다.
이들 대부분은 2020년을 전후해 직장을 떠난다.
경제활동 인구에서 벗어나기 시작해도 그들이 서울, 수도권 생활을 고집할까? 금융자산보다 부동산 투자를 선호할까?

1차 부머의 뒤에 그 자리를 차지할 68∼76년생 2차 부머들, 1차 부머가 낳은 79∼86년생 메아리부머를 보자. 2020년, 이들은 30∼50대로 한창 일할 나이일 터. 그런데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이 전 세대와는 영 딴판이다.
MCR리포트의 분석은 이렇다.


“현재의 2030세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는 소비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70∼80년대 정치, 경제발전의 혜택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4050 기성세대보다 씀씀이가 크고 자신한테 투자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삶의 질적 풍요를 중시, 기성세대에 비해 레저와 여가에 지출하는 비중이 많다.
기성세대와 달리 집을 구입하기 전이라도 차부터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주식투자 선호도, 사이버 트레이딩 이용도가 기성세대보다 높다.
결혼하지 않는 1인 가구, 아이를 낳지 않는 2인 가구 비중도 기성세대보다 높다.
이들이 주축을 이루는 2020년대에도 자산시장 트렌드가 지금과 같을까?


‘4저’ 트렌드 맞춰 투자전략 다시 짜라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홍성국 부장은 과거 트렌드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다.
저금리, 저투자, 저물가, 저성장 등 ‘4저’가 트렌드인 베이비부머 시대 후기엔 투자 마인드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조언은 이렇다.
첫째, 금리와 배당수익을 비교하는 습관을 가져라. 연금 같은 대형투자가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금리보다 높은 배당수익을 주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둘째, 장기 투자는 1등 기업에만 해라. 주가 양극화는 지속될 것이다.
셋째, 기대수익률을 낮춰라. 4저 시대에 기대수익을 높이려 드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한국보다 10여년 먼저 베이비붐을 겪은 미국이 그랬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46년생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85년부터 미국의 경제와 자산시장은 장기 상승세를 탔다.
고성장 시대가 길어지면서 과잉공급이 일어났다.
20년 뒤 베이비부머의 아이들, 메아리부머는 저성장 시대에 남게 됐다.
모든 자산의 값이 오르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주식 중에서도 배당수익과 시세차익이 높은 1등 기업, 독점기업 주가가 더 올랐다.
부동산 중에서도 캘리포니아, 보스턴 같이 살기 좋은 해안지역 집값이 더 올라갔다.
오르는 상품만 계속 오르다 보니 자산시장 양극화는 심해졌다.
나머지 자산은 저수익, 고위험 상품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도 자산시장 양극화는 시작됐다.
주식시장에선 시가총액 상위종목 우량주들이, 채권시장에선 국고채와 일부 A등급 우량채가, 부동산시장에선 서울 강남 일부 지역만이 꾸준히 값을 올리고 있다.
그러면 우량주, 우량채, 강남 부동산에 투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 부분부터 한국과 미국이 다르다.


“강남 아파트요? 지금 팔 수 있는 사람은 행운입니다.
받아줄 수요가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말한다.
“부동산도 앞으로는 위험자산입니다.
금융과 부동산의 연계성이 높아지면서 가격 변동폭이 커지는 추세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기대수익률도 다른 자산보다 낮고요.” 90년대 이후 누적수익률을 보면 서울 아파트 수익률이 종합주가지수보다 높았던 때는 딱 두 번, 98년 외환위기 때와 올해뿐이었다.


그는 조언한다.
“부동산에 많은 자산을 묻어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리츠, 오피스 같이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 투자하세요.” 오피스텔, 원룸은 임대수익을 꾸준히 내기엔 공급초과 상태란다.
그는 부동산 전문가인데도 채권 같은 안정적 금융자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추천한다.


금융시장 트렌드도 미국과 다르다.
저금리 시대에 경제활동을 시작한 미국의 베이비부머는 주식, 뮤추얼펀드 같은 고위험 자산 투자를 주저하지 않았다.
고금리 시대를 산 한국의 1차 베이비부머는 주식이라면 신물을 낸다.
몇번 주가 폭락을 겪은 탓이다.
개인 자산 중 주식비중은 미국인이 30%를 넘는 데 반해 한국인은 7.8%밖에 되지 않는다.
대우증권 홍성국 부장은 “이제 저금리 시대가 본격적으로 왔으니 우리 금융자산 구조도 바뀔 것”이라고 내다본다.



새 트렌드, 부동산 지고 금융자산 뜬다

국민연금 등 대형투자자의 시장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기대해볼 만한 호재다.
국민연금연구센터 기금정책과의 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금융자산 투자액은 2012년에 주식 41조원, 채권 192조원을 넘어선다.
그 당시 시가로 봤을 때 한국 주식시장의 10%, 채권시장의 18%를 차지하는 규모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미국의 기업연금과 비슷한 퇴직연금제를 실시하겠단다.
미국에선 기업연금, 개인연금, 뮤추얼펀드가 커지면서 주가와 채권값이 올랐다.
한국에선 무려 20여년 늦게 그런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트렌드는 시작됐다.
자산시장 변화의 예고편은 상영되고 있다.
예고편은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부동산은 지는 해고, 금융자산은 뜨는 해다.
’ 이런 상황에서 20년 뒤를 내다보며 모기지론으로 한껏 대출받아 집을 산다? 노후자금을 마련하려고 부동산에 장기 투자한다? 잃는 기회는 없나, 다가올 위험은 없나 꼼꼼히 따져볼 때다.
한국 자산시장에 다른 물결이 몰려오고 있으니.

그러면 월세로 살면서 있는 자산을 한국 주식, 한국 채권에 ‘몰빵’ 투자한다? 잠깐! 베이비부머 불황이란 함정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98년 외환위기로 1차 베이비부머들이 감원 대상으로 몰려 전체 실업률이 7%로 치솟았을 때, 2차 베이비부머가 속한 청년세대 실업률은 12.2%를 기록했다.
지금도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가 넘는 6.9%에 이른다.
불황 탓, 생산성 향상 탓도 있지만 대졸자 숫자가 많은 탓도 크다.
LG경제연구원은 청년실업 문제가 대졸자 감소세에 가속이 붙는 200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그 뒤도 첩첩산중이다.
한국 금융시장이 탄탄하게 뜨려면 2차 베이비부머들이 주도하는 한국의 산업이 중국, 인도란 만만치 않은 경쟁자와 싸워 살아남아야 한다.
게다가 2019년부터는 인구 14%가 65살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출산율 1.4명 상황을 지속시키면 국내 경제활력은 뚝 떨어진다.



그래도 금융자산 ‘몰빵’ 투자는 위험

비정규직 증가의 폐단도 해소해야 한다.
내일 돈벌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고용자가 주식이나 펀드 같은 위험자산에 돈을 집어넣는 것은 투기행위에 가까운 터. 현재 추세대로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기업연금, 개인연금 시장의 성장은 바라기 어렵다.
한화증권 투자전략팀 홍춘욱 팀장은 미국에선 정규직 고용이 늘어나면서 기업연금, 뮤추얼펀드 시장이 커 주식시장으로 돈이 흘러들었다고 전한다.


국민연금만으로는 장기투자 문화 형성이 불충분하다.
재정고갈 시점이 언제냐 골머리를 앓는 처지에 한국 금융시장을 받쳐주자고 투자 규모나 기간을 늘릴 순 없을 것이다.
벌써 국민연금 내부에선 분산투자 차원에서 해외투자 비중을 금융자산의 5%까지 늘리겠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국내 매수세가 탄탄치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는 언제든 손 털고 나간다.
큰손들이 이러는데 개미들이 배겨날 재주는 없다.
제아무리 금융시장이 중장기적으로 뜰 전망이라고 해도 ‘몰빵’ 투자는 위험하다.


베이비부머 호황은 실물경제가 떠받쳐주지 못하면 한순간에 베이비부머 불황으로 바뀐다.
결국 금융의 영원한 콤플렉스는 베이비붐도 해소해줄 순 없다.
‘금융은 실물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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