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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메모] 박하사탕
[편집장 메모] 박하사탕
  • 이코노미21
  • 승인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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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석대’는 우리 반에서 힘이 가장 셉니다.
요즘 말로 짱이죠. 아이들은 석대의 눈치만 봐요. 까딱 잘못하다간 석대의 주먹에 코피가 터질 수도 있으니까요. 석대는 나쁜 아이들을 혼내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아이들에게 그 무지막지한 주먹을 날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석대가 씩씩거리며 교실로 들어왔어요. 어떤 놈이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갔다는 거예요. 석대는 평소에 고깝게 생각하던 ‘이락’이를 한패로 몰아부쳤어요. 석대는 이락이 멱살을 잡으며 금방이라고 때릴 듯이 주먹을 치켜들었어요. 이락이는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요. 다른 친구들도 이락이가 한패라는 증거도 없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석대를 말렸어요. 그렇지만 석대는 오히려 이참에 이락이한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며 친구들한테 손발을 잡으래요. 몇몇 친구들은 엉거주춤 서 있고 다른 친구들은 뒷걸음질을 쳤어요. 석대가 나한테는 이락이 팔을 잡으라더군요. 순간 당황했죠. 이락이도 사실 착한 놈은 아니지만 억울하잖아요. 그렇지만 석대 말 안 들었다간 별로 재미 없을 거 같았어요. 더구나 석대는 내 짝꿍 ‘이북’이가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엄포를 놓고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내가 맨날 석대 가방을 들어주긴 했지만…. 이북이는 덩치는 작지만 깡이 대단해요. 주머니에 짱돌이 있다면서 석대한테도 대들거든요.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박하사탕이 이락이 호주머니에서 삐죽이 나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에이, 내가 때리는 것도 아닌데 뭐….’ 그냥 눈 질끈 감았죠. 석대는 이락이를 흠씬 두둘겨팼어요. 이제 이락이의 박하사탕만 나눠먹으면 만사 오케이. 근데 웬일인가요. 이락이는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석대의 가랑이를 잡고 놔주질 않네요. 석대는 이번엔 나한테 이락이 손을 콱 밟아 버리래요. 그냥 코피나 닦아주라면 몰라도 손을 어떻게 밟아요. 석대 말을 안 들으면 나한테 손해일까요. 석대가 나몰라라 하면 이북이가 괴롭힐 거고, 그러면 공부고 뭐고 다 틀린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요즘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박하사탕도 먹고 싶고요. 근데 아닐 수도 있어요. 내가 어떻게 하든 석대가 이북이를 가만 놔둘 리 없거든요. 주머니 속에 있는 짱돌을 내놓게 하지 않으면 저도 불안할 테니까요. 또 석대가 박하사탕을 나눠준다는 보장도 없어요. 박하사탕 노리는 친구들이 한둘도 아니고요.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이런 고민에 빠졌다면 어떻게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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