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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이라크 파병의 손익 계산서
[진단] 이라크 파병의 손익 계산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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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추가 수익〈 미국의 ‘복수’ 서브넥스 장연(50) 사장은 이라크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
장 사장은 93년부터 지금까지 11년째 이라크만을 대상으로 무역업을 해왔다.
장 사장이 운영하는 서브넥스는 현대건설, 대우인터내셔널과 함께 이라크 현지에 지사를 둔 국내 3대 기업 가운데 하나다.
이번 이라크전쟁이 터질 때 장 사장은 한국인으로는 마지막까지 현지에 남아 있다 탈출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벌써 몇 차례 이라크를 다녀왔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 무역봉쇄 조치가 내려졌지만, 96년부터 유엔 통제하에 소규모 무역이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이때 서브넥스는 주로 산업용 완제품이나 상용차를 이라크 정부에 팔았다.
지난 5월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위성수신기, 중고차, 에어컨, 석유난로 같은 민간 소비재 중심으로 취급 품목이 바뀌었다.
전쟁이 끝나자 민간 소비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라크 과도정부와도 관계를 텄다.
장 사장은 요즘 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둘러싼 ‘국익 논쟁’에 불만이 많다.
“파병은 당연히 불리하죠. 아무리 좋은 명분으로 가도 미국과 한패라고 볼 겁니다.
가능하다면 안 보내는 게 최선이죠.” 물론 미국의 요청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한다는 건 장 사장도 잘 알고 있다.
그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파병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이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보내자는 식의 주장이다.
“그건 정말 아니라고 봐요.” 장 사장은 미국이나 미 군정당국과 관계를 잘 맺으면 한몫 챙길 수 있을 거란 주장도 착각이라고 본다.
“이라크인은 자긍심이 강한 민족이죠. 미군도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어요. 장기적으로 보면 이라크인들과 유대관계를 만드는 게 훨씬 유리해요.” 전투병 파병으로 이라크 지사가 테러 대상에 들어갈 거란 사실도 불안하기만 하다.
이라크가 반미주의자들이 미국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10월18일, 정부가 이라크 추가파병 방침을 밝힌 이후 찬반 논란이 어느 때보다 거세다.
특히 이번엔 파병의 경제적 효과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막연하게 국익을 들먹일 게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경제적 이득을 객관적으로 저울질해 판단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찬성 측에선 ‘제2의 중동 특수’, ‘GDP 0.2% 증가’ 등을 앞세워 파병 판단에서 경제적인 고려가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쪽에선 파병의 경제적 이득이 별로 없거나 오히려 마이너스라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이라크 수출, 파병 안 해도 증가한다” 파병 효과를 계량화해 객관적으로 따져 보는 건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책 효과는 중첩해서, 대개는 간접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라크 전후복구사업에 우리가 얼마나 참여할 수 있나’와 ‘이라크 수출이 얼마나 증가할 것인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지난 10월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이걸 종합해 발표했다.
전경련이 추산한 이라크 파병의 경제적 효과는 모두 101억2100만달러(약 12조원)에 달했다.
전경련 조사본부 이승철 상무는 “국민 갈등 현안이 있을 때마다 객관적인 근거보다는 찬성 몇 %, 반대 몇 % 하는 식으로 여론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선진국처럼 정책결정에 앞서 철저한 손익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경련이 내놓은 조사결과는 이런 의도엔 크게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곳곳에서 허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먼저 수출 증가분을 살펴보자. 전경련은 이라크 추가파병이 앞으로 5년간 37억9400만달러어치의 대이라크 수출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계산했다.
전경련 조사본부 김보수 차장은 “현장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업종단체가 추산한 걸 종합한 것”이라며 “전혀 부풀려진 게 아니다”고 말한다.
어쨌든 앞으로 이라크 수출이 늘어날 건 분명해 보인다.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 있는 코트라(KOTRA) 중동아프리카지역본부 이선인 본부장은 “이라크는 이란과 8년 전쟁, 걸프전 이후 경제제제 등으로 20년 가까이 폐쇄됐던 나라라 생필품이 기본적으로 부족한 상태”라며 “자유화로 수요가 엄청나게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본부장은 “올 들어 중동지역 교역이 작년보다 13% 증가했다”며 “이라크에도 전쟁이 끝난 다음, 6월에서 9월까지 2억달러 정도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전경련이 추산한 수출증가액을 이라크 파병의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박복영 연구위원은 “2008년까지의 이라크 수출동향 추정치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한다.
파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라크 수출은 전투병 파병과는 무관하게 꾸준히 증가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후복구사업 수익추정은 더 엉터리다.
전경련은 앞으로 5년 동안 63억2700만달러어치의 이라크 건설공사를 수주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세부적으로 파견 한국군 관련사업과 우리 정부가 내는 분담금 관련 사업, 기타 전후 복구사업에서 수익이 날 걸로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군 관련사업은 우리가 내고 우리가 쓰는 돈이다.
파병 자체를 안 하면 비용과 수익이 함께 없어진다.
우리가 내는 분담금 관련 사업은 100% 우리가 따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파병을 안 해도 수주할 수 있는 몫이다.
거부 땐 대미 통상 갈등·북핵 문제 악화 우려 기타 전후복구사업은 계산이 좀 더 복잡하다.
560억달러로 예상되는 이라크 복구사업 비용 가운데, 미국이 203억달러를 내고 나머지를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와 기타 국가들이 분담하게 된다.
미국이 부담하는 돈은 대부분 미국과 이라크 기업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올해 미국 국제개발청(USAID)이 발주한 공사의 주 계약자는 모두 미국 기업이었고, 하청 계약자의 90% 이상이 이라크 기업이었다.
주둔군인 미국으로선 민심수습을 위해서도 이라크 기업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내는 분담금을 가져오기는 더 어렵다.
박복영 연구위원은 “각 국가가 내는 지원금은 이런 목적으로 쓰고, 이런 기업에 주라는 조건이 붙어 있어 제3국이 끼어들기 어렵다”다고 말한다.
그나마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건 경쟁 입찰에 붙여질 국제기구의 소규모 지원금뿐이다.
이라크 파병의 경제적 효과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파병을 해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수익이 아니라, 파병을 안 할 경우 당할 수 있는 경제적 불이익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대미 통상 갈등 심화, 대외신인도 하락, 북핵문제 악화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파병 문제를 경제적 이슈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박복영 연구위원은 “파병은 한미동맹 등 외교 전략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며 “이를 경제적 이슈로 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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