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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내 노후자금은 안녕할까?
[커버] 내 노후자금은 안녕할까?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3.1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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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 수익률 확보 위해 재계의 반대 불구 “주주권 행사는 불가피” 목소리

“우리 국부가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면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
” 12월4일 재정경제부 한 과장은 국정 브리핑 기고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11월 말 현재 외국인 지분율 40% 이상 기업 32개가 차지하는 순이익은 전체 상장기업의 53.71%를 차지한다.


11월30일 금융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장악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유한 은행지분을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에게 이전한 뒤, 추후 전략적 기관투자자에게 매각하거나 특별 펀드를 조성해 국민주 형태로 민영화하자.” 외국계 은행은 국내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시장 안정보다는 단기 수익에 치중해 시장 위험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다.


여기저기서 국민연금을 구원투수로 요청한다.
최근 이 목소리는, 증권거래소의 외국인 지분율이 40%를 넘어서고 현투증권이 푸르덴셜에 매각되자 더욱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에 이어 LG카드까지 외국 자본 매각이 거론되면서 도하 언론은 긴박하게 외국 자본의 ‘대항마’로 국민연금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달 꼬박꼬박 연금을 내고 있는 가입자들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내 노후자금을, 내 자식의 노후자금을 위험 자산인 주식에 넣어도 될까? 국익 따지다가 실속을 못 챙기는 것은 아닐까? <Economy21>은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면서 시장에 순기능을 하는 비법을 찾아봤다.



질문1. 자식한테 자산을 물려주려 한다.
어떤 자산을 사 두겠는가.

질문2. SK주식을 가지고 있다.
주주총회 때 2대 주주이자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이 최태원 SK회장 사임안을 올렸다.
어느 편을 들겠는가.

마음속에 답을 떠올리셨는가? 그러면 만약, 국민연금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면 어쩌시겠는가? 그래도 답은 같은가? 우리는 2가지 ‘현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민연금은 일반 펀드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기업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다는 것.

국민연금연구센터 한성윤 박사는 “흔히들 국민연금을 단순한 펀드로 보지만 펀드와 연금은 다르다”고 말하며 “국민연금 기금은 일개 투자신탁사가 운용하는 펀드와는 달리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런 대규모 자금을 운용할 땐 딜(거래)보다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시장 왜곡을 줄이면서 시장과 조화를 이루도록 운용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배병준 연금재정과장은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전경련이나 경총은 그에 반대하고 있다”며 “기업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주체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민연금의 SK지분율은 4%로 템플턴, 헤르메스 등 소버린을 제외한 외국계 펀드 지분보다 많다.
국민연금은 아직 SK 관련 사안에 입장을 밝힌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기업 지분을 인수해 국부 유출을 막아야 한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기금(캘퍼스)처럼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 주식투자를 늘려 장기투자문화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요구들은 국민연금의 ‘현실’에 집어넣으면 그대로 튕겨져 나온다.
현재의 국민연금은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만한 구조가 아니다.



금융 자산 중 주식 비중 올 연말 8.5%

우선 자산 구조를 살펴보자. 국민연금 기금은 지금 한국 주식시장에 올라온 주식의 2.7%를 가지고 있다.
이건 12월 초에 나온 수치다.
게다가 내년엔 3조4천억원을 주식시장에 더 쏟아넣을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주식의 3.5%는 국민연금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국민연금 기금의 금융 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말 8.5%에서 내년 말 9.1%로 늘어난다.
12월 기준으로 국민연금 모델포트폴리오에 들어간 종목은 76개 우량기업 주식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장재하 주식운용팀장은 “그래서 국민연금은 대형 우량주 위주의 장기 보유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캘퍼스가 미국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9%, 국민연금이 한국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다.
시장 대비 규모를 감안하면 일부 종목에 대해선 조금만 사도 주가가 오르고 조금만 팔아도 주가가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연금이 주식 자산 보유를 늘리면 국민연금에 대한 자산평가는 주식시장의 변동에 따라 크게 움직이게 된다.
물론 주가가 떨어졌을 때 팔지 않으면 손실은 확정되지 않는다.
우량주 장기 보유로 장기적인 수익률은 지금보다 더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주가가 떨어져 기금의 주식 자산 수익률이 줄어드는 현상을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두고 보겠느냐 하는 것이다.
자산의 6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는 캐나다 퀘벡주 연기금은 연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도 있다.
국민연금은 지금 전체 자산의 76%, 금융 자산의 90%를 국공채 등 국내 우량채권으로 가지고 있다.
연금의 투자성향은 가입자의 투자성향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국민연금 가입자의 투자성향이 바뀌지 않아도, 또 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높이지 않아도 주식시장에 대한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민연금의 기금적립 규모는 한국 경상GDP의 15.6%에 이른다.
현행 연금법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2035년엔 경상GDP의 40%까지 증가하게 된다.
국회 계류 중인 재정 안정화방안이 통과되면 2035년 기금적립 규모는 경상GDP의 80%까지 상승하게 된다.


이런 규모의 기금을 모두 국내 우량채권으로만 가지고 있는다? 나중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때가 온다.
국내 채권 발행량 증가세가 국민연금 적립액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용본부 박봉권 채권운용팀장은 “아직 채권 확보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644조 채권시장에서 83조원, 12.7%를 국민연금이 보유하고는 있지만 분할매수해 만기 보유하는 전략을 쓰면서 시장 영향력을 줄이고 있단다.
그는 또 내년부터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할 MBS(모기지유동화채권)가 연금의 채권 수요를 어느 정도 채워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30여년 뒤 경상GDP의 40%에 이르는 국민연금을 채워 줄 채권 발행시장이 과연 한국 안에 있을까?


규모 워낙 커 손절매 규정도 유명무실

국민연금 기금은 채권 이외 자산 비중을 점차 높여 가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12월5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내년 말까지 금융부문 중 주식 비중을 8.5%에서 9.1%로, 부동산간접투자와 SOC투융자 등 대체투자 비중을 0.6%에서 1.2%로, 해외투자 비중을 0.8%에서 3%로 높이겠다는 골자의 운용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채권 비중은 90.5%에서 89.1%로 줄어들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변화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중 중장기 운용방향에 의거한 것”이라며 “엄격한 위험관리 하에 주식, 대체투자 등 위험 자산 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는 국민연금이 처한 두 번째 ‘현실’로 넘어간다.
국민연금의 보험료 절반을 기업이 부담하고 있는 현실, 기업주 역시 국민연금 가입자 주체인 현실 말이다.
기업, 특히 대형우량주로 분류되는 대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확대가 달갑지만은 않다.
주가뿐 아니라 지배구조에 미치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모델 포트폴리오 안에 들어가는 종목수는 적다.
거래소 854종목, 코스닥 889 종목 중 국민연금 리서치팀의 투자대상목록에 들어가는 종목은 120개, 주식운용팀의 모델포트폴리오에 들어가는 종목은 76개 정도다.
시가총액 1천억원 이상, 연간 매출액 300억원 이상 등 종목 선정에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보유주식 비중은 주식시장의 2.7%에서 내년 말 3.5%로 0.8%포인트 정도 올라간다.
편입할 수 있는 종목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투자 규모는 그 이상 늘어나니 몇몇 대형종목은 별 수 없이 국민연금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일부 우량중형주는 벌써 국민연금의 지분 소유 상한인 10%대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은 여간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쌓이는 적립금 규모가 커서 지분을 한번 팔고 나면 다시 사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
또 거대한 시장 영향력 탓에 국민연금 기금은 보유 주식을 일반 펀드처럼 기계적으로 손절매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이 다 팔기도 전에 주가는 더 급락하곤 한다.


이미 국민연금 기금의 손절매 규정은 유명무실해졌다.
기금운용규정 제16조는 “전 주말 종가가 장부가 대비 30% 이상 하락하고 운용기준지수 등락률에 비해 20% 하락한 종목은 매도하라”고 되어 있지만 이런 기계적 손절매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 상황을 고려해 투자위원회에서 매도가 부적절하다고 인정한 종목은 매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땐 보유종목 대부분에 손절매 신호가 들어왔지만 매도를 유예해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주주권 행사 공식 가이드라인 없어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안정적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우찬 교수는 “국민연금은 운용자금이 대규모라 자주 매매하지 못해 환금성에 제약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기업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위험 관리를 하려면 기업 경영을 감독할 수밖에 없다.


“목적과 수단을 헷갈리면 안 된다”고 김 교수는 덧붙인다.
“일각에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조하는데 그게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를 제대로 고쳐야 국민연금이 안정적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기업도 김 교수의 논리에 찬성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 경영자총연합회 등 기업대표자들은 지난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소액주주들이 경영 감시에 나선 마당에 정부의 실질적 영향권 안에 있는 국민연금이 거대 연기금까지 전면에 나서겠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펼쳤다.


2003년 국민연금 기금이 행사한 64건의 의결권 중 3건만이 반대쪽으로 던져졌다.
그것도 주주가치 감소, 투명성 결여 등 일반 펀드가 자기 보유 주식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행사하는 수준 이상은 아니었다고 관계자는 전한다.
국민연금 기금은 공식적으로 결정된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없이 주식운용팀 내부 규정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기업도, 노동자도, 지역 가입자도 모두 인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 결국 열쇠는 거기에 달려 있다.
그래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도, 중장기 자산운용정책도 권위를 얻을 수 있다.
자손한테 안정적 수익을 내는 연금 자산을 물려주고 싶다면, 국민연금이 주식투자를 늘려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으려면, 연말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관련 법안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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