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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비즈니스 모델 독점 반대"
[커버스토리] "비즈니스 모델 독점 반대"
  • 김상범
  • 승인 2000.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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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기본정신에 반하는 특허제도...창조의 힘을 구속하지 말라 “어느날 갑자기 고소장이 날아든다.
당신은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훔쳤다.
살벌한 문구가 멀쩡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눈물을 머금고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거나, 아니면 회사 간판을 내릴 것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아이디어에도 특허가 인정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사람의 머리를 구속한단 말인가.” 석달 전 사이버교육 사이트를 개설한 김아무개(35) 사장은 요즘 ‘비즈니스 모델 특허 괴담’에 시달리고 있다.
아내와 함께 육아정보를 인터넷으로 제공하고, 유아용품도 온라인으로 팔고자 했던 그에게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유령처럼 섬칫하다.
김 사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미 남들이 하고 있는 사업에서 슬쩍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비즈니스 모델 특허와 관련한 기사를 볼 때마다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무슨 소리야, 아이디어에도 특허를 인정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야!” 속으로 성질을 부려보지만, 메아리가 들리지 않는다.
공연히 떠들고 다녔다가 글로벌 시대, 지식기반 시대, 디지털 시대라는 최첨단 구호에 꼼짝없이 짓눌릴 것 같다.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무식한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속앓이보다 고통스럽다.
머리좋은 사람은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니, 비즈니스 모델을 특허내고, 그것을 수출해 국위를 선양할 수도 있겠지 싶다.
‘인터넷 강국, 코리아, 비즈니스 모델 강국 코리아’ 그런 희망을 꿈꾸는 이들이 부럽기만 하다.
그래도 아직 갈피를 못잡겠다.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는 이런저런 비즈니스 모델 특허 세미나에 참석해도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보조의자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귀를 기울이지만, 도대체 비즈니스 모델이 뭔지,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건지, 특허를 출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을 뿐이다.
일단 무조건 서둘러야 한다는 조급함이 머리를 짓누른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라는 핵미사일이 인터넷업계를 겨냥해 점점 고도를 낮추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방식, 이른바 비즈니스 모델에 특허를 인정하겠다는 특허청의 공식발표 이후 비즈니스 모델 특허출원이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개중에는 핵탄두를 서너개씩 장착한 미사일이 숨어 있다.
누가 종말의 위기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언론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의미와 중요성을 판에 박힌 듯 강조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 날 테니 지금 당장 서두르라고 등을 떠민다.
한편에선 이미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둘러싼 분쟁이 국내에서도 시작됐다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그런 분위기에 눌려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대세에 빨리 동참해야 한다는 추세론이 ‘특허’를 받은 듯하다.
하지만 특허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선 그런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특허인가”고 묻는다.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최근의 분위기에 정면도전을 불사하는 단체도 등장했다.
아직은 메아리가 크진 않지만, ‘그래 그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동조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말도 안되는 특허에 대해 무효심판을 청구합시다 사회운동의 정보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그런 반란의 선두에 서 있다.
지난 3월 삼성전자의 ‘인터넷상에서의 원격교육 방법 및 장치’ 특허에 대해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해 주목을 받았던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 특허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반대논리는 인터넷의 기본정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서 비롯한다.
이들은 비즈니스 모델 특허가 아이디어 자체에 독점을 부여함으로써, 인터넷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허는 기본적으로 발명에 대한 동기부여를 통해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인터넷 사업방식과 같이 단순한 아이디어에 특허를 허용하게 된다면 특정 기업에 너무 과도한 권한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인터넷을 단지 전자상거래를 위한 공간으로 전락시키지 말라고 경고한다.
인터넷은 특허라는 보호장치없이도 이미 혁신적이고 창조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효용성에 의문을 던지는 셈이다.
그들은 별 쓸모도 없으면서 소수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특허를 굳이 인터넷 공간에 들이밀 이유가 뭐냐고 따진다.
게다가 인터넷은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보호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팀장은 “비즈니스 모델 특허 보호기간이 20년인데, 이는 인터넷에선 영구적인 시간”이라며 특허시스템의 시대착오성을 질타한다.
오 팀장은 “변리사들도 사실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단지 경제적 문제 때문에 본심과 다른 주장을 펴고 있을 뿐이다”고 잘라 말한다.
비즈니스 모델과 특허는 기본적으로 모순이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부당성을 진보적 사회단체만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깃발 주변에 또다른 깃발이 세워지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과 특허는 기본적으로 모순이라거나, 신중한 접근을 제안하는 전문가들의 무리도 생겨나고 있다.
고려대 이경전 교수(경영학과)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특허가 되기 힘들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다.
“다른 사업자에게 진입장벽이 되는 특허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특허로 인정받기 어렵다.
반면 특허가 용이한 작은 범위의 구체적 특허는 다른 사업자가 특허범위를 비켜나갈 수 있는 여러가지 비즈니스 모델과 방법이 존재한다.
” 특허의 범위가 포괄적이면 인위적인 진입장벽이 되고, 범위가 작아지면 특허를 빠져나갈 구멍이 많기 때문에 특허의 존재가치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비즈니스 모델과 특허는 기본적으로 모순이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인터넷 비즈니스는 특허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객이 창출하는 가치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업들이 굳이 특허출원을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후발 경쟁업체에 거대한 진입장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말라”는 충고도 덧붙인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가 결국은 인터넷의 기본사상과 맞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다.
신중하라, 신중하라. 강력한 반대입장은 아니지만 신중한 대처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산업기술정보원의 윤권순 책임연구원은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경영의 핵심이 되는 영업기법을 포함하고 있어 시장에서의 독점력은 가히 파괴적”이라고 전제하고 “그 영향이 부정적이라면 현재의 특허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해 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와 관련해선 아직 국제적인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고, 따라서 각국의 정책의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특허정책은, 신중하게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중론은 대개 변호사나 변리사 등 법조계 주변에서 불거진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둘러싼 여론이 균형잡히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목소리에는 언론과 변호사, 변리사들에 대한 냉소적인 성조가 깔려 있다.
스스로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황금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특허를 옹호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에도 조심스럽게 문제를 지적하는 소리가 분명 존재한다.
이들은 솔직히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문제를 인정한다.
특히 현행 특허법이 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대한 명확한 심사기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시인한다.
특허 보호범위에 대해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변호사는 “비즈니스 모델 특허 때문에 전자상거래가 망한다는 회의론이 미국에서도 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미국 법조계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너무 앞서가려 한다”고 말했다.
자신도 현재 인터넷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 특허출원 서비스를 많이 하고 있다는 이 변호사는 “방어적 입장에서 출원을 하라고 기업들에게 권유하고 있지만 솔직히 개운치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무관심도 약이다.
한 유명 인터넷 기업 사장의 말은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둘러싼 논란을 무색하게 만든다.
“최근의 비즈니스 모델 특허 논란을 보면 마치 지난해 뜨거웠던 Y2K 논란의 재판을 보는 것 같다.
그때 그토록 난리를 쳤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분명 Y2K와 같은 허망한 결과가 올 연말에도 나타날 것이다.
직원들이 경쟁업체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준비하자고 하는 데 말리고 있다.
결국 그 회사 홍보해주는 꼴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변리사들이 떠들고 언론에서 부추길 뿐이지 사실상 업계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 네띠앙의 홍윤선 사장도 “필요한 경우 우리도 특허를 출원하고 있지만 방어적인 차원에서 준비하는 것이지 비즈니스 모델 특허 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터넷 비즈니스는 선점 자체가 강력한 무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지식기반사회를 외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반대하는 이들은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지식의 원천은 양질의 콘텐츠에 있지 콘텐츠 유통경로에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리고 이들은 또 지적한다.
“소리없는 다수의 반대론자들이 이제 냉소와 무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왜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반대하는가
* 인터넷은 자유와 정보공유의 정신을 기본으로 성장해왔다.
- 인터넷이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이제 막 제기됐을 뿐이다.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인터넷의 특성에도 맞지 않는다.
* 인터넷 비즈니스는 선점을 통한 시장장악이 특허보다 더 중요하다.
- 선점의 효과는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강력한 무기다.
경쟁을 통한 서비스 경쟁이 오히려 인터넷 비즈니스를 발전시킨다.
*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오히려 비용부담을 가중시킨다.
- 미국의 경우에도 특허출원 가운데 85%가 탈락하고 있다.
엄청난 경제적, 시간적 비용은 인터넷 비즈니스업계에 불필요한 부담만 안겨준다.
더구나 불필요한 소송전쟁이 불가피하다.
* 사회적 기여도 효과도 없다.
- 경쟁을 통한 서비스 개량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독점권 부여는 소비자에게 혼란만 가져다주고 결국 독점기업을 키워 사회에 유해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특허법의 존재의의에도 위반된다.
* 특허 보호기간 20년은 시대착오적이다.
- 인터넷에서 20년은 영구적인 시간이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해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다.
* 과연 그 많은 모델을 심사할 수 있는가. -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그것을 객관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가.
“전자상거래가 인터넷의 전부가 아니다 ” 진보네트워크 오병일 팀장 지난 3월4일 진보네트워크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비즈니스 모델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삼성전자가 특허를 취득한 ‘인터넷상에서의 원격교육 방법 및 장치’에 대해 원천무효를 선언한 것이다. 이는 비즈니스 모델 특허 반대운동의 신호탄이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오병일 팀장을 만나 비즈니스 모델 특허 반대운동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특허무효 심판청구는 어떻게 되고 있나. 특허심판원에서 삼성전자에 공문을 보냈고 삼성전자가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 답변서가 다시 우리에게 와 있는 상태다. 문서 공방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올해 안에는 해결이 힘들 듯하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인터넷의 자유를 해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모델은 너무 광대하다. 다른 사람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진다.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은 지금까지 특허권없이도 창조, 혁신, 발전돼 왔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부당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외로운 싸움이란 생각이 든다. 변리사들을 만나보면 문제를 인정한다. 자기 생각과 달라도 어물쩡 넘어가는 사회적 구조가 문제다. 인터넷 기업들 입장에서도 분명 문제가 될 텐데 내 일이 아니라는 태도다. 나중에 일이 벌어졌을 때는 수습하기 어렵다. 국제적인 추세라는 점에서 우리만 반대한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대세 이전에 옳고 그른 것은 따져야 한다. 인터넷 선진국들이 제3국들에게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이데올로기 차원의 문제다. 사실 미국 안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세계적인 요구가 필요하다. 단순한 아이디어에는 특허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 특허청의 입장인데. 비즈니스 모델에 물리적 장치가 결합됐을 때라고 하는데 그건 너무나 당연한 말 아닌가. 해외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특허란 말을 쓰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특허라고 한다. 소프트웨어는 개발한 뒤에도 계속 혁신하지 않으면 외면당한다. 특허를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혁신이 불가피하다. 결국 특허의 효용성이 없는 분야다. 앞으로 운동의 방향은. 기업들이 현실을 이끌고가야 하는데, 결국은 자기의 이해관계에 매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문제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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