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45 (토)
[포커스] 한국CEO포럼 세미나 지상중계
[포커스] 한국CEO포럼 세미나 지상중계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국내 경기회복세 소걸음” 설비투자·고용 늘어도 내수 부진 우려…“실업 가능성 낮아지면 소비 심리 호전” 반론도 2월2일 신라호텔 영빈관.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간에도 토론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우리금융 윤병철 회장이 토론 마이크를 잡았다.
“외환위기 뒤 몇 년 동안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만 중국을 따라 6% 이상 경제성장을 했습니다.
그때의 대가를 지금 치르는 것 아닌가요?” 세이에셋코리아자산운용 곽태선 사장은 발제자들과 다른 견해를 편다.
“가계부채로 한국 경제가 찌그러진 공처럼 되긴 했습니다만, 찌그러진 공으로도 축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로도 경기가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비자코리아 김영종 사장도 그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
“소비자 가구 전체의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에는 공감하나, (그것이 내수회복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발제자의 견해는) 너무 비판적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경우엔 가계의 부채부담이 가처분소득의 115~120%이지만 소비가 줄진 않았습니다.
” 이날 열린 한국CEO포럼 세미나 자리에서 CEO들의 팽팽한 격론을 이끌어 낸 발제자들은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선임연구위원과 JP모건 이승훈 상무. 이들은 올해 한국 경기 회복세가 미약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이승훈 상무는 “소비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의 부채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어 그 자금을 상환할 때까지는 소비가 크게 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이 7% 이상인 상태에서 이자율이 더 높아지면 경기회복에 독약”이라고 지적한다.
가계부채 중산층까지 확산, 수출도 위협 더구나 2001~2002년에 부채를 끌어다 쓰며 소비를 늘렸던 소비자들은 그것을 갚기 전에는 다시 소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당시 소비는 국민가처분소득의 2배에 이를 정도로 팽창됐었다.
가계부채 문제는 이미 중산층으로까지 확산됐다.
이 상무는 “지난해 신용카드 관련 부채 30조원을 금융권에서 줄였는데, 그런데도 가계부채 전체 규모가 2002년보다 15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사용하는 서민층이 아니라 일반적 중산층에서도 생계 유지형 소비자 부채가 늘어났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 상무는 정부가 나서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한다.
“채무자가 깨알처럼 흩어져 있어 관리가 어렵다는 특성 탓에, 가계부채는 IMF 외환위기 때 정부가 기업에 했듯 공적자금을 부어서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그가 보기에 한국 내수에는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회복기가 필요”하단다.
최공필 위원은 수출경기도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적 경기회복에 장애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폭. 미국은 자국에 대한 해외투자를 지탱하려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르는 경상적자를 조절해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 내수가 위축되거나 미국 외의 다른 국가에서 미국 내수보다 더 빠르게 수요가 증가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행정부는 그런 정책을 쓰기가 쉽지 않은 처지다.
최 위원은 말한다.
“미국 달러화 절하가 순수출 증가를 통해 미국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할 때 미국 행정부가 재정긴축정책에 들어가야 한다”며 “선거철을 앞둔 미국 행정부가 제때 재정정책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와 고용 악화라는 문제를,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통해 해결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고 최 위원은 지적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 수출경기가 위축될 위험은 높아지게 된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의 수출은 내수부진의 골을 메우며 홀로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다.
남은 희망은 국내 설비투자 증가다.
수출 증가 물량을 만드느라 설비 가동률이 높아지면 기업은 먼저 설비투자를 늘리게 된다.
그러면 설비 제작공장은 인력을 충원하고,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한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어 물건을 산다.
‘설비투자-고용증가-내수증가’의 선순환 시스템은 오랫동안 한국 경기를 띄우고 돌렸던 ‘엔진’이었다.
그런데 이날 두 발제자는 이 오래된 ‘엔진’의 기능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 위원은 설비투자 수요가 일부 글로벌 기업들에 국한되어 있어 투자증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 상무는 설비투자가 증가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국내 고용시장에 발동이 걸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상무는 기업 경영의 효율성과 정부 정책의 충돌을 지적했다.
“정부는 기업에 고용촉진책을 써 고용을 늘리려 하지만 그것은 현재 상황에선 큰 의미가 없다”며 “한국에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나는 것은,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안 별 도움 안돼” 고용 없는 성장이 기업의 효율적 선택이 낳은 결과다? 이 상무는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 도요타와 닛산의 사례에서 근거를 찾는다.
80년대 중반 도요타는 좀 더 적극적으로 미국에 공장을 이전했고 닛산은 소극적이었다.
엔화 절상 즉 달러화 절하 때 일본 생산량이 많았던 닛산 자동차는 수출 채산성에서 타격을 입어 누적적으로 기업 수익성이 악화됐지만 미국 생산량이 상당했던 도요타는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상 꼭 필요해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기업들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생산성이 높아져 더 많은 직원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기업에 어떻게 고용촉진을 요구할 것인가. 정부는 신규채용 근로자 1인당 100만원의 절세 혜택을 준다고까지 했지만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CEO, 학자 등 경제인 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6.2%가 “정부가 입법 추진 중인 정년연장·신규채용시 세액공제 같은 조치가 일자리 창출에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특히 58.6%는 “고용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기업에 비효율성만 초래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상무는 “확대재정정책을 제대로 쓴다면…”이라며 정부 정책에 슬쩍 훈수를 둔다.
이 말에는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줄 수 있는 당근은, 국내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라는 속뜻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책으로 최 위원은 가계소득 증가를 통해 부채상환능력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가계소득을 늘리려면 가계 구성원이 취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소득을 높일 수 있어야 하고 그 돈을 예금으로든, 투자로든 안정적으로 불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찌그러지고 뻑뻑한 엔진에 다시 발동을 걸려면, 찌그러진 곳은 펴고 뻑뻑한 곳엔 기름칠을 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찌그러진 곳은 가계고 뻑뻑한 곳은 기업 투자 환경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