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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열전] 무서운 개를 키우는 술집 주인 - 춘추시대 송나라 莊씨
[부자열전] 무서운 개를 키우는 술집 주인 - 춘추시대 송나라 莊씨
  • 이수광
  • 승인 2004.03.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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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회에서 부를 축적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권력을 잡는 일이다.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면 절대권력을 갖고 있는 군주가 재물을 주거나 봉읍(封邑), 또는 식읍(食邑)을 하사했다.
읍은 지금으로 말하면 도시에 해당한다.
도시를 통째로 하사품으로 받으니 막대한 부를 누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라에 공을 세울 기회조차 없는 일반 평민들은 대개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거나 혹은 농산물을 거래하는 상업행위를 영위하며 절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부자들을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도주공의돈부(陶朱公依頓富)의 주인공 의돈(依頓)은 양이 너무 많아서 골짜기 수효로 양을 헤아린 목축업자이다.
또 상업의 아버지 또는 상업의 조사(祖師)로 불리며 박리다매의 상업이론을 정착시킨 백규(白圭)는 농산물을 거래해 부자가 된 상인이다.
농산물 거래는 시기를 파악해 거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농산물 값이 언제 폭락하고 언제 폭등할지 예측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은 상술의 기본이다.
중국에서 재신(財神)이라고 불리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범려 역시 말년에 농산물이 폭락하고 폭등하는 시기를 잘 헤아려 3번이나 대부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대부호가 되었으면서도 2번이나 전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성인이라고까지 불린다.
고대 사회에서 상술이 가장 발달한 민족은 바로 유태인과 중국인들이다.
상인(商人)이라는 말은 상(商: 은나라)나라의 주왕(紂王)이 폭정을 일삼다가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축출당하자, 나라를 잃은 상나라 사람들이 중국 천하를 떠돌아 ‘상인’으로 불리면서 유래됐다.
원래 나라 잃고 떠도는 상나라 사람들을 상인으로 불렀는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떠돌게 되자 마치 상나라 사람 같다고 하여 상인으로 붙여진 것이다.
상나라 유민들이 떠돌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물물교환이나 농산물을 사고 판 데서 상인의 기원을 찾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상인의 유래는 상나라 사람들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고대 사회의 상업은 농산물을 거래하는 것이 주종을 이루었지만, 점차 문명이 발전하면서 소금, 철, 면직물, 목재 등도 거래됐다.
이 가운데 소금은 가장 확실한 부의 축적 수단이었다.
중국에서는 소금을 소유하는 사람이 권력을 좌우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고, 실제로 근대에 와서 청나라가 부패하는 과정에는 염상(鹽商)들이 깊숙이 관련되기도 했다.
그런데 장사를 한다고 해서 누구나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춘추시대 송(宋)나라에 술을 잘 만들어 파는 장(莊)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장씨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어서 술을 팔되 한 번도 되를 속여 팔지 않았다.
또 손님들을 맞이할 때는 친절했고 술을 판다는 주(酒)라는 깃발을 높이 세워서 멀리서도 잘 볼 수 있게 했다.
술도 정성껏 빚어서 걸렀으므로 장씨의 집에서 파는 술은 언제나 향기가 그윽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다려도 손님은 오지 않고 걸러 놓은 술은 쉬기가 일쑤였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가게 앞에 좋아하는 커다란 개를 묶어 놓고 장난을 하는 것뿐이었다.
‘대체 손님이 오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 나는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좋은 술만 팔고 있으며 손님들은 항상 웃으면서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도 술을 사러 오는 손님이 없으니 이해를 할 수가 없구나.’ 장씨는 소님이 오지 않는 이유를 괴이하게 생각하다가 그 지방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으로 소문이 파다한 양천을 찾아갔다.
양천은 장씨의 말을 듣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했다.
장씨는 양천이 묻는 대로 소상하게 대답했다.
가게 앞에서 개를 키운다는 말도 했다.
“너의 집 개가 무섭지 않은가?” 양천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장씨에게 물었다.
“무서운 편입니다.
그러나 묶어놓았기 때문에 사람을 물지는 않습니다.
” “개가 무서워서 너의 집 술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 양천이 단정을 짓듯이 말했다.
“어르신, 개가 무섭다고 하여 어찌 술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장씨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사람은 누구나 개를 무서워한다.
술은 어른들이 직접 사러 다니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는 술항아리를 들려서 술을 사오게 시키는 일이 많은데 개가 아이들에게 달려드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술이 쉬게 하고 술이 팔리지 않게 하는 이유다.
나라에도 개와 같은 대신들이 있다.
현자가 큰 포부를 품고 나라의 군주에게 쓰이고 싶어도 대신은 무서운 개와 같이 물어뜯으려고 한다.
” 양천의 말에 장씨는 크게 깨달았다.
그는 즉시 집으로 돌아와 개를 치웠고 그때부터 손님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장씨는 좋은 술을 팔고 친절했기 때문에 금방 부자가 되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혹시 자신 주위에 개로 상징되는 것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양천의 말대로 전국시대의 책사 소진은 조나라에 가서 자기의 경륜을 펼치려고 했으나 봉양군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하를 유랑하다가 연나라로 가서 재상이 된 뒤에 합종론을 폈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침략해 항복을 받고 중국의 패자로 군림했으나 나중에 월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게 된 것도 백비와 같은 사나운 개를 키워 춘추시대 최고의 맹장인 충신 오자서를 촉루지검으로 자결하게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업에도 공연히 하청업체를 괴롭히거나 부하 직원들을 못살게 구는 상사가 있다.
국가나 기업은 결코 사나운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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