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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책과삶]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 이정환/ 성광야학 강학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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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만들어낸 생명의 야채밭

미국은 쿠바를 굶겨죽이려고 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면서 기댈 언덕이 없어진 쿠바는 한때 정말 굶어죽을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쿠바는 자생적인 해법을 찾아냈다.
이제 쿠바에 대한 인식을 바꿔라. 우리는 쿠바에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돌아보면 그때 미국은 정말 치사했다.
92년 이른바 쿠바 민주화법이란 걸 만들어 쿠바에 한번 들른 선박은 6개월 동안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전세계 모든 나라들을 상대로 쿠바와 무역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결국 쿠바의 국내총생산은 89년 193억페소에서 93년 100억페소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사탕수수 수출은 80% 이상 줄었고 석유 수입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식료품 수입도 절반으로 줄었다.


쿠바의 위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공장의 80%가 폐쇄되고 실업률이 40%를 넘어서는데도 말이다.
석유가 없어 트랙터는 밭에 멈춰섰고 사료와 백신이 부족해 가축은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교통의 70%가 마비됐고 농촌의 수확물은 밭에서 썩어갔다.
91년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정부의 배급은 갈수록 줄어들다가 바닥을 드러냈다.
쌀은 한 달에 2.4킬로그램, 빵은 하루 20그램, 달걀은 일주일에 두 개가 고작이었다.
국민들의 체중은 3년 동안 평균 9킬로그램이나 줄어들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았지만 병원에는 아스피린조차 없었다.


쿠바는 아사 직전의 위기에서 생존의 해법으로 도시농업을 선택한다.
가축이 죽고 없으니 야채라도 먹어야 했고, 교통수단이 없으니 가까운 데서 야채를 길러야 했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에서 어떻게 야채를 기른단 말인가. 방법은 있다.
제대로 된 벽돌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냥 돌이나 합판 쪼가리도 좋다.
그런 것들로 둘레를 친 다음 퇴비를 섞은 흙을 담으면 그럭저럭 훌륭한 밭이 된다.
아스팔트든 콘크리트든 어디에든 만들 수 있고, 웬만큼 비가 와도 흘러 내려갈 일이 없다.
쿠바 사람들은 이렇게 만든 밭을 ‘오가노포니코’라고 부른다.
오가노포니코는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주차장이나 빈 공터 위에 만들어졌다.
이 오가노포니코가 쿠바를 살렸다.



위기에서 찾은 생존의 해법

쿠바의 토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국가 소유다.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은 정부에 신청만 하면 공짜로 땅을 받을 수 있다.
경제위기 전까지 야채를 거의 먹지 않았던 쿠바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됐고 기꺼이 농부가 됐다.
도시 한복판에 밭이 들어섰고 푸른 채소가 자라기 시작했다.
카스트로는 앞장서서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줬다.
국영TV는 농업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대대적인 교육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화학비료가 없으니 유기농업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식충 개미를 이용한 방제방법이나 지렁이 퇴비, 윤작 등 다양한 유기농업 기술을 개발해 냈다.
정부 차원에서 연구도 진행됐다.
쿠바는 유기농업 기술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로 평가받는다.
2000년 들어 경제위기가 끝난 뒤에도 쿠바의 도시농업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변화는 생활 전반에서 나타났다.
수도 아바나의 거리에는 이제 자전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채식 습관이 없었던 것처럼 쿠바 사람들은 자전거 타는 습관이 없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멈춰버린 이상 다른 수가 없었다.
쿠바 정부는 중국 등에서 150만대의 자전거를 수입해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자동차 수는 경제위기 이전보다 3분의 1이나 줄어들었고 전체 교통량의 30%를 자전거가 맡게 됐다.
자전거를 싣고 탈 수 있는 자전거 전용버스도 등장했다.
세계은행은 쿠바가 자전거문화를 도입하면서 연간 5천만달러의 경제 효과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의료 시스템도 크게 바뀌었다.
의사들은 수입의약품의 대안으로 전통 민간요법인 허브 치료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신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많았지만 약 한첩 안 써보고 그냥 끙끙 앓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정부 차원에서 허브와 약초, 침을 활용한 대안의료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경제위기 무렵부터다.
그 결과 전통의료기법의 상당 부분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부작용 없는 자연산 녹색 약품의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쿠바는 헌법에 모든 국민은 무료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의사 1명당 주민수는 158명으로 일본의 520명보다 적다.
1천명당 유아 사망률은 6.4명, 평균수명은 76세로 개발도상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지속가능한 미래의 꿈

생태도시 아바나에서 우리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생존 모델을 발견한다.
에후페니오 후스텔 장관의 말처럼 쿠바의 변화는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봉쇄뿐 아니라 쿠바인들의 의식의 봉쇄를 극복하는 데서 출발했다.
오랜 세월 동안 소련의 속국으로 머물렀던 쿠바는 존망의 위기에서 새로운 자립 기반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도시를 일궈서 생명을 불어넣었고 위기를 넘어 이제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쿠바 사람들은 한 달에 평균 20~30달러를 번다.
연봉으로 치면 우리나라 돈으로 40만원 정도다.
집세는 법에 따라 급여의 10%로 제한돼 있고 의료비와 탁아비, 교육비는 모두 무료다.
또한 모든 국민이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대부분의 식료품을 배급받는다.
40만원으로 1년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맹률은 0%에 가깝고 남녀평등도 놀랄 만한 수준이다.
생후 6개월에서 유치원 입학까지의 어린이들은 모두 어린이방에서 키운다.
의사 가운데 남녀 성비는 52대 48 정도다.
빈부격차도 거의 없다.
최고 임금과 최저 임금의 차이는 25% 수준에 그친다.
쿠바는 다른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한 실험을 하고 있다.
생태주의는 사회주의에도 생명을 불어넣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말이 그들의 정신을 말해준다.
“쿠바의 사회주의는 완성돼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더욱 완벽하고 효율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사회주의를 포기할 의도는 결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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