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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삼성금융그룹’은 얼마나 셀까?
[특집] ‘삼성금융그룹’은 얼마나 셀까?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03.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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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 인수 가능성 부각…제2금융권에선 이미 절대아성 구축

해석은 극단으로 엇갈린다.
하나는 우리금융이라는 먹잇감을 낚아채려는 삼성의 숨겨진 전략에 따라 ‘적진’으로 ‘파견’됐다는 것이다.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 이건희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그룹 내 핵심 금융 통이란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 첫 번째 근거로 제시된다.


결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그룹이 그동안 유지해 온 한미은행 주식을 갑자기 정리한 데 이어, 보험판매 합작사 설립을 통해 우리금융에 지분 참여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삼성 인수설’을 강력하게 부채질했다.
또 다른 설명은 황영기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대로 “삼성에서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 “개인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낭비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온 정부로서도 우리금융의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히든카드’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물론 진실은 하나일 수밖에 없고, 어느 쪽이 옳은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갖가지 추측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최대의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의 행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삼성금융그룹, 자산기준 국내 5위 도약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삼성은 이미 금융권의 강자다.
특히 은행을 제외한 제2금융권에서 삼성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는 모두 9개. 하나같이 업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삼성의 금융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통계자료를 내놓았다.
삼성은 자산기준으로 은행계인 국민, 신한, 우리, 농협에 이어 국내 5위의 ‘금융그룹’으로 집계됐다.
97년 말 4.4%였던 비중이 8.2%로 2배 가까이 커졌다.
순위도 10위에서 5위로 5단계나 상승했다.
자산 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 은행계를 제외하면 삼성이 단연 1위다.
금융권에서 삼성의 우리금융 인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금융이 보태지면 ‘삼성금융그룹’의 지배체제는 사실상 완성된다.
금융의 핵심 업종인 은행, 보험, 증권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아성을 쌓게 되는 것이다.


‘삼성금융그룹’은 이미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삼성은 지난 94년 소그룹 체제를 채택하면서 금융계열사들을 묶어 ‘삼성금융소그룹’을 출범시켰다.
지난해부터는 이건희 회장의 특별 지시에 따라 금융계열사의 공동광고도 내보내고 있다.
시장에선 그동안 삼성이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왔다.
지난 1월에는 구체적인 안을 갖고 금융 당국에 의사를 타진했다는 설이 떠돌기도 했다.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삼고 그 밑에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투자신탁을 자회사로 둔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금융파워를 대표한다.
63년 동방생명을 인수해 출발한 삼성생명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성생명은 교보생명과 업계 1~2위를 다투는 박빙의 승부를 벌여왔다.
그러나 89년 동방생명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삼성’ 브랜드를 앞세우면서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업계 2위와 3위인 대한생명, 교보생명을 합쳐도 시장점유율이 삼성생명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생명보험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삼성생명이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면 나머지 생보사들이 그걸 그대로 따라가는 상황”이라며 “시장 지배력이나 상품 개발, 자산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앞서 있어 다른 보험사가 따라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이 전문가는 “삼성생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데 삼성이라는 브랜드와 단체보험 가입 등 계열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삼성생명은 2010년까지 매출 47조원을 달성해 아시아 5대 종합금융회사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금융 계열사 모두 업계 선두

92년 한일투자금융회사를 인수해 업계 후발주자로 출발한 삼성증권의 지위도 탄탄하다.
삼성증권은 주식위탁영업, 투자신탁판매, 자산관리, 기업금융에서 모두 업계 1위다.
증권업계의 미래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출시 후 3개월 동안 1조2천억원에 판매된 일임형 랩어카운트 상품 가운데 67%인 8213억원어치를 삼성증권이 팔아치웠다.
바로 황영기 전 사장이 삼성증권의 성장 기틀을 다진 주인공이다.
부실채권 문제로 잠시 주춤하고 있는 삼성카드 역시 성장 잠재력이 엄청나다.
주요주주인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참여하는 1조5천억원 규모의 자본 확충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원을 위해 계열사 대출한도를 5조원으로 확대해 놓고 있다.


그러면 삼성이 과연 은행업까지 진출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우선 삼성의 입장부터 단순하지가 않다.
삼성은 “현행법 아래서는 은행인수가 가능하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다”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은행법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산업자본은 은행의 지분을 최대 10%까지 매입할 수 있지만, 의결권은 4% 이상 행사하지 못한다.
삼성그룹의 은행 인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은행이 매력적인 인수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성구조조정본부에서 일했던 삼성 관계자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대한 반대가 워낙 거세기도 하지만, 은행은 그렇게 수익이 나는 사업도 아니다”라며 “은행을 인수한다면 은행 자산을 끌어오는 게 목적일 텐데, 지금은 그룹에 돈이 남아돌아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뿐더러 저금리와 경기침체로 자산운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은행업을 한다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은행 인수에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재계는 은행법의 소유제한을 풀어달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주요 은행이 잇따라 외국자본에 넘어가면서 이런 주장이 한층 강화됐다.
외국자본에 맞설 대항마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진출과 시사점’이란 논문을 쓴 고경일 천안대 교수는 “경영능력이 있는 국내 자본에는 예외를 둬야 한다”며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진출로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 산업자본이 은행을 가져도 예전처럼 사금고로 남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한다.
은행 사금고화는 자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이제는 산업자본의 참여를 허용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삼성은 은행을 경영할 만한 능력을 이미 갖추었다”며 “보험이나 증권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은행을 통해 더 잘 발휘할 수 있고, 상당한 시너지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은행 소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신뢰도 제고와 소비자 금융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삼성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다.



금융지주회사, 계열분리 없인 불가능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은행 소유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문제다.
현실적으로 은행을 뺀 금융지주회사와 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회사(은행지주회사)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행을 제외할 경우 문제는 한결 간단해진다.
은행지주회사는 은행법에 따른 소유지분 제한을 똑같이 적용받지만, 은행이 없는 금융지주회에는 그런 제한이 전혀 없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은 “삼성의 은행지주회사 설립은 계열 분리를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며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 둘이여서, 금융과 전자를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몰라도,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잘라 말한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삼성이 은행지주회사를 만들려면 산업자본을 다 떼어내고, 은행 인수 자격이 있는 금융자본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계열 분리는 삼성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임이 분명하다.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이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는 삼성에버랜드의 주식 25.1%로 삼성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지분 19.34%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며, 삼성생명은 다시 삼성전자(6.9%), 삼성화재(9.89%), 삼성증권(11.51%), 삼성중공업(3.91%), 삼성물산(4.81%) 등 계열사를 지배한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계열사를 계열 분리하려면 복잡하게 얽힌 지분구조를 모두 정리해야 한다.
삼성생명 없는 삼성전자의 경영권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면 은행을 뺀 금융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가능할까. 시중 은행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은행을 중심에 놓고 보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며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푸르덴셜은 모두 은행이 없는데도 세계적인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 금융지주회사의 설립도 계열 분리가 전제조건으로 따라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동규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장은 “동원금융지주회사의 사례를 봐야 한다”며 “동원금융도 기존의 동업기업 집단과 계열 분리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설립인가가 났다”
고 말한다.
삼성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삼성생명의 지주회사 전환은 삼성생명의 상장 문제와도 얽혀 있다.
이 때문에 삼성에서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주회사 전환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다 결국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현재의 그룹구조를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기업은 매출과 고용을 늘리고, 더 많은 세금을 내면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며 “그룹 실적이 매년 좋아지고 있는데 굳이 지배구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삼성금융그룹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더 많은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삼성의 영향력은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법까지 뜯어고칠 수 있을 만큼 삼성의 파워가 막강하다는 일반적인 인식도 금융계가 삼성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어쩌면 삼성은 조용히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성, 출자제한 졸업할까
올해 삼성그룹이 출자총액 제한제도에서 ‘졸업’할 수 있을까. 지난해 삼성은 부채비율 101%를 기록, 간발의 차이로 졸업에 실패했다.
출자총액 제한제도는 자산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대해 순자산의 25% 이상 출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제한을 초과해 소유한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가 금지된다.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재계는 그동안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며 폐지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현행 제도를 계속 유지하기로 일단 방침을 정했다.
또한 논란이 됐던 ‘지정졸업제’도 1년간 유지한 후 폐지하기로 했다.
지정졸업제란 부채비율이 100% 이하인 기업집단은 출자총액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말한다.
시민단체는 부채비율이 낮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투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정졸업제는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동규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장은 “올해 삼성의 부채비율이 100% 밑으로 나온다면 당연히 지정졸업제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국장은 “삼성이 올해 졸업을 하더라도, 내년 제도 정비가 다시 한 번 이루어지면 다시 적용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삼성그룹의 부채비율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상 회계연도가 종료된 뒤 6개월 이내인 오는 6~7월경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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