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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그 많은 배당은 누가 다 먹었을까
[특집] 그 많은 배당은 누가 다 먹었을까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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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중 12월 결산법인 이익 7조2천여억원 배당 예정…2001년 비해 87.8% 증가

지난해에도 그랬다.
2001년, 2002년에도 그랬다.
지난해엔 북한 핵 위기고조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2002년엔 국내 경제 성장둔화, 2001년엔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와 일본 위기설 때문에 그랬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매년 3, 4월 원 달러 환율은 연중 고점을 찍곤 했다.
원화가치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조문기 한국은행 국제국 부국장은 12월 결산 법인의 이익배당을 주목한다.
“2002년엔 20억달러, 2003년엔 30억달러가 외국인 배당금 지급 명목으로 달러 송출됐는데, 그 중 60~70%의 돈이 12월 결산 법인의 배당금이 지급되는 3, 4월에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1분기 결산 때 달러 차입금을 회수받느라 한국의 달러수요가 높아진다는 설에 대해선 “어차피 달러로 꾸어 받아 달러로 갚는데다 그로 인해 엔 강세도 유발되기 때문에 원화 약세의 요인으로 보기엔 미흡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즉 국내외 정치, 경제적 변수 외엔 국내 업체의 배당금 달러 송출이 3, 4월 환율상승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뜻이다.


대체 배당으로 돈이 얼마나 빠져나가기에 환율까지 들썩이는 것일까? 한국은행에 ‘배당 목적’으로 보냈다고 보고한 달러 송출 규모를 보면 98년 3억5750만달러, 99년 8억2천만달러였던 것이 2000년 15억7520만달러, 2001년 19억1450만달러로 급증했다.
2002년엔 20억6130만달러로 잠시 주춤했던 증가세는 지난해 30억1900만달러로 다시 46%가 늘어났다.



외국인 배당금 28% 늘어

올해 빠져나갈 달러 규모는 지난해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증권거래소가 3월2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3사업년도 배당총액은 7조2266억원으로 2002사업년도보다 22.8%가 늘었다.
외국인 배당금 증가세는 더 높아, 2조1038억원에서 2조7044억원으로 28.5%가 늘었다.
달러로 환산하면 23억달러가 넘는다.
이것은 거래소 상장 법인의 배당금만 집계한 총액이다.
코스닥 상장업체와 외국인 직접투자(FDI)업체도 지난해보다 28% 가량 외국인 배당금을 늘렸다고 치면 올 3, 4월 중 외국인 배당금으로 빠져나갈 돈은 대략 38억달러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의 핵심은 외국인 배당금으로 나가는 돈이 많다는 데에 있지 않다.
한국의 일반 국민이 한국 기업의 이익증가, 배당증가의 혜택을 외국인과 함께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경기 양극화, 소득 양극화까지 초래한다.


최희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배당총액 증가율을 비교해 보라”고 말한다.
2001년, 2002년, 2003년의 증가세를 비교해 보자(그래프 참조). 거래소 상장 12월 결산법인의 배당총액이 52.9%, 22.8% 늘 동안 한국의 명목GDP는 10%, 5.4%가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소득으로만 돈을 버는 사람과 배당소득까지 챙기는 사람의 경기 체감온도는 얼마나 다르겠는가? 최 수석연구원은 “일반 한국인들이 주식투자를 금기시하면서 금융소득의 한 형태인 배당소득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것이 수출경기 호황, 주식시장 활황에도 일반인의 체감경기가 차가운 원인 중 하나”하고 설명했다.


금융소득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으니 경기는 더욱 양극화된다.
잘 나가는 기업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 업체에 고용된 직원들이 많지 않으면 근로소득이 늘지 않아 내수경기는 뜨지 않는다.
한 달에 영업이익만 1조원씩 내는 삼성전자의 직원수는 5만5천명이다.
그러나 배당이익이나 시세차익은 다르다.
삼성전자 직원이 아니더라도 삼성전자 이익증가와 주가상승의 열매를 공유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8866억원을 배당하기로 결의했다.
지난해 3월 30만원대던 주가는 54만원대로 올라섰다.



개인 금융소득 늘려야 양극화 방지

경제학자들은 한국 국민도 금융소득을 늘리는 쪽으로 소득구조를 바꿔야 양극화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80년대 미국인의 근로소득 대 금융소득 비중을 보면, 60대 40이었지만 2001년엔 55대 45로 금융소득 비중이 늘어났다.
한국은 80년대 93대 7이던 근로소득 대 금융소득 비중이 95대 5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금융소득 비중 증가율은 미국에 비해 떨어진다.
최 선임연구원은 “이 추세가 지속되면 경기 양극화, 소득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내수시장이 크지 못해 경제성장률에도 타격을 받는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는 금융소득의 배분 촉진을 위해 우리사주(ESOP)제도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거래소, 코스닥시장 상장업체나 상장할 업체에 다니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권성일 제일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금융산업이 발달된 미국에선 뮤추얼펀드 등 일반 개인의 주식투자 비중도 높지만 각종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도 높다”며 “연기금들이 주식투자로 번 돈이 일반 개인한테 전달되면서 개인의 금융소득 비중이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선 뮤추얼펀드, 연기금 등 간접투자상품들이 돈을 벌면서 소득구조가 근로소득, 금융소득의 양다리 구조가 되었다는 얘기다.


근로자가 근로소득에만 목매지 않을 수 있으면 일자리 이동에 대한 경직적 태도도 사뭇 줄어들게 된다.
외국인 투자자들과 함께 금융소득의 과실을 나눠먹는 것은 ‘내’ 돈벌이, ‘내’ 나라의 장기성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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