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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탄핵정국의 정치경제학 - 정승일/ 대안연대
[특별기고] 탄핵정국의 정치경제학 - 정승일/ 대안연대
  • 정승일/ 대안연대 정책위원·
  • 승인 2004.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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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노무현 정부가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면서 많은 이들을 실망시킨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것을 노무현 개인 혹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내 몇몇 개인들의 실수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개혁·진보 세력의 제반 이론과 경제정책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논리적 자가당착’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노무현 정부는 앞으로도 좌충우돌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공조에 의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부자들과 그들의 금고를 지켜주는 정치집단의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사실 언론과 대다수 사람들 역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찬반 논란과 찬반 시위를 수구·보수 세력과 개혁·진보 세력 간의 갈등으로 보면서, 부유층과 서민 간의 대립 구도 속에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주변과 열린우리당에 1970년~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섰던 민주주의 투사들과 노동 운동가 출신들이 널리 포진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탄핵정국을 “자신들의 금고를 지키고자 하는 수구·보수 부유층”과 그에 맞서는 ‘개혁·진보적 서민(혹은 민중)’ 간의 대립으로만 볼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경제정책이 어떤 계층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지에 관해서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부유층의 금고’를 지키는 데 유리한 것인지에 대해선 부유층조차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학적으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계급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관한 경제학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이다.
틀림없이 노동자 계급의 지지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여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폈건만, 그 결과는 경제 시스템의 붕괴와 서민생활의 악화뿐이었다.
실망한 노동자와 서민들의 반란으로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는 종말을 고했는데, 이 붕괴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시대를 활짝 열어놓았다.
불만에 찬 서민들을 대변하는 ‘민주주의’ 정당들이 출현하였고 이들은 ‘충격요법’을 통해 자유시장 경제로 이행하는 IMF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그 결과 신흥 부유층이 형성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좌파들의 비난에 대해 동유럽의 우파들은 경제성장의 대가로 노동자와 서민들이 ‘일자리’를 얻었으니 너희도 ‘경제적 이익’을 얻지 않았냐고 응수한다.



마가렛 대처를 읽는 대통령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기회로 또 한차례 도약기를 맞이한다.
앵글로색슨형 ‘자유시장’ 경제에 도전했던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동아시아 자본주의마저 붕괴함으로써 그야말로 앵글로색슨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앵글로색슨 스탠다드는 곧 ‘글로벌 스탠다드’로 격상되었다.
한국에서도 ‘자유시장 원칙’에 따른 재벌개혁과 금융개혁, 노동시장개혁과 공기업 민영화가, 보수와 개혁 모두의 동의를 받으며 수행되었다.


상당수의 개혁·진보 세력조차도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기업 및 은행의 해외매각을 “개혁의 일시적 부작용”쯤으로 치부했다.
‘박정희 개발독재’를 뛰어넘는 ‘민주적 시장경제’를 ‘자유주의’ 원칙에 입각해 확립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서도 추진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다.
한마디로, 박정희 개발독재보다는 앵글로색슨형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를 위해 훨씬 더 낫다는 견해가 자신을 ‘개혁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뿌리 내렸다.


여기서 다시 대통령 탄핵문제로 돌아가보자. 광화문에 20만명이 모여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규탄하고 있는 그 순간, 노무현 대통령은 ‘마가렛 대처’의 전기를 읽고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개인적 독서 취미까지 국민들이 간섭할 수는 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마가렛 대처의 이름을 한점의 부끄럼도 없이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386 청와대 대변인의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탄핵정국을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몰아가기에 바쁜 나머지 ‘마가렛 대처를 읽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아무 여과 없이 보도하는 이른바 ‘민주 언론’의 괴이쩍은 태도이다.



‘개혁·진보주의자’의 자가당착

만약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마가렛 대처를 읽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부자들의 금고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자가당착이다.
왜냐하면 마가렛 대처는 노동조합 무력화, 공기업 민영화, 금융 빅뱅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저하고 급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영국 부자들의 금고를 확실하게 채워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개혁·진보 세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함으로써 ‘서민들의 금고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 역시 커다란 자가당착이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의 업적 중 하나인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 문제를 보자. 노무현 정부는 론스타, 카알라일과 같은 투기 펀드가 아니라 정규 은행이라는 점을 들어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를 긍정적으로 본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 역시 공식적 반대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별다른 이의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를 가장 환영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한국의 부유층이다.
왜냐하면 씨티은행의 최대 강점은 프라이빗 뱅킹에 있으며, 따라서 씨티은행은 한국 부유층의 자산을 씨티그룹의 전세계적 자산운용망을 통해 증식시켜 주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분명 씨티그룹은 주식, 채권, 여신, 보험, 외환 등 다양한 글로벌 금융상품을 결합한 첨단금융기법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한국의 시중 은행들은 이른바 ‘선진금융기법’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중 은행들이 씨티그룹의 ‘선진금융기업’을 모방할 경우 국내 여유자금의 해외유출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그 결과 투자부진과 성장률 하락은 구조화될 것이다.
그에 따라 실업자 증대와 내수부진도 덩달아 구조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부자들은 - 금융세계화와 결합된 - 글로벌 자산운용을 통해 더욱 부유해질 것이기에 빈부격차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러한 길을 걸은 선구자가 바로 지난 20년간 3차례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가렛 대처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서민들의 호주머니에 볕 들 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 정책적 ‘자가당착’은 노무현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서민 혹은 민중(people)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자가당착적 믿음은 민주세력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재벌개혁이다.



경제민주화의 내용은 무엇인가?

경실련은 지난 3월24일 발표한 ‘17대 총선 정당정책 비교 평가’ 자료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재벌개혁에 훨씬 적극적이며, 그에 반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출자총액제한과 같은 문제에서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달리 말해서, 재벌개혁에 관한 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함께 ‘수구·보수’라고 볼 수 있고, 그에 반해 민주당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개혁·진보’라 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씨티그룹과 론스타, 골드만삭스와 무디스 같은 초국적 금융자본에 포위된 형국에 있는 이 나라에서 과연 무조건적인 재벌개혁, 무조건적인 앵글로색슨 기업 표준 도입만이 ‘진보’라고,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까?

경제민주화는 실질적 민주화에 해당되고 그 실체는 바로 경제적 평등권, 즉 빈부격차 축소와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모든 이들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하지만 소액주주권 등 주식시장 위주의 재벌개혁은 오히려 소버린 등 해외 거대 주식펀드들의 수익률만을 높이면서 산업투자를 위축시키고 실업증대와 빈부격차 확대에만 기여하는 것은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노무현 정부가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면서 많은 이들을 실망시킨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것을 노무현 개인 혹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내 몇몇 개인들의 실수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개혁·진보 세력의 제반 이론과 경제정책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논리적 자가당착’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노무현 정부는 앞으로도 좌충우돌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 모두에 만연한 ‘자가당착’에 관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3년 전 전투기 독자개발을 둘러싸고 미국제 F15 도입을 지지하는 이른바 ‘친미수구’ 세력과 프랑스제 미라지 도입을 지지하는 이른바 ‘개혁진보’ 세력 간의 논란이 시끄러웠다.
이른바 ‘자주국방’파는 미라지 도입을 지지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주국방파의 원조는 바로 ‘자주국방’을 내세웠던 박정희였다.
개혁진보세력이 박정희의 노선을 계승했으며, 오히려 수구보수세력이 박정희 정신을 거부한 셈이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신임 한나라당 대표는 이러한 ‘자가당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역시 무척이나 흥미로운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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