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주도권을 쥔 외국인들만의 잔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단기간에 고수익을 바라는 한국 개미투자자들의 그릇된 기대심리도 ‘주식투자는 지는 싸움’이라는 공식을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개미들도 외국인들처럼 ‘늘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시 광장동에 살고 있는 회사원 손아무개씨(33)는 1년 전 주식에 처음 손을 댔다.
당시 손씨는 삼성SDI, 삼성증권, 삼성화재, 국민은행 4개 종목에 총 3천만원을 투자했다.
평균 3만1961원에 사들인 삼성증권만 2만7300원(4월8일 종가 기준)까지 하락해 15% 가량 손해를 봤을 뿐, 1년이 지난 지금 나머지 종목에서는 모두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평균 매입단가가 7만4842원인 삼성SDI가 8일 종가로 17만2천원까지 올라 130%에 가까운 수익률을 달성했고 삼성화재(59.7%), 국민은행(50%) 투자수익도 짭짤했다.
이 기간 손씨가 벌어들인 돈은 투자원금을 빼고 1500만원으로, 연 환산 수익률로 50%에 달했다
초보투자자인 손씨가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매우 간단하다.
‘우량주 장기·분산 투자’. 그는 1년 전 주식을 사들인 이후 단 한번도 팔지 않았다.
일종의 저축처럼 주식투자를 한 셈이다.
최근 개미투자자들의 투자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량주에 투자해야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송석준 대우증권 자산영업추진부 팀장은 “최근 개인투자자와 일부 중소형 법인 위주로 장기투자 상품에 관련한 문의가 늘었다”며 “장기적 저금리 기조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 투자 대안으로 우량주로 구성된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들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부터 증권사들이 초우량주 20~30종목으로 구성해 내놓은 상품들이 그것이다.
이 상품들의 첫 번째 매력은 무엇보다 우량주 중에서도 초우량주로 구성돼 있다는 데 있다.
어떤 상품은 최소 월 10만원으로도 적금식으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다.
KLCI·MS30, 초우량주만 골라 담아
대표적인 투자상품으로 지난해 11월 대우증권이 내놓은 KLCI(한국대표기업지수) 관련 상품이 있다.
이 상품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의 분석 대상 종목 중 기업가치(70%)와 시장가치(30%)가 뛰어난 대표기업 20종목을 지수화한 KLCI를 활용했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11월부터 KLCI지수를 활용한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해 5개월여 만에 210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대우증권의 일임형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 전체 판매 규모가 6100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눈이 확 띄는 성적이다.
대우증권 적립식 상품은 월 10만원부터 20만원까지 적금처럼 주식을 사들여 최대 7년 동안 투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삼성전자, 삼성SDI와 같은 고가 우량주가 높은 비중으로 편입된 펀드를 사는 셈이다.
김병수 대우증권 WM리서치 팀장은 “초우량종목 지수를 벤치마크하는 상품을 고르면 개인들도 적은 돈으로도 이들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MS30지수를 복제하는 상품을 내놓았다.
이 상품이 추종하는 MS30 지수는 시가총액 외에 주식이 실제 시장에서 얼마나 많이 매매되는지를 나타내는 유통주식비율을 고려해 종목을 구성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NHN, 유일전자 등 거래소와 코스닥의 초우량주 30종목이 여기에 들어간다.
이 상품은 최저 가입단위가 1천만원이다.
이기봉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종목 선정에 있어 단순 시가총액 상위 외에 앞으로 5년간의 미래 성장성과 유통주식비율 등을 주요 평가항목으로 삼았다”며 “대표적 우량기업으로 꼽히는 한국전력이나 KT, SK가 제외된 것도 이들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우종합기계의 경우 시가총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 기계업종을 대표하고 중국 수출 호조에 따른 견조한 펀더멘털을 보유해 이달 1일 KT를 대신해 신규로 편입됐다”고 덧붙였다.
만약 지난해부터 이 두 지수와 연계된 상품에 투자했다면 외국인들과 매매패턴을 비슷하게 유지해 최근의 외국인 상승장에서도 소외되지 않았을 것이다.
KLCI와 MS30지수 구성종목은 대개 외국인들이 투자지표로 삼는 모건스탠리 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지수에 들어 있다.
KLCI에는 20개 종목 가운데 한라공조, 제일모직, 한섬을 제외한 17종목이, MS30에는 NHN, 대우종합기계, 유일전자, 부산은행, 현대산업개발, 신도리코를 제외한 24개 종목이 MSCI 한국지수과 겹친다.
외국인 주도장에서는 KOSPI지수를 벤치마크하는 인덱스펀드보다는 외국인이 주목하는 초우량주로 구성된 지수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
거래소 상장종목 전체를 대상으로 산출되는 KOSPI는 외국인이 주도하는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다.
1년 남짓 이어지는 외국인 주도장에서 KOSPI를 벤치마크하는 대부분의 국내 인덱스형 펀드들은 MSCI 한국지수 등 외국인 벤치마크지수에 비해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투자전략가들은 KOSPI엔 투자가치를 잃은 기업까지 포함돼 이미 장기투자 지표로서 활용하기 힘들게 됐다고 지적한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종합주가지수가 10년간 장기 횡보를 거듭하며 비효율적 투자지표로 평가됨에 따라 투자자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벤치마크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KOSPI 대비 58.6%포인트의 초과수익률 올려
실제로 초우량주만 편입된 지수의 시뮬레이션 수익률은 KOSPI보다 높았다.
KLCI지수는 2000년 1월4일을 기준 시점으로 지난달 말까지 KOSPI 대비 58.6%포인트의 초과수익률을 올렸다.
KLCI에 비해 늦게 출발한 MS30지수의 상승률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MS30지수를 개발한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말 이후부터 2004년 2월20일까지 MS30 지수는 172% 상승해 이 기간 74% 상승한 KOSPI 대비 99%포인트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
KLCI지수 투자의 수익률은 최근 1~2년 사이 최고 투자처로 부각된 재건축 아파트 투자와 비교해도 월등히 높았다.
대우증권이 98년 1월 이후 서울지역 아파트 재건축 가격상승률과 KLCI 20종목의 주가지수 상승률을 비교해 본 결과 KLCI 지수상승률이 1.68배 더 높게 나타났다.
홍성국 부장은 “삼성전자, POSCO, 한국전력, KT, SK텔레콤 등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을 대상으로 보면 97년 12월 이후 무려 405%나 상승해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상승률인 237%를 크게 앞질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수가 900선을 넘나들며 고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지만 여러 측면들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15% 이상은 더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외국인 이탈, 내수회복 땐 불리
문제는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서 단기간에 발을 뺄 때다.
일부 대형 우량주를 대상으로 차익 실현에 나설 경우 뒤늦게 이들 종목을 사들인 국내 투자자만 피해를 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부터 내수가 살아날 경우 내수주를 비롯한 중소형주를 중심으로 시세가 분출될 가능성이 있어 ‘종목 갈아타기’에 실패한 투자자들은 또 한번 소외될 수밖에 없다.
조용찬 대신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인이 대거 빠져나가도 지수가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융주를 비롯한 내수주가 살아나야 한다”며 “그러나 최근 발표된 소비자전망지수 등 내수 관련 지표가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이탈하는 시점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무조건적인 우량주 편식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대표는 “삼성전자 등 대형 우량주만 골라서 집중 투자할 경우 이들 종목의 무게가 무거운 만큼 작은 가격 변동에도 상대적으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며 “대형 우량주에 편중하기보다는 실적 호조가 유지되는 중소형 가치주에도 분산 투자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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