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6:44 (수)
[라이프] 이 음악과 친구하실래요?
[라이프] 이 음악과 친구하실래요?
  • 김정민/ 음악평론가
  • 승인 2004.05.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음악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십중팔구 우문으로 취급받거나 상대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휴대폰 벨소리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치장하는 첨단 문화의 시대에 ‘음악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은 99.9퍼센트의 확률로 역공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굳이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에 심취해 있지 않더라도 흔히들 말하는 ‘18번’이나 한두 곡의 애창곡쯤은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과 대답이 좀 더 구체적으로 확장되면 난감해지기 십상이다.
그저 음악을 좋아한다고 응답하면 될 일인데도 어떤 음악이 좋더냐고 되물어 오면 어디서부터 답을 구해야 할지 막연해진다.
물론, 조용필과 서태지를 답할 수 있을 것이고, 힙합이나 탱고를 즐겨 듣는다고 해도 무방한 일이다.


자신의 취미를 음악 감상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다.
귀에 익은 팝송과 시대를 풍미한 가요들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음악을 주제로 한 대화는 너무 쉬우면서도 빈곤함이 느껴지는 부담스러움을 종종 동반하곤 한다.


현대인들의 일상은 쉼표를 찾아보기 힘든 악보와도 같아서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 반면 여유로운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집에 들어와서도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가롭게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이 대단한 호사로 비춰질 뿐, 주변에 널려 있는 음악을 자신의 삶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


인터넷을 통해 쏟아지는 정보를 소화해 내기 바쁘고, 소문난 영화 한편 보는 것도 크게 마음을 먹어야 가능할까, 말까인 현실에서 교양을 쌓을 목적으로 음악을 듣는 것은 배부른 소리로 치부될 것이다.


그러나 삶의 질을 문화적인 수준과 결부시키고 있는 오늘날의 분위기에서 음악적인 교양을 쌓는 것은 분명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이자 매력적인 표현방법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즐기는 음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주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이다.


음악이 주는 특별한 기쁨을 맛보고 나면 분명 숨 가쁜 일상에서 놓쳐버린 쉼표들을 자유롭게 배열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인간의 감성을 가장 친화력 있게 공감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 음악이기에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일 가치는 충분하다.
철학과 사상, 민족과 언어의 장벽을 초월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음악이 일상을 파고들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세계가 보다 풍요로워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시간과 돈을 음악에 투자하는 것에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잠 못 이루는 밤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쇼팽의 녹턴

음악을 숨 가쁜 일상의 쉼표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습관을 바꿔야 하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무리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습관을 추가하는 것이 더 용이할 것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이나 쇼팽의 녹턴과 같은 음악으로 잠을 청하는 것은 하루를 마감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잔잔한 물결처럼 번지는 음악을 선곡하여 꿈길 동무를 삼다 보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음악의 섬세한 부분을 만나게 될 뿐만 아니라 친구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눈 듯한 충족감이 절로 든다.


자명종 대신 비발디 협주곡

자명종과 텔레비전 소리 대신, 비발디의 음악으로 아침을 맞이해보자. 그의 협주곡에서 발산되는 찬란하고 투명한 기운은 기분 좋게 눈을 뜨게 하는 특효약이 될 것이다.
물론, 클래식이 아니어도 좋다.
경쾌하고 리드미컬하다면 어떤 음악도 하루에 가장 힘든 시간인 아침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비 오는 날은 술 마시기도 좋지만 음악을 듣기에 최상의 시간이다.
비를 주제로 한 팝송들과 가요는 이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멘델스존 음악 속의 무언가는 그 애상적인 선율로 인해 빗방울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쇼팽의 전주곡도,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도,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도 비 오는 날에는 더욱 가슴을 울린다.


슬픔과 절망 속에선 모차르트 레퀴엠

혼자 있는 시간은 발견되지 않은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스펙터클한 교향곡이나 오페라 전집을 들어보자.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웅장한 사운드나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이 빚어내는 화음이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이내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감동으로 바뀔 것이다.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모차르트의 레퀴엠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슬픔과 절망에 스스로를 던져놓으면 오히려 삶이 새롭게 보일 수 있기에 그러하다.


사랑을 나눌 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에 대한 회의나 의문이 생길 때, 또는 음악이 주는 진정한 가치가 느껴지지 않을 때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아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일상에서 아무때나 들어도 좋다.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있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처럼 군림해 있는 이 작품은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사랑을 나눌 때도 멋진 배경음악으로 손색이 없다.
우주와 미세한 먼지가 동시에 공존하는 음악이자 헤비메탈 마니아가 들어도 찬사를 아끼지 않을 인류 역사의 위대한 창조물이다.


가끔 중고음반점을 찾는 것도 음악과 더욱 친해질 수 있는 색다른 방법이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거나 쉽게 구할 수 없었던, 본인에게는 소중한 음반들을 우연히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거기에 있다.
새로운 음반이나 대중성에 치우친 음반을 판매하기에 급급한 일반 매장과는 달리, 중고음반을 매입할 때부터 날카롭게 음악적인 가치를 저울질하는 중고매장의 특성상 그곳에서는 값진 음반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높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끼리 생일이나 기념일에 음반을 주고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대를 생각하며 음반을 고르는 즐거움은 물론, 음악을 듣는 동안 내내 선물을 준 이를 떠올리게 하는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은 향과 맛이 깊고 무거우며 오랜 여운을 남기는 차를 마시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희노애락이 요동치는 마음의 잔에 한 가락의 선율이 떨어져 감동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 마치 차를 우리는 이치와 닮아 있다.
알맞은 온도가 아니거나 성급하게 우린 차는 제 맛을 내지 못하듯이 아무리 좋은 음악도 마음의 그릇에 올바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저 소리에 불과할 따름이다.
가슴에 와닿는 본연의 느낌을 투명한 감성으로 마주할 때 음악은 감동이라는 맛으로 보답할 것이다.


밤하늘에 별만큼이나 많은 음악을 인류는 만들어냈다.
시대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지기도 하고 유성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망망대해를 북극성에 의존하여 항해했던 뱃사람들처럼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북극성과 같은 음악을 간직해야 한다.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릴 때,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 음악은 세상에서 가장 큰 위안이 될 수 있기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