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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한국 경제 위기의 시간표
[커버] 한국 경제 위기의 시간표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5.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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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급성장이 위기 부채질…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이 ‘예방약’

시장이 어지럽다.
물 대신 석유를 먹은 듯, 가쁜 숨결이다.
중국 쇼크와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종합주가지수는 5월14일, 768.46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말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1185원으로 일주일 만에 19원이 올랐다.
그만큼 원화가치가 떨어졌다.
11일 정부는 경제상황 점검회의를 비상체제로 바꿨다.
언론 보도는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테그플레이션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을 어둠이라, 태풍이라 말해선 안 된다.
앞이 깜깜하다 해도 봄날 햇살을 잠시 가리는 먹구름일 뿐이고, 숨 쉬기 어렵다 해도 여름을 부르는 높새바람일 뿐이다.
20년 뒤, 40년 뒤의 오늘에 비하면 말이다.
2011년 대중국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고, 2020년 근로가능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하며, 2044년엔 석유 없는 세상에서 기계를 돌려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이곳은 햇살 가득한 봄날이다.
아직 한국의 무역수지는 흑자를 내고 있고,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내던지지 않았다.
석유 등 에너지 비축량은 서너 달을 족히 버틸 만큼 많고, 근로가능인구는 어린이, 노인 등 부양인구보다 많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많은 에너지다소비국가라고 세금을 물리는 국제기구도 없다.
13억 중국인들은 삼성전자의 휴대폰에 열광하고 POSCO의 철강으로 건물 뼈대를 세우고 농심 신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불경기라 신음하는 중소기업, 실업자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10년 뒤, 20년 뒤에 비하면 말이다.
5월 말, 한국의 금융시장을 뒤흔든 유가의 고공행진은 앞으로 닥쳐올 위험의 전주곡일 뿐이다.



유가 고공행진은 닥쳐올 위험의 전주곡


5월12일,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값은 14년 만에 배럴당 40달러를 넘어섰다.
사태가 이쯤 되자 올봄 감산을 결정했던 석유수출국기구(이하 OPEC) 회원국들까지도 다시 증산으로 돌아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일까.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들은 모두 북반구에 있다.
다들 지금 여름을 맞이하고 있단 얘기다.
날씨도 더운데, 웬 유가상승? 더운 날씨도 거슬러 유가가 오를 만큼 사태는 심각하다.
뿌리도 깊다.


세계 경기의 동시 회복? 경기회복으로 공장가동률이 높아지면 에너지 수요가 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동시에 경기회복이 온 일이 어디 이번이 처음이던가. 이라크, 이스라엘 등 중동의 정세 불안?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도 이만큼 유가가 오르지는 않았다.


일시적인 요인을 다 걷어내고 보면, ‘중국’이 나온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1970년대 이후 연 평균 10%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보였다.
에너지 소비도 크게 늘었다.
중국의 자동차 보급률은 90년 이후 10년간 연 평균 11%씩 늘어났다.
산유국 중국은 93년부터 석유 순수입국이 됐다.
2002년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의 석유소비국가가 됐다.


게다가 올해 전 세계 경기가 동반 회복기에 들어서자 ‘세계의 공장’, 중국의 원유 수요는 1월 사상 처음으로 100만톤을 넘어섰다.
2월에는 105만2천톤을 기록했다.
중국은 최근 3개월간 원유 수입을 평균 50% 늘렸다.
선진국들의 원유 소비 증가율이 1∼2% 내외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중국의 원유 수입 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마침 중동 정세 불안이 겹쳤다.
유가에 대한 OPEC의 권위는 구두 개입도 효력이 없을 만큼 떨어졌다.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관계는 2002년 9·11 테러 이후 눈에 띄게 멀어졌다.
미국은 테러 때보다 1억배럴 이상 많은 전략비축유를 모아들이고 있다.


국제 투기세력들은 곧바로 눈치챘다.
‘유가가 흔들린다’는 것. 가격이 흔들리면 차익 기회가 생긴다.
투기세력은 비달러 자산을 판 돈을 들고 뉴욕상품거래소로 몰려갔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가격은 급등했고 두바이유 등 다른 유종의 가격까지 끌어올렸다.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유 선물이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급에 큰 애로가 없는데 가격이 먼저 올랐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이라크 정권 수립이 실패해 더 큰 혼란이 야기되거나 중동 지역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유가가 더 오르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내다본다.
미국, 중동 관계가 회복되면 유가는 안정을 찾을 것이란 얘기다.



2011년,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반전

그러나 ‘중국의 성장’은 사라질 변수가 아니다.
중국 정부가 경제 긴축정책을 발표하면서 철강 가격은 하향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지난해 5월보다 30% 높은 수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유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천달러를 넘어선지 얼마 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이다.
건물도, 도로도, 자동차도 더 많이 필요하다.
당분간 중국은 자석처럼 세계 원자재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전 세계 에너지 수급과 경제 성장률을 중국의 급부상을 감안해 다시 전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2003년, 영국 정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화석연료의 가채 매장량이 원유는 40년, 천연가스는 62년, 석탄은 216년을 쓸 만큼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기엔 중국 변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전의 연구들엔 중국, 인도 같은 거대 에너지소비국의 등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에너지 수급 전망이 낙관적”이라고 지적한다.
똑같이 1%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더라도, 개발도상국은 에너지과소비형 산업구조라 선진국보다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한다.
더구나 중국과 인도는 인구만 23억명에 이른다.
특히 중국은 최근 30여년간 평균 경제성장률 10%의 고속 질주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이 세계 경제에 던지는 복선은 간단하지 않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이면 중국의 1인당 GDP가 9809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13억 인구가 현재의 한국인과 비슷한 소비 수준으로 올라서는 것이다.
상하이 등 동부 해안지대는 그 전에 일본, 미국인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국제농업기구(FAO)와 BP의 분석을 들여다보자. 중국인이 미국인처럼 쇠고기를 먹으려면 미국 전체 곡물 소비량과 비슷한 3억4300만톤의 곡물이 소 사료로 필요하다.
중국인이 일본인처럼 수산물에서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면 전 세계 어획고와 맞먹은 1억톤의 해산물이 소모된다.
중국인이 미국인처럼 자동차를 이용하면 일간 석유 생산량보다 많은 8만 배럴을 하루에 소비한다.
중국은 원자재뿐 아니라 세계 식량의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의 급성장은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식량 안보까지 흔드는 셈이다.


그러나 72년, 로마클럽이 석유자원 고갈을 예언했던 시점이 10여년 이상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는 석유를 쓰고 있다.
로마클럽의 음울한 예언은 시장을 자극했고, 자금은 기술개발로 흘러들었다.
석유자원을 찾아 채굴하는 기술은 더 발전했다.
필요는 발전을 가져왔다.


전병서 대우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기술의 발전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는 “중국에 유선전화를 한국처럼 보급하려면 전 세계 구리 매장량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무선통신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석유 자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문배 위원은 “유가가 30달러대로만 지속되어도 대체에너지 개발이 엄청나게 자극될 것”이라고 말한다.
개발비가 비싸 상용화되지 못한다고는 하나 30~40달러대의 유가가 지속되면 대체에너지의 경제성이 석유보다 높아진다는 것이다.
교토의정서 등 기후협약이 체결돼 환경 유지비용이 부가되기라도 할라치면 화석연료 사용의 경제성은 더욱 떨어진다.
인류 경제의 동력 기반은 언젠가는 화석연료 등 탄소에너지에서 태양 등 수소에너지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 경제가 이 변화에 대비할 능력, 적응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미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막혀 있지만 국제적인 기후협약은 머지않아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
온실 효과로 인한 해수면 상승 문제는 연안도시에 큰 위협요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에너지의 84%를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로 조달하는 상황이다.
또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증가율은 8%대로 OECD 평균보다 10배 높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교토의정서가 체결되면 5~10년 안에 발전소와 에너지 다소비산업의 조업이 단축되고 자동차 운행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각국의 에너지 확보 경쟁이 가속화되면 화석연료에 대한 가격 프리미엄도 지금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에너지다소비국가의 에너지 확보전은 벌써 시작됐다.
후진타오 중국 수석은 올해 이집트, 가봉, 알제리 등 아프리카 3개국을 방문해 에너지 협력을 논의했다.
사우디와 천연가스 매장 지역 탐사 및 생산 계약도 맺었다.
일본 고이즈미 수상은 지난해 러시아를 방문해 앙가르스크와 나호트카를 잇는 송유관 건설 의사를 표명하면서 70억달러의 건설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은? 대통령을 탄핵했다가 재신임했다.


그동안 한국의 제1수출시장으로 경제에 숨통을 터줬던 중국 경제는 조만간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는 2011년이면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중국 정부는 2005년까지 철강 자급률을 95%로, 201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5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모두 한국의 주력 제품들이다.




“2010년까지가 기회의 시간”

우리에게 희망은 ‘사람’이다.
전병서 본부장은 “지하철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라”고 말한다.
얼굴이 긴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할 때 소리를 친다.
전화기 수화구, 송화구가 짧아 통화감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얼굴 길이는 한국인과 비슷하다.
중국에선 모토로라보다 애니콜 휴대폰이 더 인기를 끌었다.
전 본부장은 “중국 시장에서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문화와 체험이 유사한 한국의 제품이 새로운 중국식 스탠더드가 될 수 있다.
그는 “유행에 민감한 한국의 소비자와 내수시장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훌륭한 테스팅 보드”라고 말한다.


마침, 한국과 중국의 베이비부머는 연령대가 같다.
1970년대생.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 직전에 태어난 이들은 가장 두터운 소비층을 형성하고 있다.
김희선, 강타를 좋아하는 중국의 70년대생과 한국의 70년대생은 소비문화를 공유한다.
중국의 1인당 GDP 수준이 한국을 앞지르기 전까지 우리는 문화와 체험을 무기로 상품을 팔 수 있다.
사람은 또 하나의 기회다.


인구구조로 봤을 때 한국에 남은 시간은?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효 근로인구와 유효 소비인구의 비율로 설명한다.
유효 근로인구는 취업한 생산가능 인구를, 유효 소비인구는 소비를 할 수 있는 인구를 나타낸다.


90년 이후 한국의 유효 근로인구가 유효 소비인구보다 많았다.
그만큼 경제활력이 높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태는 2020년까지 유지된다.
이후 관계는 반전된다.
유효 소비인구가 유효 근로인구보다 적어지는 것이다.
2040년대엔 60년대보다도 경제활력이 낮아진다.


경제활동 인구가 먹여 살려야 하는 어린이, 노인의 비율을 나타내는 총 부양비는 2050년 81%를 넘어선다.
60년 수준이다.
다만 60년의 부양인구는 어린이가, 2050년 부양인구는 노인이 더 많다는 점이 다를 뿐. 돈 버는 사람보다 소비만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내수는 위축된다.
일본처럼 말이다.


그러면 우리 경제에 남은 시간은 20년? 40년? 최 위원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인구자원이든, 천연자원이든 감소되기 시작되면 때는 이미 늦는다는 것이다.
원리는 자산운용과 비슷하다.
종잣돈에 손실이 나면 수익률을 이전보다 더 높여야 이전 같은 수익을 낼 수 있다.
따라서 최 위원은 “근로가능 인구가 정점에 이르는 2010년까지가 우리가 여유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분석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로마클럽, 어긋난 예언의 미덕 매일 두 배로 늘어나는 꽃이 있다.
오늘의 한 송이는 내일의 두 송이, 모레의 네 송이, 글피의 여덟 송이다.
이 꽃은 대만 넓이의 연못에서 자란다.
꽃이 이 연못의 반을 채우는 데 364일이 걸렸다.
다음 날, 연못은 꽃으로 꽉 찰 것이다.
꽃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게 된다.
1968년 서유럽의 기업가, 학자 등 지도급 인사들은 인류 문명의 위기를 직감하고 현인들을 모아 클럽을 결성한다.
이름하여 로마클럽. 이 클럽이 72년 발간한 <성장의 한계>란 보고서는 성장이 제한된 자연자원을 연못에,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을 매일 두 배로 늘어나는 꽃에 비유했다.
보고서 발간의 파장은 컸다.
특히 보고서에서 제일 먼저 소진될 것이라 예측된 구리는 국제 시장에서 가격이 치솟았고 곳곳에서 광산개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로마클럽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기술의 힘이었다.
구리 고갈에 대한 걱정은 그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광섬유가 개발됨으로써 사라졌다.
당시 20여년 정도 사용할 수 있으리라 추산됐던 석유 가채 매장량 집계는 채굴 기술의 발달 덕에 40여년치로 늘어났다.
비록 예언은 어긋났지만 로마클럽은 의도했던 것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듣는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불균형, 한 사회 내 빈부 불균형, 인간과 자연의 불균형이 가져올 문제를 미리 지적함으로써 문제 발생을 예방하고 대비할 시간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예고된 위험은 오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말이다.
다가올 위험을 경고하는 현인들의 작업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월, 덴마크 환경평가원과 영국 경제주간지 는 로버트 포겔, 제임스 헥맨 등 노벨상 수상자, 경제학자 10여명을 모아 ‘코펜하겐 컨센서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 변화, 전염병, 무장 충돌, 교육, 금융 불안, 지배구조와 부패, 영양실조와 기아, 인구와 이주, 위생과 물, 국가보조와 무역 장벽 등 국제적 우선 과제 10개를 연구해 여론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5월24~28일 개최될 코펜하겐 컨센서스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 www.copenhagenconsensus.com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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