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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사면초가 국민연금, ‘궁’민연금 되나
[이슈추적] 사면초가 국민연금, ‘궁’민연금 되나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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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민 여러분! 이렇게 좋은 궁민연금 혜택을 우리만 받아야겠습니까?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통합해서 다같이 혜택을 누립시다!”

5월28일, 청와대 브리핑팀이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해 인터넷에 올린 설명글에 아이디 ‘dudrnn’란 네티즌이 덧붙인 답글이다.
그의 말엔 2가지 함의가 들어 있다.
첫째, 국민연금과 달리 세금으로 적자 보전을 받는 공무원 연금, 군인연금에 대한 비아냥. 올해 군인연금은 6천억원을, 공무원연금은 1천억원을 세수에서 보전받기로 했다.
둘째, 국민연금 혜택에 대한 불신. 퇴직 때까지 평균적으로 받은 소득의 50%만을 받아선 국민연금이 아니라 궁(窮)할 궁자 궁민연금일 뿐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 여론은 국민연금 폐지 운동으로 불붙었다.
발화점은 5월4일, ‘mariavet2000’이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이 포털 사이트에 올린 ‘국민연금의 비밀’이었다.
이 네티즌은 맞벌이 부부가 각각 연금을 냈어도 부부 중 한 명에게만 연금을 주는 문제점, 남편 사망시 미망인이 허드렛일을 하면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문제점, 60~64살에 아파트 수위 등 쥐꼬리만 한 수입만 있어도 연금을 삭감하는 문제점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국민연금의 허점들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그가 지적한 문제점들은 주로 연금 지급의 형평성에 집중됐다.
국민연금 폐지 지지자들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한 사이버 시위, 광화문 촛불시위 등 직접적인 실력 행사에 나서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안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5월25일 발표한 자료에서 네티즌이 대표적 문제점으로 지적한, 남편 사망시 미망인이 적은 소득만 있어도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현행 제도에 내재된 허점을 시인했다.
그리고 남편 사망시 일단 부인에게 5년간 연금을 지급한 뒤 50살이 되면 다시 연금을 주되, 50살이 되지 않더라도 연간 소득이 500만원 이하일 경우 지급하는 유족연금도 연금 지급 소득 기준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비밀’ 글, 폐지 운동으로 번져 고소득자 상한액이 낮다는 불만 여론에 대해서도 정부는 진화를 시도했다.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연금 상한액 납입 대상을 월 소득 360만원 이상으로 정한 현행 기준을 연금 전체 납부자 가운데 중간 월 소득액의 3배 이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고치겠다고 밝힌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면 고소득자의 연금 납부액이 월 4만2천원에서 5만4천원 가량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고소득자들의 경우 연금 납부 부담이 늘어난다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소득 기준이 높아지면 나중에 지급받을 연금 수급액도 늘어나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저소득층의 연금 소외 문제와 관련, 정부는 연금 하한액을 월 소득 22만원에서 1인 가구 최저생계비로 변경해 적용하기로 했다.
연금 납부 유예 대상자를 늘려 연금 혜택에서 탈락하는 저소득층의 숫자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납부 유예란 연금을 납입하지 않는 대신 추후 소득이 생기면 과거에 내지 못했던 것까지 소급 납부해 연금 수급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연금 탈락자 방지제도다.
지난해 최저 생계비가 36만7천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 제도 도입시 연금 탈락자의 숫자는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기존에 월 1만5400원(지역 가입자 기준)을 내왔던 월 소득 22만원 이하 가입자의 부담금은 2만5690원으로 1만원 이상 늘어나게 됐다.
나머지 개정방안은 16대 국회에 제출했던 것 그대로 17대 국회에 상정된다.
이에 따르면 연금 소득대체율은 단계적으로 50%까지 인하되고, 보험료는 5년마다 1.38%포인트씩 인상해 2030년까지 15.9%로 조정된다.
또 현행 제도에선 비상성 자문위원회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 중심의 상설조직으로 만들고 산하에 투자정책, 위험관리, 평가보상 등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방안도 예전 것 그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불안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며 “연금 재정부터 튼튼히 해야 국민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국민연금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현행 국민연금은 보험료로 낸 돈의 1.5~5배를 받도록 돼 있어, 전면적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다.
더구나 한국의 고령화 진전속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빨라 국민연금 파산에 대한 우려까지 듣고 있다.
국민연금 조기 파산을 막고 우리 후손한테까지 연금 혜택을 유지시키려면 보험료를 3배 가량 더 내고 수령액수는 더 줄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민연금 주식 투자 확대론이 힘을 얻는 것은 이 대목이다.
한국 상장기업의 이익증가율이 10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은 국가 부의 국민 배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중장기 기금운용 마스터플랜을 세우겠다고 밝힌다.
연금의 주식 투자 비중에 대한 문제는 국민연금법 개정 뒤 상설화될 전문가 중심의 기금운용위원회에 맡기면 된다.
해법은 연금의 다층화 남은 문제는 미래 세대를 위해 현 세대가 좀 더 부담을 지자는 정책 방향의 정당성을 어떻게 현 세대에 납득시키고 공감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왜 현 세대들은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것일까? 일부 연금 전문가와 정부 부처의 분석처럼 대국민 홍보가 부족해서? 국민들이 복잡한 국민연금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현 세대가 이기적이어서? “모두 아니다”라고 또 다른 연금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민연금 폐지론이 나오게 된 뿌리는 오히려 정부가 “너희가 연금제도를 아느냐” 하는 식의 오만과 편견으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한 데에 있다는 것이다.
김용하 한국사회보험연구소장(순천향대 교수)은 “국민들이 연금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 하나 둘 단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정부는 그 질문들의 진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들은 현행 국민연금제도 자체가 자신들한테 맞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국민한테 재정 안정화 방안을 아무리 설명해도 먹힐 리가 없다.
결국 답은 연금의 다층화로 돌아온다.
일부 연금 전문가와 정책가들은 연금을 ▷재원을 세수에서 조달해 전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연금 ▷기여금에 비례해 연금 급여를 주는 소득비례 방식의 국민연금 ▷퇴직금으로 직장별로 자율 운영하는 기업연금 이렇게 3층 구조로 보강하면 현행 국민연금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초연금, 국민 10명 중 4명이 국민연금의 수혜를 입지 못하고 있으니 기초연금제를 도입해 국가가 세수로 이들의 기초적 생활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기초연금제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재원 확보다.
즉, 세수가 한정된 상황에서 어떻게 기초연금을 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연금 다층화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반응한다.
새 국회는 어떨까. 17대 총선에서 기초연금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묘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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