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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막에 인터넷 바람이 분다
[글로벌] 사막에 인터넷 바람이 분다
  • 김동문
  • 승인 2000.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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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국가 인터넷 카페 유행....차도르 두른 여성들에게까지 파급 요르단대 근처 '북스@카페'. 말쑥한 젊은이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인터넷 항해에 여념이 없다.
여기저기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젊은이들 가운데는 눈만 빠꼼히 내놓은 채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가린 여성도 눈에 띈다.
이메일에 채팅에 사이트 서핑에…. 요르단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인터넷 카페의 등불은 꺼질 줄을 모른다.
중동의 사막에 인터넷 열풍이 거세다.
긴 여행 끝에 만난 오아시스처럼 도심 곳곳에서 인터넷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요르단의 경우, 요르단대 주변에만 60∼70여개의 인터넷 카페가 성업중이다.
웬만한 건물 2, 3층에는 예외없이 인터넷 카페가 들어서 있다.
전국에 300개는 족히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중상류층 젊은이 사이로 빠르게 확산 요르단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 카페는 `북스@카페'다.
이집트 등 4개국에 체인점을 둔 이 국제적인 카페는 지난 97년 요르단에 첫발을 들였다.
회원이 3천여명에 이르고, 하루 평균 200여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에 들러 인터넷 서핑을 즐긴다.
해가 질 무렵이면 차를 타고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카페 안이 북적댄다.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는 젊은이들은 주로 중상류층 자제들과 외국인들이다.
커피를 비롯해 이곳에서 제공하는 먹거리도 다른 곳에 비하면 비싼 편이다.
젊은이들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인터넷을 항해하며 은밀한 만남을 즐긴다.
밖에서는 보기 힘든 대담한 애정표현이 이따금 연출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어두운 조명 밑에서 충혈된 눈동자의 학생들을 만날 수도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카페도 있다.
학과수업이 끝나는 오후 시간부터 저녁 9시 사이엔 카페 안이 발디딜 틈조차 없이 비좁다.
특별히 칙칙한 분위기의 응큼한 카페는 빨간 눈의 젊은이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다.
요르단대 대학원생 마으문(25)은 이런 인터넷 열기가 못마땅하다.
“남학생들 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 사이트를 찾아갑니다.
개중에는 포르노에 중독된 친구들도 있죠. 아마 집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요르단은 인터넷을 검열하지 않는다.
모든 사이트가 열려 있다.
그래서 집에서든 인터넷 카페에서든 원하면 언제든지 음란 사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
음란시디 불법복제품도 공공연하게 유통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음란 사이트 접속을 금지하는 인터넷 카페도 생겨났다.
한국 유학생들이 주로 찾는 `우르'의 에마드 사장은 “카페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음란물에 접속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카페는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이용하는 공동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고 말한다.
아랍 여성, 인터넷은 세계를 보는 창(窓) 인터넷 열기를 타고 중동의 여성들도 신감각으로 무장하고 있다.
복장은 전통을 따르지만, 마음만은 첨단을 달린다.
암만의 영국문화원 인터넷 공간. 머리와 얼굴과 몸을 온통 검은 천으로 가린 여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도통 얼굴을 알아볼 수 없지만, 복장으로 봐서는 엄격한 이슬람 집안의 딸이 분명하다.
하지만 인터넷 항해에 뛰어든 순간, 사람이 달라진다.
그가 처음 찾아들어간 곳은 핫메일의 편지함.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편지함을 살펴본다.
지금까지 편지 한통 변변히 받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 이메일은 `나만의 공간'이다.
이메일을 주고받고, 시간이 나면 인터넷을 누비면서 세계를 살펴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는 주로 대낮에 이곳에 들른다.
집안 통금시간이 이르기 때문이다.
요르단 여성들에게 인터넷은 세계를 보는 창이다.
전통과 인습의 굴레에 갇힌 그들에게 인터넷은 탈출구이기도 하다.
요르단에서 미혼여성은 가장에게서, 기혼여성은 남편으로부터 추천서를 얻어야만 해외여행이 허락된다.
그렇지만 인터넷을 통하면 어디든 갈 수 없는 곳이 없다.
여성들은 주로 뉴스 사이트를 통해 세계에 대한 견문을 넓히거나, 여행 사이트 혹은 패션 사이트를 드나들며 첨단정보를 캔다.
중동의 여성들은 전통의 간섭을 받고 산다.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이 다수를 차지한다.
짝사랑을 하는 남자가 있어도 마음을 열 수가 없다.
양가 어른들의 서명과, 법이 정한 주례자의 공증이 있어야 결혼이 유효하다.
도둑결혼이나 동거는 간음죄에 해당한다.
양가 부모들의 마음에 들어야 혼담이 오고가기 시작한다.
혼담이 무르익으면 양가 어른들이 입회한 가운데 정혼한다.
그 뒤에야 데이트가 허락된다.
그것도 가족이 동행한 상태에서. 인터넷 채팅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쁨이다.
이성을 만나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답답함을 털어버린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이성과 사이버 데이트를 할 수도 있다.
사실 이들은 사이버팅은 알아도 미팅이니 소개팅, 폰팅이니 하는 것들은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다.
축제니 카니발이니 하는 것도 없다.
같은 과에서도 남녀가 섞여 MT를 가는 일이 없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기회도 별반 없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은 다르다.
영화 <유브 갓 메일>을 보면서 인터넷으로 한건을 기대하는 사람들처럼. 젊은 여성들에게 인터넷은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이다.
사이버팅으로 결혼이나 데이트에 성공한 중동판 <유브 갓 메일>이 있을까? 인터넷 카페 북스@카페에서 만난 라나(29)는 “많지는 않지만 사이버팅을 통해 데이트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쉽게 채팅공간을 통해 자유롭게 남들과 교류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중동 인구 2억8000여만명 가운데 인터넷 사용자는 190여만명으로 0.7% 정도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여성 네티즌은 15만여명으로 6%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2002년에는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1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인터넷서비스공급업체(ISP)만 해도 120곳에 이른다.
. 인터넷 열풍이 가장 세찬 나라는 아랍에미리트다.
인터넷 전문월간지 <인터넷 알알람 알아라비>(아랍세계의 인터넷)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150명이 네티즌으로 분류된다.
카타르 61, 바레인 60, 레바논 57, 쿠웨이트 50, 요르단 19, 사우디아라비아 14, 튀니지 12, 이집트 6.5 등 나라마다 격차는 있지만 네티즌의 수는 사막의 모래알처럼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은 필요악이라고… 누르(18·여)는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라크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실향민이다.
생활수준은 요르단의 서민보다 못한 편이다.
그런데도 이 여학생은 컴퓨터를 갖고 싶어한다.
여학생들 사이에 사이버팅이나 채팅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가를 알 수 있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네티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채팅은 네티즌이면 거의 누구나 하고 있다.
마치 사냥하듯이 상대를 찍어 말을 거는 경우도 있다.
”고 말한다.
채팅문화가 미팅이 없는 이곳 청소년들의 풍속도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보수적인 종교인들이나 부모들은 인터넷 사용 규제를 역설한다.
다른 중동국가처럼 인터넷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일부 중동국가에서는 음란 사이트나 이른바 불건전한 사이트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게다가 반이슬람적인 사이트에 젊은이들이 접근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슬람판 뉴에이지운동의 도구로 인터넷을 인식하는 이들의 반인터넷 움직임도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인터넷 문화가 확산된 까닭에 아직은 이렇다 할 이론정립이 안된 상태이지만, 폭발력이 큰 쟁점이다.
인터넷의 이슬람 지역 유입은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기대감과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젊은이들의 대안 문화의 하나로, 청소년들의 신문화로 자리잡아가는 인터넷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변모할 것인가. 사막에 거센 모래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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