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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신임 금감원장 ‘모피아 콤플렉스’ 넘나
[이슈추적]신임 금감원장 ‘모피아 콤플렉스’ 넘나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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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재무부에서 ‘장관감’이라 꼽히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어떤 라인으로 분류되지 않으면서 모든 라인의 총애를 받았다.
은행과장, 세제실장, 금융정책국장 등 요직을 찬찬히 거치며 성장하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와중 돌연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사직했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재무관료가 아니라 금융감독기구의 총 책임자로서. 금융감독기구 안에 먼저 가 있던 재무관료 출신들이 그를 맞이했다.
돌이켜보면 금융감독위원장 자리에 재무관료 출신이 아닌 사람이 앉은 적은 없었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인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행정고시 6회, 2대 이용근 한국앤더슨그룹 고문은 9회, 3대 이근영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6회, 4대 이정재 전 위원장은 8회 재경직 출신이다.
현재의 금융감독 시스템이 태동한 98년 정부는 금융감독, 조사, 정책 입안권이 재정경제부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데 대한 대중의 불안을 받아들여 금융감독위원회는 국무총리 산하 조직으로, 금융감독원은 민간기구로 만들었더랬다.
그럼에도 금융감독기구 의사결정자 절반은 재무관료 출신이다.
9명의 금감위원 중 위원장, 상임위원, 당연직 위원 등 4명이 재무관료로 공직을 시작했다.
금감위 사무국에선 기획행정실장, 2명의 감독정책국장, 공보관 등 고위간부 전원이 재정경제부 출신이다.
금융감독원 감사와 부원장 3명 중 1명도 재정경제부 출신이다.
금융가 “인재가 돌아왔다” 호평 윤증현 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이 돌아왔다.
외환위기 발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98년 초 스스로 물러났던 그는 세무대학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자리를 거쳐 6년여 만에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으로 관직에 복귀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은 ‘환난 책임자’, ‘전형적인 재무관료 출신’이라며 윤 위원장 임명에 반대했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도 국무회의에서 “IMF 위기 당시 핵심 관료를 금감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책임이 있다면 당시 장관에게 있지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변호했고 윤 위원장은 8월4일 취임식을 치렀다.
윤 위원장 취임에 대해 금융가의 반응은 시민단체, 노조만큼 부정적이지는 않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사실 윤 위원장이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으로 간 건 97년 1월”이라며 “환난이 일어난 건 그해 11월이니 윤 위원장이 실장으로 가기 전에 환난의 싹은 이미 터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 금융학자는 “윤 전 실장이 환난에 책임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도의적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물러난 것으로 안다”며 “당시 재정경제부 사람들이 ‘차기 장관감이었다’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이들의 말은 윤 위원장이 환난 책임자라는 세간이 지적은 부당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번에도 재무관료가 금융감독위원장에 임명된 데에 대한 금융가의 경계심도 높지 않다.
한 경제학자는 “재무관료를 빼고 누구를 쓰냐”고 반문한다.
또 다른 경제학자는 “스마트하기로 치면 윤 위원장이 으뜸”이라며 그를 ‘인재’라고 평가하길 망설이지 않았다.
윤 위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차기 금융감독위원장뿐 아니라 우리금융그룹 회장, 통합거래소 이사장, 경제부총리, 국정 2기 청와대 정책실장 등 요직 교체설이 나올 때마다 후보자로 거론되곤 했다.
왜 금감원 노조와 일부 시민단체는 이런 ‘인재’의 등용을 거부했던 것일까? 일단 시기가 미묘하다.
현재 진행 중인 금융감독기구 개편과 관련, 정부금감위금감원은 서로 팽팽하게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신용카드 대란의 원인과 책임을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기구를 민간기구화해 독립성을 더 강화하자는 금감원 노조측은 “정부가 경기부양을 하려고 금감위와 금감원이 카드사 감독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묵살했다”고 주장하고, 정부 일각 특히 감사원측은 “카드사 감독 책임이 금감원에 있는데 책임지지 않는다”며 ‘책임 있는 공무원 조직화’를 역설한다.
감사원 의견에 한때 동조하는 듯했던 재경부는 이헌재 장관이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현 감독체제 유지에 대한 견해를 말한 뒤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아직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은 없다.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금감위 역할을 대폭 강화한 ‘금융감독 체계개편 및 운영혁신 방안’을 지난달 정부혁신 관련 비공개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질 뿐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안의 골자는 금융 관련 각종 법안의 제·개정권 등 금융 관련 일반 업무가 재경부에서 금감위로 넘겨지고, 금융감독원 감독업무도 상당 부분 이양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 70여명인 금감위 사무국 인원은 150여명으로 늘어나고 금감원 조직은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금감원 노조는 주장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금융감독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이정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맘 편했을 리 없다.
그는 장관급 중 다른 누구보다 이헌재 장관과 호흡이 잘 맞았다.
금감원 부원장 시절 “이헌재 위원장 방에 어깨 펴고 들어갔다 웃으며 나오는 사람은 이정재 부원장과 이종구 국장뿐”이라는 일화를 남겼을 정도다.
또 취임 전 노조의 인기투표에서 금감위원장감 1위로 꼽힐 만큼 직원들 신임도 높았다.
이러한 그가 임기의 반도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사표를 낸 건 지난해부터 이어진 카드 대란,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란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설이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하지만 설사 그가 아니라 다른 이가 그 자리에 앉더라도 양 조직의 수장으로서 갈등은 피할 수 없을 터. 그래서 한때 여의도에선 “금융감독기구 개편 이후 새 위원장을 임명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관료 선후배의 막강한 신임을 얻고 있는 인사가 금감위원장으로 온다고 하니 노조와 시민단체가 불안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금정실장 시절 “금감위, 재경원 산하 둬야” 발언 실제로 윤 위원장은 과거 “금감위는 재경원 산하에 있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대통령 직속 금융개혁위원회가 금융감독기구 개편을 논의하던 97년 5월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금융정책 권한의 귀속 여부에 대해서도 “금감위가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자. “정부는 신설될 금융감독위원회에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권한을 이관, 금감위가 금융정책 입안 및 감독을 책임지도록 했다.
윤증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은 16일 “금감위가 설치될 경우 어차피 금융정책권한도 가질 수밖에 없어 재경원 금융정책실의 기능과 중복된다”며 “재경원과 금융행정 이원화를 막고 정책 입안과 감독이 따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감위가 금융정책실 기능을 흡수,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이 경우 금감위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독립 기관이 될 것”이라며 “사실상 금융부가 될 금감위가 총리실 소속이냐 재경원 소속이냐는 중요하지 않지만 재경원 산하에 있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 1997년 5월17일자)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난 지금, 윤 위원장은 아직 이런 견해를 견지하고 있을까? 8월4일 취임식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위원장은 기자의 질문에 “나중에, 나중에”라며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금융감독권, 정책권 이양에 대한 의견을 묻는 다른 질문에 대해서도 현재 논의 상황만 전했을 뿐,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공인의 말과 행동엔 중요한 책임이 따른다”라고만 강조했다.
그런 그가 청와대로부터 임명장을 받기 전, 즉 국무회의에서 본인의 임명안이 통과되기 하루 전인 2일 저녁에 만난 사람들은 금감위, 금감원 임원, 그 중에서도 재무부 출신 임원들이었다.
김창록 금감원 부원장, 양천식 금감위 상임위원, 김용환 금감위 공보관 등 옛 재경부 식구들 10여명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 대목에서 금감원 노조와 일부 시민단체의 불안은 또다시 가중됐다.
‘왜 하필 모피아(MOFIA: 재경부의 영문 표기인 MOFE와 마피아의 합성어)만 만났을까?’ 이들은 재경부와 금감위ㆍ금감원의 ‘모피아’가 서로 코드를 맞출까 봐 걱정한다.
참여연대가 3일 발표한 논평을 보자.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통합 금융감독기구의 장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동시에 금융감독기구의 존립 목적은 오직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와 금융거래의 효율성 제고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평범한 상식을 새삼 강조하는 것은, 금융감독기능을 여타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을 때 어떠한 파국적 결과가 초래되는가는 다시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작년 이래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는 카드 대란은 물론 한국 주요 금융업종의 부실은 모두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윤 금감위장은 더 이상 재경부 관료가 아니다.
” 이런 세간의 우려를 그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중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강조했다.
“국가경제의 성장이 우리 금융의 발전에 필요조건인 것은 분명하지만 금융감독의 직접적 정책목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법에서 주어진 감독 목표에 충실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내실 있고 지속적인 성장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만 감독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고 경기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유관 부처와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겠다.
” 정부 정책에 대한 중립성과 경기 선제 대응을 위한 긴밀한 협조. 배치되는 두 목표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배치가 아니라 보완으로 봐달라. 개발경제에 있어서 그런 부분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면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 그가 말한 ‘보완’이 과거 재무관료 출신 금감위원장들과 어떻게 다를지는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다.
그의 앞에 놓인 첫 번째 리트머스 종이는 ‘금융감독기구 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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