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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연기금 주식투자, 누구 맘대로!
[이슈추적] 연기금 주식투자, 누구 맘대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08.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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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제출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의 내용은 간단하다.
연기금의 주식 및 부동산 투자를 금지한 3조3항을 삭제하자는 것. 기금관리기본법 3조3항은 “기금관리주체는 당해기금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연기금이 주식투자를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이 7조6천억원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조항에는 기금의 설치 목적과 공익에 위배되지 않고, 기금운영계획이 반영돼 있는 경우 예외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은 이러한 ‘원칙 금지-예외 허용’이 연기금의 자산운용구조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 주식투자 비중 미국의 10분의 1 대부분의 연기금은 여유자금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채권 매입에 집중 투자한다.
가장 덩치가 큰 국민연금이 우리나라 전체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13.5%에 이른다.
매년 국민연금의 적립금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이런 추세라면 20년 내에 우리나라 채권 전체를 국민연금이 다 사들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면서 채권수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투자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차관은 지난 7월21일, 한 세미나에서 “기금이 국채를 중심으로 투자하면서 국채에 대한 초과 수요가 발생해 채권수익률이 계속 내려갈 것”으로 전망하며 “경험적으로 국가신용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주식수익률이 채권수익률을 웃돌고 우리나라도 이런 시점에 와 있다”고 분석했다.
변 차관은 또 “국민연금조차 목표수익률을 낮게 잡아 주식투자를 적게 하고 있고, 다른 기금은 채권이나 정기예금에만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것이 정부 여당이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에 매달리는 까닭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는 증권시장 활성화, 경기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다.
지난 2분기 주식시장에서 기업을 공개한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종합주가지수는 1000포인트와 500포인트를 어지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단기 매매 위주의 개인 투자자들이 하루 주식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증권업계에서 이런 악순환 고리를 끊고, 주식시장이 기업 자금조달과 자산운용시장으로 제 기능을 하려면 연기금이 기관 투자자로서 제 구실을 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증권업협회는 지난 7월 우리나라의 대표적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미국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3년 말 현재,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은 6.3%로 미국(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 68.0%이나, 일본 41.9%, 캐나다 45.3%, 홍콩 44%, 싱가포르 32.6%, 말레이시아 21.4% 등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증권업협회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지금과 같은 저수익 자산 위주의 운용으로는 연기금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기금관리기본법 관련 규정을 조속히 폐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연기금을 통한 증시부양에 대해서는 여당 내에서도 거부감이 적지 않다.
지난 8월5일 열린 열린우리당 당내 설명회에서도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증시부양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 “중국 변수만 일어나도 주식시장이 요동치는데 위험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등 우려가 잇따랐다.
증시부양을 통한 경기 활성화 역시 비판적인 시각이 상당수다.
주가지수가 상승하면, 보유 주식의 평가이익이 증가하고 ‘부의 효과’로 소비 욕구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롤러코스트 장세로 만들어진 소비가 과연 건강한 소비냐는 지적이다.
기금관리법 개정, 시민단체 찬반 엇갈려 시민단체의 경우,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에 대한 찬반 입장이 엇갈린다.
권영준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은 “아직도 연기금을 대부분 공무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 여당이 주식투자 확대를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권 위원장은 연기금이 자체 설립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운영의 독립성, 중립성이 먼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은 찬성 입장을 밝힌다.
장 위원장은 “연기금이 정치적, 정책적 목적에 간섭받지 않고 얼마나 독립적으로 운영되느냐와 연기금의 안정성을 위해 주식투자가 정말 필요하냐는 서로 구별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주식투자를 하되 어떻게 할 것이냐가 핵심적인 논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장 위원장은 주식투자가 연기금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3~4년 투자하는 것이라면 주식이 위험을 늘릴 수 있지만 10년, 20년 투자하는 것은 오히려 연기금의 안정성을 높인다”며 “이것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국내 주식 가운데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는 종목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일부 주장도 반박한다.
그는 “삼성전자나 POSCO 같은 국내 우량 기업 주식을 외국인이 다 갖고 있고,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이익을 외국인이 다 가져간다”며 “이런 비판을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우리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외국인이 국내 기업 주식을 꾸준히 사는 것은 우리 기업 가운데 좋은 곳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외국인만 비난할 게 아니라, 우리가 국내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장 위원장도 주식투자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자유민주연합은 연금관리기본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내 논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찬성 의견이 우세하다.
유승민 한나라당 제3정조위원장은 “3조3항을 폐지해도 새로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되는 곳은 자체법에 주식투자 허용 여부가 규정돼 있지 않은 18개 연기금인데, 이들의 자산 규모가 40조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정부 여당이 원하는 것은 결국 국민연금이 좀 더 자유롭게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한다.
그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고 지적한다.
주식투자가 성공할 경우 문제가 없지만, 잘못됐을 때 책임을 지는 메커니즘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 위원장은 “정부 여당의 논의는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라고 지적한다.
적절한 제도개혁 논의 없이 무조건 주식투자를 확대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한나라당은 정부안과는 별도로 새로운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정부가 기금의 30%까지 국회 심의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돼 있는데, 이를 대폭 축소하고, 연기금의 주요 투자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국회가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잘못됐을 땐 책임지는 메커니즘 마련돼야” 지난 8월16일,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놓고 정책 토론회를 개최한 민주노동당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건호 민주노동당 심장정 의원 정책보좌관은 “전체 기금운영과 주식시장을 포함한 금융시장 개혁방안이 함께 논의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3조3항의 폐지가 논의의 핵심이 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 보좌관은 “장기적으로 채권보다 주식의 수익률과 안정성이 높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것은 시장 전체의 평균을 뜻한다”며 “결국 종목 선택이 문제이고, 항상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민주노동당도 주식시장에 미치는 외국인 투자자의 영향력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보다는 소유제한이나 단기매매 제한 같은 직접적인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오 보좌관은 “핵심 산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가입자 참여 확대 같은 국민연금기금 운영주체의 민주화와 외국인 투자자의 자의적인 영향력의 통제장치 도입, 연기금의 적극적인 경영권 행사 등의 전제조건이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 여당이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를 위해 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물론 지금은 지난해와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그만큼 8월 말 임시국회나, 9월 정기국회에서 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조3항의 폐지가 연기금에 대한 잃어버린 사회적 신뢰를 되찾아오는 계기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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