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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중의 시장 읽기]한국은행에 맞서지 마라
[김범중의 시장 읽기]한국은행에 맞서지 마라
  •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 승인 200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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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하면서 7월의 기록, 4.4%를 훌쩍 뛰어넘었다.
근원물가도 3.2% 상승하면서 7월의 3.1%보다 상승폭을 확대했다.
한국은행의 근원물가 관리 상한이 3.5%이니 ‘물가관리의 파수꾼’ 입장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가보다 4일 앞서 발표한 7월의 산업활동 동향은 더욱 처참했다.
전년 동월 지표로는 개선되었지만 전월비로는 모두 부진했다.
7월부터 시작된 무더위로 각종 경기지표가 개선될 것을 기대했던 시장 참여자들은 아연실색했다.
본격적으로 경기둔화가 시작된다는 보고서가 서둘러 발표됐다.
경기는 부진한 가운데 물가만 오르니 자연스레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부각됐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는 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이다.
경기가 확장 국면에 들어설 때 늘어난 소득으로 수요가 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게 일반적인데 경기가 나빠지는데도 물가가 오르니 기존의 용어로는 표현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합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물가를 잡자고 긴축을 하면 경기가 더 나빠질 테고 경기 살리자고 부양책을 펴면 물가가 더 오르게 되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당장의 지표로만 볼 때 한국 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상태에 있다.
과거 오일쇼크 때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중동 분쟁으로 유가가 급등했고 원가 부담이 높아진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렸다.
경기는 이미 하강 국면에 들어섰지만 물가가 오르면서 서민의 생활은 피폐해졌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유가상승은 지정학적 위기와 투기자본의 유입 탓이라 오래 가진 않을 것이다.
또한 수요 견인 측면의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지난 8월의 물가상승을 보더라도 주로 폭염에 따른 농축수산물 가격과 유가 상승, 공공요금 인상에 기인한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7월의 생산 관련 지표나 설비투자는 둔화됐지만 백화점 매출이나 할인매장 매출은 크게 늘었다.
6월에 만두 파동으로 소비에 영향을 받았고 9월 현대차의 NF쏘나타 출시를 앞두고 이전 모델의 자동차 생산 감소가 유발됐음을 감안하면 8월부터는 거시지표 개선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그동안의 입장에서 선회해 소득세와 특소세 감면, 내년 예산의 확대까지 진행시키고 있다.
8월 물가가 높게 나타나면서 9월의 콜금리 인하 기대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10월의 콜금리 인하 기대가 살아 있을 만큼 정책당국의 경기부양 의지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명료하다.
채권시장에는 ‘한은에 맞서지 마라’라는 격언이 있다.
당국의 콜금리 인하 결정 이전부터 외국인은 주식 매입을 지속했다.
외국인은 정책당국의 의지 표명에 부응하고 있는데 오히려 국내 투자자들이 정책당국에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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