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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web 김태동 금융통화위원회 " 제2의 IMF부른다"
[이슈 인터뷰] web 김태동 금융통화위원회 " 제2의 IMF부른다"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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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김태동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1947년생 1969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76년 국제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 국제금융팀장 1987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일리노이대 조교수 1989년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1998년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1999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2000년 한국금융학회장 2002년 현직
오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콜금리를 동결했다.
어제 채권시장에선 “박승 한국은행 총재 지시로 ‘스테그플레이션 우려가 없다’는 요지의 한은 보고서가 예정보다 하루 일찍 발표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금리 추가 인하론이 득세해 채권값이 급등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때 산 사람들은 오늘 후회했을 것이다.
시장이 한은과 금통위 움직임에 너무 민감하다.
“그런가. 그 이야기를 한 뒤 한국투자공사(KIC) 설립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얘긴지 말하고 싶다.

그럼 그 이야기부터 해달라. “금융통화위원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선 나는 현 정부의 개혁성에 굉장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나도 그 전부터 개혁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 정부의 추진력이 개혁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발휘되는 것 같다.
지난 화요일에 동북아금융허브를 구축하는 일환으로 한국투자공사 설립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것이 금리 동결보다 더 중요한 이슈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외환보유액 관리를 별도 기구에 맡기는 것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다.
세계 유일한 예가 싱가포르투자청(GIC)인데 GIC는 일반회사다.

KIC는 공사법으로 설립된다던데. “맞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포철을 만들 때도 공사로 만들려고 했지만 박태준씨 반대로 민간회사로 설립했다.
그것이 포철 발전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우리 산업을 보면 제조업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격차가 적은데 서비스업 특히 금융쪽은 격차가 크다.
외환위기 이후 아직도 풀리지 않은 골칫거리가 투자신탁회사, 자산운용산업이다.
한투증권, 대투증권은 공적자금 더 투입해야 매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주로 우리나라 안에서 채권, 주식을 운용하데도 투신산업 상황이 이렇다.
그런데 KIC는 돈을 밖으로 끌고 나가 주식, 채권,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한은의 외환보유액을 제외한 다른 돈은 해외 부동산에도 투자하겠다고 한다.
홈그라운드에서도 못했던 걸 해외에서 잘 하겠느냐. 게다가 공사는 의사결정이 느리고 경직적이다.
자산운용은 시장에서 분초를 다투는 일이다.
공사로 어떻게 그 일을 하겠나?”
투신업 경쟁력이 뒤쳐진 원인은? “낙하산 인사 때문이다.
정부 일을 하던, 시장 ABC도 모르는 사람이 사장으로 가서 그런 일(투신권 부실화)을 벌였다.

관치를 걱정하시는 것인가. “KIC의 자산운용은 결국 재정경제부가 간섭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관치 금융이 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외환위기의 가능성도 다시 수십배 높아진다.
과거에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외환위기가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은행에 대한 외환예탁이 있다.
80년대 경상수지가 흑자가 났는데 가만히 있으면 외환보유액이 많아지고 환율이 낮아지니까 정부가 환율에 개입했고 외국에서 너무 개입하는 것 아니냐 하니까 산은, 외환은행에 외환을 예탁했다.
한은이 은행의 은행인데 은행에 외환을 예탁한 것이다.
외환 예탁은 처음엔 몇십억달러로 출발했는데 8~9년 뒤엔 300억불에 달했다.
그 외환을 다시 회수하면 외환보유액으로 요긴하게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은행들이 90년대 중반 대우, 현대, 한보에 꿔줘 외환이 필요할 때 재벌들이 그 돈을 돌려주지 못했다.
다 사정이 안 좋았으니까. 80년도에 눈 속임하려다 90년대엔 숨겨둔 외환을 써보지도 못하고 외환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된지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KIC가 설립되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냐. “KIC는 한은이 17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너무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 아니냐며 수익률을 더 낼 방법이 있다고 가져가려고 한다.
외환예탁금처럼 이러다 몇 년 지나면 KIC는 외환보유액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갈 수도 있다.

KIC는 장기적으로 1천달러 운용을 목표로 한다고 들었다.
“맞다.
난 이것이 금리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수익률 추구가 문제인가? “위험자산을 많이 편입하면 운용 첫해 수익률은 높일 수 있다.
그러다 몇 년 뒤 수익률이 떨어지면 KIC는 ‘우리는 운용을 잘 하는 데 규모가 적다’며 자금을 더 끌어가려들 것이다.
KIC는 한은 외환보유액 170억달러, 정부의 외평기금 30억불으로 운용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앞으로 더 늘릴 것이다.
처음부터 2천달러로 설립하도록 법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 일단 200달러로 시작해 2천억달러로 규모를 늘리는 건 쉽다.
하지만 규모가 커졌는데 KIC가 운용을 잘 하지 못하면 국가 신용 등급에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일각에선 한은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 분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700억달러의 외환이 한은의 자산으로 되어 있는데 부채 항목에 통화안정채가 있다.
이것이 125조원이 넘는다.
현재 환율로 1100억달러 가량 된다.
통안채는 지금 연 3.5% 금리를 내고 있다.
외환을 운용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은 이보다 낮다.
금년에 한은이 적자를 내는 이유도 여기 있다.
통안채에 대해 한은 일년에 4조~5조원 정도의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1년에 늘어나는 본원통화보다 더 많다.
외환은 공짜로 가져오는 게 아니다.
사들이는 것이다.
다른 데 떼어줄 외환보유액이 있으면 통안채를 100억달러라도 줄여야 적자가 생기지 않는다.
부채도 늘리고 자산도 늘려봤자 뻥튀기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면 우리 외환보유액이 2천억달러가 되어도 충분치 않게 될 것이다.

한은은 최근 KIC에 대해 별 발언을 하지 않던데. “이건 한은 관계자로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에 나도 전체 경제를 보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다.
우리 경제 구조는 외환위기 전보다 훨씬 나빠졌다.
양극화 문제가 더 심해졌다.
외환위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란 그렇게 나쁜 것이다.
이 때 생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2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모른다.
외환위기가 왜 왔나 보고 고쳐야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평균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투신권에 경쟁력도 없는 상태에서 KIC를 설립한다는 건 기초 공사도 하지 않고 엠파이트스테이트 빌딩보다 높은 건물 짓겠다는 얘기와 같다.
관료들이 대통령을 통해 국민들을 속이는 것에 다름 없다.

국민연금도 KIC를 통해 해외투자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국민은 이쪽에 더 관심이 높을 것 같다.
“그것이 KIC 설립을 반대하는 네 번째 이유다.
한은은 예탁자가 회수를 원할 경우 회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국민연금은 그럴 근거도 마련되지 않았다.
부동산에 운용한다고 해도 운용방식 제한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일정 금액 이상 자산을 위탁한 기관의 장은 KIC 운영위원회에 민간인을 추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국민연금이 위원을 추천해봐야 열두 명 중 한 두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들을 통해 국민연금이 원하는 결정을 얻을 수 있을까.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하고 싶다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같은 해외 유수 기관에 맡기면 된다.
KIC가 그들보다 잘 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는가? 그것은 초등학생 골프선수한테 박세리보다 잘 할 수 있냐고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우리 관료집단의 힘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구성원임을 떠나 국회가 제대로 기능해 이 법안이 폐기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내 개인 의견이다.
한국은행 의견은 아니다.
국가 명운이 달린 문제라 눈치 보지 않고 얘기하겠다.

KIC 설립의 위험성이 그렇게 큰가. “대외적, 외환 측면에서 그렇다.
우리가 경제성장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맞아 벌써 7년을 잃었다.
많게는 20~30년을 잃을 수도 있다.
작년에야 겨우 96년 수준 회복했으니까... 최근엔 소득 양극화, 빈부 격차가 10년이 지나도 회복될까 싶을 정도로 심해졌다.
잠재적 국가 리스크를 키운다는 측면에서 (KICS는) 가장 큰 이슈라고 생각한다.

국내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가? “아시아 금융위기 때 필리핀도, 말레이시아도 겪지 않은 외환위기를 우리가 겪은 것도 이상한데, 더 이상한 일은 함께 IMF구제금융을 받은 인도네시아, 태국도 겪지 않은 신용카드 위기를 우리만 겪었다는 것이다.
모두 다 원자폭탄급이었다.
그것은 관료들이 2000년부터 2002년 상반기까지 카드신용을 너무 풀어줘서 생긴 일이다.
옛날의 관치금융은 은행에 ‘어디다 대출해줘라’하고 지시하는 것이었다면, 이후 관치금융은 금융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쓰는 것이었다.
과거엔 금리로 산업자본을 만든다는 명목이 있었다.
외환위기 후엔 신용카드의 외상구매력을 인위적으로 사용해 시장을 띄웠다.
이것이 관치금융이다.
덕분에 당시 소비가 늘었지만 2002년 4사분기부터 올해 3사분기까지 소비 침체를 겪어야 했다.
메릴린치증권은 우리나라 신용카드 위기가 70년대 후반 석유위기보다 더 심각하고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당연히 누가 잘못했는지 평가하고 처벌해야 한다.
은행 구조조정은 잘 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는가? “우리는 태국, 인도네시아보다 강한 관료조직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엔 우리의 행정고시처럼 강력한 게 없다.
보통 대학졸업해 능력 있으면 관료를 한다.
우리나라엔 행정고시가 있어서 관료주의가 온존한다.
특히 금융정책을 하는 곳에서 관치를 하는 게 문제다.
금융정책은 시장을 아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해야 하는데 시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다가 신용위기를 일으켰다.
금융의 보스는 시장이지, 대통령이나 장관이 보스가 아니다.
신용카드 정책을 썼을 때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제대로 봤다면 2001년 상반기에 규제정책을 썼을 것이다.
그때 이미 금감위가 문제를 인식했다.
그런데 (신용카드 문제에 대해) 브레이크를 밟는 데에 1년반이 걸렸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많이 양산되고 지난해 1분기부터는 소비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됐다.

정상화에 얼마나 걸릴까. “나도 궁금하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조금 문제가 회복됐다 싶으면 다시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20~30대에 신용불량자가 되면 일생 동안 회복이 어렵다.
몇백만명이 일생을 그것 갚느라 고생해야 한다.
1천만원, 2천만원쯤 쓰는 건 잠깐이지만 갚는 덴 10년, 20년 걸릴 수 있다.
그것이 결국 빈부격차를 일으키고 다음에 경제정책을 쓸 때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금감원 부원장 한 명에 대해서만 약간의 책임을 묻다니, 외국에서 볼 땐 한국은 공무원 천국으로 보일 것이다.
대기업 사장이 잘 못하면 머슴인 계열사 사장이 감옥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건 대기업의 경영실책보다 더 무거운 책임이다.
금융감독을 잘못하면 통화정책에도 영향이 온다.
지난해 한은이 25bp씩 두 번 내렸지만 경기 확장 효과는 적었다.
그보다는 금감위, 금감원이 LTV를 낮추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줄이고 소액다중 연체자 신용정보를 은행연합회에 집중시킨 것이 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해 아직까지 그 여파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 영향을 주고 있다.
금통위 통화정책보다 금감위, 금감원의 타이밍, 방향 잘못된 감독정책으로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료주의가 한국경제 위기의 뿌리라는 뜻인가. “내가 공적 위치에 있어서 시장에 부담 줄까봐 말하지 못하지 못했지만, 문제는 경기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에 있다.
경제 위기론엔 두 가지가 있다.
일부 언론이 말하는 경기 측면의 위기, 그리고 구조적 위기다.
구조적 위기엔 다시 정책생산 구조의 위기, 정책 집행 구조의 위기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책생산 구조가 잘못돼 외환위기, 신용위기가 왔다.
관료들이 생산하는 정책생산구조가 온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구조적 위기를 계속 떠앉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를 경기 측면에서 보면 지난해부터 올해는 경제위기가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아니라면 불경기, 혹은 경기 후퇴다.
그런데 자꾸 일부 언론이 경제 위기라고 밀한다.
문제는 경기 위기가 아니다.
구조적인 약점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연하게 정책 대응을 해야 하는데 시장 파악 노력을 게을리하는 관료집단에 의해 정책생산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정책실패가 계속 되면 대통령 말의 신뢰가 떨어진다.
(관료주의는) 결국 정권 차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양찬식 부원장이 금감위 부위원장이 되었다.
금감위원장, 부위원장에 다 재경부 출신이 앉았다.
국회 재경위, 청와대에도 재정경제부 출신이 많다.
시장에선 청와대가 모피아(재경부의 영어약자 ‘MOFE’와 마피아의 약자)로 둘러싸였다는 말까지 나돈다.
“청와대에서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예를 그렇게 드니 내가 할 말이 없다.

감독정책 실패가 한은 통화정책 집행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했다.
시장이 한은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원인도 여기에 있는 것일까?
“비효율적인 감독기구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차단하고 감쇄하는 작용을 한다.
어느 나라 중앙은행이든 물가 다음으로 경기 신경 써야 하는데 한은이 경기에 신경 써서 올리려고 했더니 금융감독기구가 경기를 하강시키는 정책을 써서 경기 부양 효과를 감쇄시켰다.
물론 그것을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감독기구가 신용카드 문제에 대해 2002년에서야 뒤늦게 대응해 그런 일이 벌어졌다.
금감위는 2001년 경기가 나빠서 조치를 할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고 있지만 감독기구의 첫 번째 의무는 금융사 감독에 있지 않은가. 거긴 감독하라고 만든 곳이지 경제 걱정하라고 만든 곳이 아니다.

당시 금감위 실무자는 재경부까지 찾아가 규제를 주장했다던데... “실무자는 그랬을 것이다.
윗선은 모르겠다.
금융감독기구는 2002년 하반기까지 대응을 미뤘다.
적기시정조치라는 게 뭔가. 영어로 ‘Prompt', 그러니까 ‘신속하게’란 의미다.
적기시정조치란 신속시정조치다.
감독기관이 경기에 신경 쓰다 보니 신속시정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금감위, 금감원이 한은처럼 민간조직이 되어야 한다.
금통위처럼 금감위도 금감원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안 그러면 제2, 제3의 신용위기 나타날 수도 있다.
일본식 부동산 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도 없던 위기기 일어났는데도 처벌이 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간다는 건 우리나라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취약한가 보여주는 한심한 사례다.
관료들은 LG카드 부도 때 경쟁사 보고 경쟁사를 지원하라고 했다.
은행도 카드 업무를 보니 LG카드의 경쟁사 아닌가. 외환위기 때 대우가 무너질 때 대우 경쟁사한테 지원하라고 한 적이 없다.
전두환, 박정희 시대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

관료들은 시장 유지를 위한 일이었다고 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걸 강요하는 힘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것이다.
그 힘은 외환위기 전보다 강화된 관료들의 힘이었다.
관료들이 시장경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팔을 비틀고 있다.
그런 관료들의 힘에서 KIC 설립안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이다.
거기서 10년을 잃어버리는 위기(외환위기)가 나왔고 또 3년을 잃어버리는 위기(신용위기) 나왔다.
다음 위기가 걱정된다.

관료주의는 뿌리가 깊다.
“그래서 제대로 된 개혁을 해야 한다.
정책 생산이 잘못되었을 때는 생산자가 책임지고 물러나게 해야 한다.
청와대가 관료도 잘못하면 퇴출하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어야 관료도 시장을 무시하지 못한다.
시장을 무시하면 실패하는 정책이 나오게 되고 정책에 실패하면 인사에 불리하게 되어야 관료 문화가 개선된다.

금통위 통화정책이 경제에 잘 안 먹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환율 정책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민감한 문제다.
원론적 답변밖에 할 수 없겠다.
경제정책엔 틴 버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네덜란드 학자의 이론인데 내용은 간단하다.
정책 목표가 세가지가 있다면 세가지 이상의 독립적 정책 수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우리가 잘하는 양궁에 비유할 수 있다.
과녁이 세 개라면 제 아무리 명궁이라 해도 화살이 세 개 있어야 맞출 수 있다.
한은이 작년 말에 부동산을 안정시키면서 경기를 부양시켜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금리를 높이면 부동산 안정엔 도움 주겠지만 경기엔 나쁘게 작용하고 금리 낮추면 그 반대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은이 가진 정책 수단은 콜금리 하나다.
하나를 가지고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하라고 하면 안 된다.
금년 들어 물가가 올라가고 내수 경기가 더 나빠졌다.
물가 중에서도 교역재값이 더 많이 올라가고 비교역재값은 덜 올라갔다.
그럴 때 만약 시장이 원하는 환율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대로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
그건 정책 당국자로선 행복한 경우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금년에 그런 경우였다.
내수는 좋지 않아도 수출은 최대 호황이었다.
자연스럽게 경상수지가 많아져 환율이 떨어지면 수입재 가격도 떨어지고 물가도 떨어진다.
그러면 내수가 자극되고 수출과 내수의 차이 좁히겠다는 목표는 가만히 있어도 달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이 수출내수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 원인이라고 보는 것인가? “외환당국은 첫 번째가 재경부다.
한은은 협의하는 기능밖에 없다.
여하간 외환보유액이 증가한 속도를 보라. 갑작스런 증가는 개입에 의해 되는 것이지 저절로 되는 것은 없으니까.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어도 환율은 50원 정도 더 떨어져 1100원선을 유지했을 것이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환율 하락을 방어해 늘어난 것으로 예상되는 수출 규모는 20~30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수출실적 연간 2천억달러가 넘는데 그중 1~2% 정도 더 늘리려고 그렇게 개입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한쪽에선 금융감독기구의 뒤늦은 긴축 정책으로 소비가 죽고 또 한쪽에선 환율 개입으로 물가가 올라가니까 내수 회복이 늦어졌고 기계를 수입해 투자하는 데에 지장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콜금리 하나로 정책 쓰는 데에 많은 지장이 생겼다.

금리결정시스템은 합리적이라고 보는가? “한은 금통위는 민간조직화 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정책 독립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 비교해선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전문성 측면, 시장에 시그널을 보내고 시장의 정보를 즉각즉각 소화해내고 진단하는 측면에서 개선할 점이 있다.
남의 우물이 깊은 것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두레박 끈이 짧은 것부터 탓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앙은행만 민간조직화되고 금융정책, 금융감독권이 관료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통화정책에도 한계가 지워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전처럼 압력성 전화가 오는 일은 없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런 일은 시장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한달에 두 번째 목요일에 회의하는데 그 전날 3시간 정도 정책기획국 보고를 받는다.
5시간 동안 회의를 해서 마지막 30분 정도 남겨놓고 그 달 금리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우리 금통위원들 자신도 그 달의 정책금리가 어떻게 결정될지 모른다.
문안도 그 즉석에서 결정이 된다.
사전에 어떤 외부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저금리 때문에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화폐 수요 함수가 금리 변동에 아주 민감해서 화폐 공급량을 아무리 많이 늘리더라도 금리가 하락하지 않는 그런 상태를 유동성 함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통화량을 증가시켜도 금리가 변동하지 않으니까 투자나 소비에 영행을 주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금리 자체가 바로 대출금리와 연결되어 있어 콜금리를 내리면 1, 5년짜리 채권 금리가 그날로 조금씩 내려가고 한달 지나면 콜금리 인하 목표보다 더 내려가기도 한다.
유동성 함정은 걱정할 필요 없다.

일부 언론에서 그런 우려를 많이 내놓는다.
“근거 없는 비관론이 근거 없는 낙관론보다 더 나쁘다.
재작년 대통령 선거가 있는 분기에 금감위, 금감원이 신용을 위축하는 조치를 했는데도 분기 성장률이 7.5%를 기록했다.
OECD국가 중 가장 높았다.
2002년 전체 성장률은 7%였다.
그런데 그때 역시 일부 언론은 경제 위기론을 말했다.
신문 매체의 영향을 대중이 많이 받는다.
언론이 근거 없는 비관론의 매개가 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 경제의 위기 요인이다.
근거 있는 낙관론이 자리 잡지 못하고 근거 없는 사회적 비관론이 자리잡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2만달러로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관료주의와 왜곡언론이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Economy21이 그들에 비하면 계란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라도 쳐야 한다.
바위가 보기 싫게라도 보이게 되면 사회가 그 문제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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