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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 금요일 저녁에 떠나는 5만원 2박3일
[책과삶] 금요일 저녁에 떠나는 5만원 2박3일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4.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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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로 기록한 정직한 여행 보고서

한창 날이 서 있던 때가 있었다.
혈기왕성한 시절이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의견을 쏟아냈다.
결국 남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직장도 제 발로 박차고 나왔다.
이른바 ‘언론 바로잡기’를 위한 시민활동에도 발을 들였다.
요동 치는 삶의 연속이었다.


<당신 기자 맞아?>라는 도발적인 책 제목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오동명’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1999년까지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던 그의 삶은, 중앙일보가 사주 세무비리로 국세청의 조사를 받으면서 뒤바뀌기 시작한다.
당시 중앙일보가 세무 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정부와 전면전을 벌일 때, 그는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라는 제목으로 회사의 자성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사내에 붙이고 중앙일보를 떠났다.
나름대로 옳다고 믿은 바를 행동에 옮긴 것이다.
그 뒤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당신 기자 맞아?>,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바늘구멍 사진기> 등의 책을 썼다.


그런 오동명 작가가 최근 새 책을 냈다.
골치 아픈 경제 경영서도, 목청을 돋우는 주장을 담은 것도 아니다.
<금요일 저녁에 떠나는 5만원 2박3일>은 오동명 작가의 본업인 사진과 담백한 글이 어우러진 여행서적이다.


이 책은 글쓴이를 그대로 빼닮았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지 못할 바에야 사진기자를 그만두겠다”던 신념처럼, 이 책도 튼튼한 두 다리로 전국을 누비면서 보고 들었던 정보들을 정직하게 담았다.
현지에서 얻은 정보와 경비 등을 꼼꼼히 계산해 수록한 ‘국내 최초의 경제여행서’다.


‘국내 최초의 경제여행서’라고 하는데.
‘경제적인 여행’이란 컨셉트인데,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다.
내 돈 들여 여행을 하다 보니, 경비를 줄이면서 취재하려고 노력한 것이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우리 땅 자체가 경제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이다.
책을 준비하면서 곳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 좁은 땅에 웬만한 건 다 있더라. 예를 들어 산성만 해도 300여개나 된다.
규모는 작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여행지다.


다른 여행서적들과 다른 점이 있나.
우선, 예산을 1인당 5만원에 맞춰 지출 경비를 꼼꼼하게 계산했다.
이건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쓴 돈이니 거의 정확하다.
교통비는 제외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서 출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행서적이란 게 당장 갈 곳이 있어서 살 때도 있지만, 집에 놔두고 있다 나중에 여행지를 찾아갈 때도 많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책에서 본 내용이랑 많이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문제를 보충하기 위해 현지인 인터뷰와 전화번호를 넣었다.
떠나기 전에 미리 전화해서 현지 정보를 물어보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좀 더 싸고 유용하게 여행할 수 있는 팁도 넣었다.
이를테면 해당 여행지에서 관공서 문화관광과 같은 데를 먼저 들르는 식이다.
요즘 관공서는 현지 안내도 친절히 해주고 관련 책자도 덤으로 준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들 얻는데, 현지에 가면 다른 경우가 많다.
세밀함에서 현지 관공서 정보를 따라가지 못한다.
또 본업이 사진작가라, 여행지별로 적합한 촬영 기법도 넣었다.



힘들었던 점은.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취재하는 게 힘들었다.
지역마다 사진이 좋은 때가 있다.
이곳에서 얼마를 기다리면 좋은 사진이 나오겠구나 싶은데,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 난감하다.
한 군데를 여러 번 갔는데도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적도 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차도 샀는데, 운전이 서툴러 아내가 계속 운전대를 잡았다.
덕분에 여행지의 느낌이나 음식맛 등을 독자 입장에서 평가하는 역할을 해줬다.
정직한 정보를 주기 위해 남들이 좋다는 곳도 직접 찾아가 확인했다.
화양온천의 경우 5번 정도 찾아가 목욕을 하면서, 매번 같은 느낌을 드는지도 확인했다.
그런 식으로 믿을 만한 곳만 골라 인터뷰로 실었다.


책 속 사진을 모두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고 들었다.

돈이 없어 필름값을 아껴야 했다(웃음). 책을 쓰기 위해 400만화소의 디카를 40여만원 들여 샀다.
요즘 나오는 디카는 접사부터 망원까지 다 된다.
기능이 정말 풍부하다.
그렇다고 필름 카메라보다 사진 품질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1~2년 걸려 필름 카메라로 습득했던 지식들이 디카로 10분 만에 되더라. 대형 작품사진을 찍지 않는 이상, 굳이 값비싼 장비를 살 필요가 없다.
결국 중요한 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감각이다.


중앙일보를 나온 뒤 바뀐 게 있다면.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는 걸 우선 꼽겠다.
신문사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월급을 많이 줘 안주하기도 쉬웠다.
그런데 프리랜서로 뛰면서, 먹고 살려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되더라. 월급을 받을 땐 사진집을 낸다든지 하는 일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문사 그만두니 발상의 전환이 저절로 됐다.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물론, 생활은 어려웠다.
저축한 것도 다 까먹었다.
(웃음)

요즘 관심 있는 주제가 있나.
남들은 촌스럽다 할지 모르지만, 있는 그대로를 담는 걸 좋아한다.
자연은 있는 모습 그대로다.
특히 요즘엔 달에 관심이 많다.
달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야 아름답다.
구름이 얼마나 깔려 있는지, 시간대가 언제인지, 주변 인공 구조물이 어떻게 배치돼 있는지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서울의 골목도 요즘 자주 찍는다.
골목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골목을 나와 중심지로 간다.
그리고 저녁에는 골목으로 다시 돌아온다.
상징성이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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