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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뚜앙떼리요르] 민족 이상의 존재, 민족 이하의 존재
[푸뚜앙떼리요르] 민족 이상의 존재, 민족 이하의 존재
  • 신현준/ 문화평론가
  • 승인 2004.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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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나설같은‘민족의명절’때의경험은일상과는또다른면이있다.
이런연휴의미덕이있다면,그리친하게지내지못하던친척들과이런저런이야기를나누다가어느덧자기의삶을상대화할수있다는점일것이다.
즉,현재자기가살아가는방식과상이한방식의삶을엿보는일은자기중심적삶에대해성찰할기회를제공해준다.
한국인들대부분이자기삶에대한만족도가그리높지않다는여론조사결과를염두에둔다면,다른사람이살아가는방식도그리만족스러운것은아니라는위안을얻게된다.
그래서앞으로는아득바득살지말고허허실실지내자는개똥철학을다듬게된다.


그런데연휴가끝나는시점이되면이런마음이슬슬사라지는것을느끼게된다.
내가지금글을쓰고있는시점,그러니까출근하기전날어둠이내릴때쯤이면이유모를강박관념이엄습하여신체를옥죄기시작한다.
며칠동안퍼져누워서하릴없이TV나쳐다보던자세는어느덧단정하게변해있고,거들떠보지도않던내일이후의업무도구들이눈에퍼뜩들어온다.
오후8시가지나고9시가되면내일의업무를위해잠자리에들준비를하게되고,시계가10시를넘기면‘빨리잠자리에들어야지’라는다짐을하게된다.
말하자면자기삶을절대화하는태세에돌입하게되는것이고,하루전에했던생각들은벌써저만치달아나앞으로몇개월동안은머리에떠오르지않게될것이다.


다들알고있다.
이러는것이더나은상태로올라서기위해서가아니라더나쁜상태로떨어지기두려워서그러는것임을.어떤한국인소설가의말을인용하면‘밥벌이의괴로움’이고,어떤외국인사상가의말을인용하면‘생권력’(biopovoir)의작동일것이다.
두말을종합한다면,‘먹고살게해주는것으로감지덕지하라는눈에보이지않는권력에대해,괴롭더라도어쩔수없이복종하는것’이우리네삶이다.
바꾸어말하면,‘먹고살게해주는권력을거부하는사람은,먹고살권리를박탈당해도싸다’는것이민족의합의라는말일것이다.


이때문득추석연휴때가되어도잘모습을드러내지않는친척들의얼굴이떠오른다.
내친인척의면면에대한이야기는지나치게사적인것이라서여기에늘어놓는것은어울리지않을것이다.
그저평소에잘만나지못했던친인척들가운데연휴가되어도보기힘든사람들에게는어떤공통점이있었다는점만을밝히고자한다.
그들은크게보아정반대의부류에속했지만무언가를초월했다는점에서는공통점이있었다.
한부류는그까짓추석연휴에모습을굳이드러내지않아도될정도로‘잘나가는’존재이고,다른한부류는추석연휴에모습을드러내보았자사람들로부터좋은소리를듣지못할존재다.
즉,두부류모두먹고살기로부터‘초연해있다’는공통점이있다.


이들이‘민족의명절’로부터초연해한다면민족이상의존재이거나,민족이하의존재이기때문일것이다.
먼저전자의경우.이번추석연휴에외국으로여행을떠난사람이10만명에달하고,연중최고라는여행비에도불구하고좌석이일찌감치매진되고70여편의특별기까지편성했다니민족을초월한존재(코스모폴리탄?)들이꽤많은모양이다.
이들가운데이중국적자가많은것은안봐도비디오이니민족이상의존재라는나의표현이과장은아닐것이다.
낯선외국에서지내는차례상에찾아오는조상도그렇게불쾌해하지는않을것이다.
민족의구성원이되어서고향땅을찾는고만고만한후손보다민족이상의존재가되어서국경을넘나들면서남들이누리지못하는삶을만끽하는후손을더자랑스러워할것이다.
그런사람들의조상이라면분명히그럴것이다.


후자의경우는?이들의이야기는가슴만아프고기분만우울하니이번에는생략하고싶지만,불현듯젊은시절‘민족의명절’이싫어서연휴만되면집을나와도심의거리를배회했던나의과거가떠오른다.
아마그때나는‘민족이하의존재’로살아가기로작정했던것같다.
하지만용빼는재주가없는지시간이흐른뒤나역시민족의명절을싫어하지않는존재로변해버렸다.
자동차를끌고꾸역꾸역막힌도로를거북이처럼달리면서내일의업무를걱정하는존재로.그리고‘자동차라도끌게해주는권력’에감지덕지하는비루한존재로.

신현준/문화평론가.1962년생.90년대중반음악비평동인alt.virus를결성해활동하다지금은여러매체에시평,음악평을기고하며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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