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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코스닥 등록을 향해 나는 부나방
[머니] 코스닥 등록을 향해 나는 부나방
  • 이원재
  • 승인 2000.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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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관 직원들이 말하는 벤처기업 로비백태...희망의 벤처가 죽는다 지난 2일 밤 서울 여의도 한 증권사 건물 지하 카페. 말쑥한 양복을 입은 4명의 남자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벤처, 코스닥, 룸살롱, 로비….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섞여 나왔다.
호기심을 누르기 힘들었다.
몰래 귀를 기울이니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한달에 4000만원 매상 올리는 룸살롱 고객 한 남자가 먼저 입을 뗐다.
“강남의 어느 룸살롱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어느 벤처기업 사장에 대해 한창 얘기하던 중이었죠. 그때 갑자기 새끼마담이 끼여들더군요. ‘그 아저씨요, 우리 가게에 매달 4천만원 매상을 올려주는 우량고객이에요.’ 순간 멍해집디다.
그 기업은 얼마 뒤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겠다는 벤처인데, 포장을 잘 못해서 그렇지 기술력만은 세계에서 최고라고 자랑하길래 철석같이 믿고 있었죠. 그런데 한달에 한 룸살롱에 4천만원을 쏟아붓는다고? 이런 식으로 돈을 쓰는 기업이라면, 코스닥에서 조달한 자금을 몽땅 룸살롱에다 쏟아붓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집으로 돌아가 그 기업 관련자료를 다시 한번 들춰봤습니다만, 외형상 큰 문제는 없더군요. 하기야,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동안 벤처기업인이라는 사람들이 보였던 태도로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더라구요.” 고위공직자 “밥 먹자” 나가 보니 벤처사장 동행 마주앉아 있던 남자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에이! 그 정도는 약과죠. 벤처기업의 코스닥 진입과 관련된 서류를 검토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고위공직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죠. 제 사무실 근처로 몸소 찾아오겠다더군요. 참 신기했습니다.
보통 때라면 얼굴뵙기조차 어려운 높은 어른이 왜 나 같은 말단직원을 찾아올까? 나더러 오라고 하면 바로 달려갈 텐데.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일단 나갔습니다.
처음 만난 그 공직자 옆에는 다른 사람이 한명 앉아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코스닥등록 심사를 청구해둔 벤처기업 사장이더군요. 둘이 잘 아는 사이라나요? 미리 알았더라면 나가지 않았을 텐데. 아니, 사실 그 어른이 부르셨으니 나가지 않을 도리는 없었겠죠. 잘 아시다시피 이유를 막론하고 코스닥등록을 앞둔 기업체 사람들은 일절 만나지 않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제 담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제든 업무상 연관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는 저로서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녁을 먹자며 근처 일식집으로 몰고갑디다.
분위기는 썰렁했죠. 생전 처음 보는 웃분과, 업무상 내게 뭔가 청탁하고 싶어하는 벤처기업인에게 무슨 얘기를 건네겠습니까? 다행히 일 얘기는 그 자리에서는 꺼내지 않더라구요. 말을 꺼냈다면 눈 딱감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그 썰렁한 분위기 속에 1차, 2차를 거쳐 결국 룸살롱까지 갔어요. 즐거웠느냐구요? 천만의 말씀. 가시방석이었죠.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벤처기업 관련 업무가 제게 떨어졌습니다.
‘고위공직자와 룸살롱을 동시에 보여줬다’는 자신감(?)에서였을까요? 사장의 태도가 가관이었습니다.
이쪽에서 필요한 서류를 요구할 때마다 그 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이유를 캐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서류까지 보여줘야 하느냐’는 투였죠. 정상적인 일처리가 어려울 정도였다구요. 물론 모든 과정에서 원칙을 지켜냈지만, 그 기업의 태도는 언제 떠올려봐도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얘기 다 됐으니 서류를 넘기기만 해라” 이번엔 옆에 있던 남자가 끼여들었다.
“그 정도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끈적거리는데요. 우리 부서는 정말로 코스닥등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실무부서랍니다.
하루는 날을 잡아 부서원 전체가 회식을 했죠. 저녁을 먹고는 ‘오랜만에 회포 한번 풀어보자’며 다들 강남의 한 룸살롱으로 몰려갔어요. 그래서 한참 ‘음주가무’중인데 누군가 노크를 하더라구요.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웨이터였습니다.
‘옆방 손님들이 합석을 원하시는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누군데요?’ ‘글쎄요, 무슨 벤처기업이라는데요?’ 알고 보니, 코스닥등록을 원하는 벤처기업 임직원 몇이 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우리 기관 사람들이 와서 술을 마시고 있다니까, 그게 누군지 앞뒤 가리지도 않고 무조건 합석해서 술을 사겠다고 나온 겁니다.
말하자면 헛다리를 짚은 셈이죠. 얼마나 징그럽던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안경쓴 남자가 못 참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더 황당한 기업 얘기를 해드릴까요? 또다른 벤처기업이었어요. 서류가 부족하니 더 갖춰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윗선에서 이미 얘기가 끝났으니, 말단직원이 가타부타 얘기 말고 서류를 올리기만 하라’는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물론 그 기업의 착각이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윗선’에 너무 열심히 달라붙어 우겨대니까 귀찮아진 윗선이 ‘다 잘될 테니 가서 기다리기만 하라’고 말한 것을 곧이듣고 그런 태도를 보였던 거더라구요. 결국 ‘로비도 아닌 로비’만 믿고 기고만장하던 그 기업은 실패했죠. 저는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언론사 간부들까지 ‘잘봐달라’ 한번 입을 여니 말이 끊이지 않았다.
남자는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언론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니 귀가 더욱 솔깃해졌다.
“사실 아무리 어이없는 작태를 펼치는 벤처기업인들을 보더라도 우리는 꿋꿋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뭐가 아쉽습니까?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그만이죠. 하지만 정말 두려운 게 뭔지 아십니까? 그건 언론이에요. 언론사 간부가 ‘이 기업은 좋은 기업이 아니냐’고 넌지시 말을 전해오면 정말 떨릴 지경입니다.
물론 언론인이 벤처기업에 투자한 것을 탓할 수야 없지요. 그러나 그야말로 투자에 그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언론사 간부가 코스닥으로 가기를 원하는 특정 기업에 호의를 드러냈을 때 파장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너무 자주 무너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언론과 관련있는 기업이 코스닥에 가는 데 실패했을 때, 처리과정이 불공정하지 않느냐는 투의 기사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스스로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다른 벤처기업들이 우리 기관을 바라볼 불신의 눈길을 생각하면 견디기 어려운 일이죠. 그런 일이 계속되면 모든 게 엉망이 되는 겁니다.
옥석을 가리겠다고 나섰다간 여론의 질타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데, 누가 용감하게 원칙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처음에 말문을 연 남자가 사람들을 다독거리듯이 말했다.
괜한 얘기를 꺼내 분위기를 망치게 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묵직했다.
딱히 누구를 향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모두가 진심으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정말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라고 봅니다.
코스닥시장은 물론 벤처기업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자금조달 기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단계 성장을 위한 기회로서가 아니라,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려 ‘머니게임’을 시작할 기회로 인식하면서 잘못된 행태가 불거져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여력을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을 점진적으로 키우는 데 사용하면 쉽게 일류기업이 될 수 있으련만…. 물론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도록 제도적인 뒷받침도 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아무리 공모가가 높아도 공모만 했다 하면 상한가 행진을 벌이는 기현상이 사라지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대주주 보호예수지분을 줄이는 등 유통물량이 많아지도록 해서 증권사나 기관투자가들의 기업가치평가가 효력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기업이 욕심을 부려 공모가를 지나치게 높여 놓으면 공모 뒤 첫날 하한가를 맞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증권사나 기관투자가들 사이에 적정주가를 놓고 논쟁도 벌어지고 해야지, 이건 무조건 상한가 행진이니…. ‘조용한 다수’ 모독 말아야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이야기는 수많은 벤처기업 가운데 극히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믿습니다.
사실 코스닥기업이나 코스닥 진출 직전의 기업 가운데 내실이 있으면서도 그 내실을 아낄 줄 아는 기업들이 ‘조용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요? 몇몇 몰지각한 기업들이 조용한 다수를 모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벤처기업은 한국경제의 희망 아닌가요? 그 가장 튼튼한 토양인 코스닥을 지켜야죠.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한 얘기들이, 가난한 말단 샐러리맨들이 술안주삼아 내뱉은 푸념으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얘깁니다.
코스닥등록 심사 뭐가 문제지?
최근 코스닥등록심사에서 탈락하는 기업이 늘면서 이를 둘러싸고 잡음이 잇따랐다.
지난 4월 코스닥위원회의 코스닥등록 예비심사에서 나란히 보류 및 재심의판정을 받았던 쓰리알과 옥션의 경우, 주주들이 강력하게 반발해 일부 코스닥위원에 대한 인신공격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결국 두 기업은 재심사 끝에 코스닥등록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 코스닥등록 심사기준에 대한 벤처기업들의 불만이다.
제기하고 나서는 쪽은 주로 인터넷 및 첨단기술 벤처기업들이다.
이들은 코스닥등록 심사기준이 아직도 전통산업쪽 기준에 맞춰져 있으므로 인터넷·첨단기술 벤처기업에 맞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코스닥등록 예비심사 통과여부를 결정하는 코스닥위원회에 첨단 인터넷분야 관련 인사가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주장은 ‘브랜드 가치’를 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벤처기업들은 “인터넷산업의 속성상 사업초기에 마케팅비용을 대거 들이게 되는데, 현재 코스닥 등록심사과정에서는 이를 비용으로만 계산해 심사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인터넷 벤처기업들의 재무구조는 부실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브랜드 가치를 전통산업이 설비투자로 건설한 공장과 마찬가지로 대우하면 대부분 흑자기업이 되리라는 것이다.
인터넷 경매업체 옥션의 배동철 이사는 “코스닥 심사과정에서 옥션이 지난해 39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등록보류판정을 받았었는데, 현재 2천억원에 이르는 ‘옥션’브랜드 가치를 자산으로 인정한다면 오히려 흑자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또 코스닥위원회의 구성도 논란거리다.
현재 코스닥위원회는 재정경제부 국장출신인 정의동 위원장 및 증권업협회, 코스닥증권,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당연직 위원 1명씩과, 학계 법률계 등록법인 벤처 회계 연구소 기관투자가쪽에서 대표성을 띤 1명씩의 위원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인터넷분야 벤처기업들은 여기에 대해 ‘인터넷산업에 깊은 이해를 가졌거나 직접적으로 관련업무를 수행해본 위원이 절반 이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조업쪽 벤처기업들의 불만은 다른쪽에 있다.
최근 코스닥등록에 실패한 첨단장비업체 ㄱ사 관계자는 “우리 기업은 일부 인터넷 서비스업체들과는 달리 당장 자금을 조달해 양산에 들어가 수출을 해내야 할 형편인데 매우 곤란해졌다”며 “서류만으로 심사하지 않고 생산현장에 실사를 나왔다면 분명히 심사에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위원회쪽은 이런 불만을 일축한다.
정의동 코스닥위원장은 “기업체의 약점을 가려주기 위해 구체적인 심사탈락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 내용이 알려진다면 다들 심사결과를 납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장부의 투명성 문제 등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수준낮은 문제를 가진 벤처기업이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브랜드 가치를 자산으로 환산하는 문제도 객관적으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어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위원회쪽의 입장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코스닥위원회쪽 입장을 이해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팽팽하다.
대우증권 박광준 종합금융4부장은 “최근 기각회사가 늘어난 것은 이전보다 코스닥등록 청구기업의 업력이 짧아지고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일 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한화증권 리서치센터 코스닥 담당 정인기 연구원은 “인터넷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자산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산업패러다임에 맞춰볼 때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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