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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햇빛 쏟아지다!
남북경협 햇빛 쏟아지다!
  • 김보근/한겨레통일문화재단
  • 승인 2004.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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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학계·NGO 망라, 2005년 전망 설문조사…92% “2004년보다 나아질 것”


설문 참여자들 중 절대다수는 2005년 남북경협을 ‘파란불’로 내다봤다.
응답자 중 총 92%에 해당하는 23명이 2005년 남북경협이 2004년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전체의 24%에 해당하는 6명은 2004년에 비해 “매우 나아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응답 비율은 남북경협 참가 기업이나 학자, 대북 지원 NGO를 망라해 모두가 2005년 남북경협에 대해 기대 수준이 매우 높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응답자들이 이렇게 2005년 남북경협을 ‘파란불’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무엇보다 2004년 남북경협 실적이 크게 떨어져 더 이상 하락할 곳이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실제로 2004년의 남북경협은 2003년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04년 1~11월까지 남북교역액은 총 6억2054만달러로, 2003년 같은 기간의 6억7012만달러에 비해 7.4% 감소했다.
이 중 특히 인도적 지원 등 비거래성 교역을 뺀 상업적 거래나 위탁가공 교역 등은 총 3억1589만달러로 감소폭이 무려 16.1%에 이르렀다.
이는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오던 그간의 남북교역 확대 추세가 반전된 것으로 남북한 및 남북한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그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방증한다.
이런 낮은 경협 성적표에는 △풀리지 않는 북핵 문제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파동 △탈북자 대량 입국 사태 등 국내외적인 정치사회적 문제가 크게 관여했다.


이에 따라 남북이 모두 남북경협 후퇴를 통해 경제적·정치적 임계점에 도달했으며, 2005년에는 남북 모두 그 반전을 노리는 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남북 모두 경협 활성화 나설 동인 풍부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국장은 “북한이 2004년 하반기 문호를 닫은 탓에 평양 이외에는 다시 배급이 끊기는 등 심각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위원도 “북한이 이제까지 미국과 줄다리기를 벌였으나 이제 그것을 지속할 만한 내부적 역량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런 북한의 절박함은 곧 북한을 경협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경협에 대한 북한의 이런 태도 변화는 “대남 사업을 담당하는 창구를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에서 민경협(민족경제협력위원회)으로 단일화 및 격상”(김한신 G-한신 대표)시키고 “경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로 경협 라인을 바꾸고”(박노인 무한섬유 사장)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북한만이 아니다.
임완근 남북경제협력진흥원장은 “남한도 중소기업이 한계상황에 도달”하는 등 경협을 통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근식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또 “경협 활성화는 여타 남북관계 복원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 모두 경협 활성화에 나설 동인이 풍부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2005년이 “6·15 공동선언 5주년과 해방 60돌이라는 점도 경협에 긍정 영향을 줄 것”(유대성 Kclab 대표,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평가됐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특히 “2005년 남북민간단체들이 6·15 행사와 8·15 행사를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으로 치르기로 한 것이 남북경협에 우호적인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현곤 민화협 사무처장은 이런 남북한의 경협에 대한 기대 분위기는 “설사 미국의 의지와 다른 방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경협 활성화로 나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객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당국의 태도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남북경협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북한쪽의 태도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다’(‘매우 잘하고 있다’ 포함)는 응답이 전체의 64%로 절반을 넘었지만, ‘그저 그렇다’(20%)와 ‘잘하고 있지 않다’(16%)도 36%에 이르는 등 의견이 갈렸다.
이는 북한이 변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기존의 제도와 관행 탓에 아직 남북경협을 수행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은 탓으로 보인다.


남북한 당국의 태도에는 불합격점 줘

북한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데 대해서는 응답자들이 긍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문광승 하나비즈닷컴 사장은 “북한의 태도가 근래 상당히 달려졌음”을 지적한다.
즉 이전에는 남북이 같이 운영하는 단둥의 하나프로그램센터에 인원을 더 보충해 달라고 하면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이제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이 “사업과 돈을 만들기 위해 적극 연구하고 노력”(유대성 대표)하며 “경협 실무진으로 전면 부상한 중견 엘리트들이 매너도 있고, 지적으로 갖추어진 사람들”(김정태 안동대마방직 대표)이라는 점도 큰 변화로 읽히는 부분이다.


2004년 10월21일 평양에서 재외동포들의 투자 상담을 대규모로 진행한 조롱제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부회장은 “평양상담 뒤 상담 후기를 써달라고 해서 좋은 내용을 중심으로 써줬더니 다시 찾아와 비판할 지점은 정확히 비판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며 북한의 변화를 실감했다고 전한다.
북한이 이렇게 변한 요인으로는 2002년 7·1 조치가 많이 거론됐다.
박영복 북남교역 대표는 “북한의 단위공장별로 수익 모델을 창출해야 하는 등 북한도 경쟁체제로 들어갔다”며 “이에 따라 여러 차례 투자요청을 해오는 등 남북경협에 더욱 적극성을 띠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유완영 유니코텍 코리아 대표는 “아직도 북한은 정치적인 것에서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며 북한의 태도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유 사장은 또 “2004년 김용순 대남비서나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 사망 이후 남북경협에서 적극적 역할을 할 인물이 없다”는 점도 북한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김기창 한민족경제교류협회 회장도 북한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까지 “북한의 직접 생산자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적고, 실무 당사자들이 아니라 민경련이라는 대표들만 나와서 협상을 하는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정부도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남한 정부는 핵 문제 등 국제·정치적인 문제와 남북경협을 분리해 진행하는 ‘정경분리’의 충실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충실하다'가 25%에 불과한 반면, '아니다'가 40%로 더 높게 나타났다.
'그저 그렇다'고 답한 사람도 35%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박영복 대표는 “북한은 오히려 남한과 경제협력을 하려고 정경분리 원칙을 철지히 지키고 있다”며 이에 반해 “남한은 경제만 앞서가는 현상을 비판할 정도로 정경분리가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유대성 대표도 “현 정부는 DJ가 닦아놓은 원칙이 그나마 작용하는, 즉 현상 유지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협 활성화를 위해 한 것이 없다는 적극적인 비판도 터져 나왔다.
김정태 대표는 더 나아가 “현 정부 들어서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임완근 원장이나 김한신 대표도 “정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이외의 남북경협을 위해 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광승 대표는 “현 정부가 잘하고 있다”며 “최근 노 대통령이나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보면 대북관계에서 상당한 정도의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발언 내용에 일정 정도 북한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어 곧 북한의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설문참여자명단] 남북경협 기업(총 13명) 고용무 경평인터내셔날 대표(평양김치공장 추진), 김기창 백두산들쭉술 대표 및 한민족경제교류협회 회장(북한과 민속주 합영회사 운영), 김정태 안동대마방직 대표(평양에 삼베합영기업 추진), 김한신 G-한신 대표(평양에 유리병공장 건립 추진), 문광승 하나비즈닷컴 대표(중국 단둥에 하나프로그램센터 운영), 박노인 무한섬유 대표(북한과 섬유 임가공사업 진행), 박영복 북남교역 대표(온·오프라인 북한 쇼핑물 ‘엔케이몰’ 운영), 유대성 Kclab 대표(인터넷에 북한학 전자도서관 운영), 유완영 유니코텍 코리아 대표(남한 기업 상표의 북한 등록사업 추진), 이정 남북네트워크 대표(평양과 만화영화창작단 공동운영), 임완근 남북경제협력진흥원 원장(평양에 고려정보기술센터 건립 추진), 조경기 NEA 사장(대북 물류 전문 회사 운영), 조롱제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부회장(2004년 10월21일 평양에서 회원 165명이 참여해 무역상담) 학자(총 8명) 김근식 북한대학원 대학 연구교수,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위원, 남성욱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박경순 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 양문수 북한대학원 교수, 이영훈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과장,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북방정보팀장 대북 지원단체(총 4명) 권용찬 기아대책기구 부장, 정현곤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사무처장, 최혜경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사무차장,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국장
“경협 활성화, 규제에 발목 잡혀”
설문 응답자들은 2005년 남북경협이 활성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남한 당국과 정치권, 경협 주체들의 적극적 노력 없이 달성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응답자들은 무엇보다 남한 정부에 많은 것을 주문했다.
박영복 북남교역 대표는 정부가 남북경협에 대한 규제를 크게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현재 통일부는 186개 품목을 농민 보호 등을 이유로 규제품목으로 정하고 있다”며 “이 중 반 정도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농민 보호 명분은 이미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농산물이 무관세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설득력이 없어졌다”며 “과감한 규제 완화만이 경협을 실질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완근 원장은 이와 함께 정부가 “북한에 경제 인프라 구축작업을 더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정부가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야 기업의 리스크가 적어지고 따라서 투자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안법 폐지와 남북경협 법령 개정 등 정치권에 대한 주문도 많았다.
유대성 대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한 뒤 경협 관련 법령을 재정비하면 실질적인 효과는 6·15 공동선언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문광승 대표도 “정치가와 언론이 남북경협 정보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들 중 일부는 민족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해 남북경협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김근식 교수는 “남북 당국의 공식관계 복원이 없는 경협 활성화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며 “공식적인 관계 복원”을 경협활성화의 선결요건으로 꼽았다.
김한신 대표는 이런 관계복원을 위해 “민간경협 ‘보따리’를 선물로 평양에 특사를 보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2005년은 “남북경협의 중장기적인 그림을 그려야 할 해”라고 지적했다.
이런 중장기 비전이 없이 단기적인 경협 활성화만을 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남북경협과 관련한 새로운 아젠다를 세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순 진보정치연구소장도 “남북경협 활성화 문제는 결국 한반도 평화 정착 문제와 직결돼 있다”며 “현재의 정책환경과 조건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경협 활성화를 낙관만 할 수는 없다”고 ‘거시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또 박노인 무한섬유 대표는 이런 거시적인 것보다 경협 참가자들의 ‘믿음’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남북이 서로 힘써야 할 점은 정부가 됐든 개인이 됐든 믿음 아니냐”며 “북한에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것만 말하고 그것을 지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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