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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분식 집단소송, ‘힘겨루기’ 승자는?
과거분식 집단소송, ‘힘겨루기’ 승자는?
  • 이정환/월간<말>기자
  • 승인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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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끝에우리나라에서도새해들어증권관련집단소송제가일단시행됐다.
국회법제사법위원회는지난12월29일법안심사소위를열고집단소송제의시행을늦추거나과거분식을한시적으로유예하자는내용의증권관련집단소송법개정안을5대3으로부결했다.
이에따라2003년12월통과된증권관련집단소송제는1년의유예기간이끝나는올해1월1일부터전격시행에들어갔다.


올해1월1일부터전격시행

이제50명이상의주주가모여전체주식의0.01%,즉10만분의1이상을확보해소송을내고승소하면모든주주들이동일한손해배상을받을수있다.
지금까지는재판의결과가소송을낸당사자들에게만적용됐다.
기업의분식회계나주가조작,허위공시,내부자거래등으로인한손해가그대상이지만가장큰관심은역시분식회계다.
분식회계는기업이자산,매출,비용등을실제보다확대,또는축소하는장부왜곡행위를통칭한다.


집단소송제가도입되면그동안엄청난소송비용때문에쉽게소송을내지못했던소액주주들도손해배상을받을수있는길이열리게된다.
몇사람만모여서대표로소송을내면된다는이야기다.
대상은일단올해자산규모가2조원이상인상장등록기업부터시작해2007년이면모든기업으로확대시행된다.
지난해말기준으로자산규모2조원이상의기업은82개에이른다.


문제는앞으로저지를분식회계뿐만아니라과거에저질렀던분식회계에대해서도민·형사상책임을져야한다는데있다.
집단소송법은적용대상과관련해부칙2조에서“시행이후로최초로행하여진행위로인한손해배상청구부터적용한다”고규정하고있다.
언뜻올해부터분식회계를저지르지만않으면된다는말처럼들리지만한번분식회계는또다른분식회계를계속낳을수밖에없다는사실을감안할필요가있다.
결국과거의분식회계를모두고해성사하고재무제표를바로잡지않는이상한번이라도분식회계를저지른기업들은모두집단소송의대상이된다는이야기다.


기업들은소송남발과주가하락등을이유로집단소송법의도입을강력히반대하고있다.
2002년미국의경우집단소송을당한기업의주식시가총액이1조9천억달러(약2100조원)나줄었다는통계도이런맥락에서인용된다.
2002년기준미국에서제기된집단소송은모두224건으로전년대비31%나늘어났다.
더곤란한문제는판결이나기도전에소송에휘말렸다는뉴스만으로주가가폭락하는사태도흔하다는데있다.
손해배상금액이터무니없이많이나와아예파산신청을하는경우도있다.
미국을제외한다른나라들이집단소송제의도입을꺼리는것도이런이유에서다.


특히과거분식회계의책임을둘러싼의견대립도주목할만하다.
기업들은법시행이전의분식회계에대해면죄부를꾸준히요구하고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비롯한경제단체들은“법공포일이전에이뤄진분식회계를집단소송대상에서제외해달라”는내용의청원서를국회에접수한바있다.
홍재형열린우리당정책위의장은지난해12월27일이헌재재정경제부장관겸부총리가참석한가운데당정협의를마치고과거분식의집단소송제적용을2년유예할계획이라고발표했고대부분언론은이를그대로받아쓰기도했다.


하지만막상뚜껑을열어보니열린우리당의원들까지나서서당정협의의결정에거세게반발했다.
최재천의원등은“회계의연속성을감안할때과거의분식을눈감아준다는것은사실상모든분식을눈감아주는것과마찬가지”라고주장했다.
“2년유예를하더라도2년뒤에는결국현재와똑같은문제가생길수있다”는반박도있었다.
이날개정안은열린우리당4표와민주노동당1표,모두5표의반대표를얻어한나라당찬성표(3표)를누르고결국부결된것이다.


그럼에도이튿날인30일열린우리당과한나라당은집단소송법개정안을새해2월임시국회에서다시처리하기로합의했다고밝히고나섰다.
법사위는보도자료를내고“제한된국회일정과추가의견수렴필요성및과거분식과현재분식간의회계상구별의어려움에따른법기술적문제점으로이번임시국회에서개정안을처리하지못했다”며“국회차원에서좀더진지하게검토하겠다”고설명했다.


특히경제신문들은일제히이기사를비중있게다루고과거분식의적용을유예해야한다고촉구하고나섰다.
<한국경제>는“집단소송강행유감이다”라는칼럼을통해“회계의특성상한번이뤄진분식은두고두고영향을미칠수밖에없다”면서“이런악순환고리를끊을기회를주지않으면소송을피하기위해서라도기업들이지속적으로분식을이어갈수밖에없다”고주장했다.
<동아일보>도“연초부터집단소송회오리가불면기업활동은더욱위축되고경제회복도늦어질것”이라며개정안을즉시입법해야한다고주장했다.


금융감독원조사에따르면최근5년동안82개집단소송제대상기업가운데집단소송대상공시서류의허위기재등과관련해제재를받은회사는모두18개사에이르는것으로나타났다.
또이들기업들의정기보고서오류정정비율도24.6%로매우높게나타났다.
수시공시의경우도6.9%에이르렀다.
공시감독국최규윤부국장은“미국에서도2003년집단소송사유의89%가사업보고서허위기재에서비롯했다”고지적했다.
최부국장은“공시와관련한기업의내부통제시스템의개선이시급한상황”이라며“내부공시시스템을조기구축하는등집단소송피소가능성을줄이는노력이필요하다”고강조했다.


기업엄살,정치권편들기에백지화우려도

집단소송법개정안을둘러싼잡음은노무현정부개혁정책의혼선을보여주는대표적인사례다.
개정안이일단부결되기는했지만기업의엄살과정치권의기업편들기바람에휩쓸려집단소송제는사실상백지화될우려마저있다.
핵심은과거의분식회계든,앞으로저지를분식회계든합리적이고투명한회계관행이자리잡아야한다는데있다.
설령개정안이통과돼2년을유예하더라도과거의분식회계는언젠가털고가야할짐이다.
집단소송제라는골칫덩이를맞닥뜨린기업들의고민이여기에있다.






주주 자본주의와 집단소송제의 상관관계
최근 한국 경제의 위기 원인 가운데 일정 부분은 주주 자본주의의 확산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사실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 중심으로 개편된 경제구조는 투자와 고용 부진을 낳았고 장기적인 성장성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가 기업의 부정에 맞서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지만 자칫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이 제도가 보호하는 소액주주는 대주주의 반대 개념이라고 보는 게 맞다.
경영권을 쥐지 못한 주주들은 회사의 미래보다는 단기적인 투자수익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는 철저하게 이들 소액주주의 피해에 초점을 맞춘다.
주주들은 기업의 미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은 10년 뒤를 내다보기보다는 1년 뒤, 짧게는 한 달이나 일주일, 또는 하루 뒤를 내다보고 주식투자에 뛰어든다.
상황에 따라서는 집단소송도 하나의 투자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일찌감치 집단소송제를 도입한 미국의 경우를 보면 이들은 투자이익을 건질 수만 있다면 회사가 문을 닫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분식회계나 기업의 부정은 분명히 뿌리 뽑아야겠지만 집단소송제가 자본의 투기적 속성과 일방적으로 결합할 때 자칫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음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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