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18 (금)
[기획시리즈]은행이 바뀌어야 경제가 산다(1) - 덩치 커진 공공의 적
[기획시리즈]은행이 바뀌어야 경제가 산다(1) - 덩치 커진 공공의 적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5.02.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싣는순서

1.프롤로그/은행의배신
2.수익을얻는곳에서투자,대출을:영미권의지역재투자법(CRA)
3.중소은행과중소기업을함께키운다:미국의중소기업육성책
4.에필로그/좌담회


공적자금받고도공공성외면…대형화후단기수익성,건전성위주사업재편

월초,'명예퇴직’이란이름의칼바람이한차례훑고지나간국민은행에서만난한직원이어렵게입을연다.
“사실,은행직원들이은행일말고는할줄아는게하나도없답니다.
어떤분은이게꿈이면좋겠다고계속되뇌시더군요.이전에은행은철밥통이라고했는데….저도처음에그래서은행을선택했고요.”이날한증권사의기업분석보고서는국민은행의구조조정이예상보다순조롭게진행되고있고자산건전성개선여지가보인다면서하반기부터수익성이개선될것이라고전망했다.


1월중순,투기자본감시센터는외환은행경영진과론스타펀드를검찰에고발했다.
사유는‘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대한법률위반’.이센터는고발장에서“외환은행경영진이직무상비밀인동아건설,대한통운관련자료를재산상이득을취득하게할목적으로대주주인론스타에제공했으며론스타펀드는외환은행경영진과공모해동아건설파산채권을매입해시세차익은물론동아건설과대한통운의경영권을불법적으로장악하려고했다”고주장했다.
고발사흘뒤론스타는동아건설파산채권입찰을포기했다.


한국회의원보좌관은정부와금융당국에동정을표한다.
“공적자금을87조원이나들여살려놓으면뭐합니까.국내은행지분65%이외국인투자자손에들어가있는데….정부가무슨정책을쓰려고해도정책수단이없습니다.
담배인삼공사나KT같은우량기업자산은거의다팔았죠,국내은행지분도가진게많지않죠,게다가요즘은행경영진이정부말을듣습니까?제가보기에도답답하겠다싶어요.”은행이외국투자자에게송금하는달러배당금은매년3,4월환율을뒤흔들만큼규모가커졌다.



관치금융에서주주들만의금융으로

요새은행에배신감을느끼는사람이한둘이아닌모양이다.
올해1월셋째주엔<부자가되려면은행을떠나라>는제목의책이교보문고경영,경제서베스트셀러5위로떠올랐다.
이책은200여쪽의분량중60쪽을은행비판에할애했다.
‘공공의적이되버린은행’,‘서민을무시하는은행의디마케팅’,‘보험까지끼워파는은행의횡포’등목차도매우자극적이다.


지은이인심영철웰시아닷컴공동대표는서문에서이렇게말한다.
“은행은이제다른금융권에비해특별하게안전하지도않고,대출을싸게받을수도없고,수익이좋은곳도아니다.
오히려지금의은행은독과점적지위를이용해고객들에게불친절한것은물론이고,고객들로부터폭리를취하고있으며,자신들만의안위를생각하고,자신들의배만불리는공룡기업에불과하다.
”나날이벌어지는예금과대출의금리차,높아지는수수료율,줄어드는대고객창구직원수와넓어지는VIP실,보험가입을조건으로대출해주는‘꺽기’의성행이그증거란다.


1997년외환위기직후에이런이야기들을들었다면많은사람들이‘이무슨배부른소리냐’며무시해버렸을것이다.
은행지분의대부분은정부와유관기관이가지고있었고,관치금융의부작용으로대출은제대로된신용분석조차없이이뤄졌고,할일없는직원들이창가자리를차지하고있었던때가불과8년여전아닌가?그런데이제와서사적자본의은행소유,더큰수익창출을위한고용조정,객관적신용평가를통한대출시스템구축,안정적수익모델마련에대해비판을퍼부어대다니?

그러나최근엔직원,소비자뿐아니라경제학자,금융당국조차은행의변신을걱정스런눈길로바라보고있다.
2000년대에접어들면서한국은행지역본부에선금융기관의단기수익성,건전성위주영업전략에대한비판적보고서들이쏟아져나왔다.
비교적최근에발간된한국은행강원본부의‘외환위기이후강원지역금융산업구조변화와시사점’이란보고서는매우충격적인분석결과를보고한다.
외환위기이후금융구조조정이지역중소기업들의자금조달처축소→실물경제위축→역내자금의역외유출→역내기업의자금조달악화→실물경제,금융의동반위축으로이어지는악순환을일으켰다는것이다.


악순환의첫고리는지역금융기관의통폐합,퇴출에서비롯됐다.
“97년외환위기이후금융구조조정기에지역밀착금융기관들이대거퇴출되고지역금융시장이은행권위주로재편되면서지역중소기업이선택할수있는자금조달처의폭이크게줄어들었다”고이보고서는분석한다.
특히지방은행퇴출이후거래기업,소유주,지역사회와의장기적거래관계를통해축적된비공개정보,소유주의인격등정성정보에기초해대출해주는관계대출기능이약화돼신용도낮은중소기업이안정적으로자금을조달하기어려워졌다.

금융 구조조정은 금융기관에 ‘수익성 확대’라는 단어를 깊게 심었다.
보고서는 이렇게 전한다.
“시장원리가 강조되면서 예금은행이 가계대출은 확대하고 중소기업대출 만기는 줄이고 신용대출은 회피하는 등 단기수익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2004년 강원지역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강원지역 제조업체는 만기 1년 이하 단기금융기관차입금 비중이 50.7%에 달하는 반면 대기업은 21.4%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지역산업에 대한 지역금융의 선도, 조력 기능은 크게 약화됐다.
자금 배분 효율성도 떨어졌다.
보고서는 97년 말 이후 생산유발효과가 큰 제조업은 강원 지역 총 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0.8%p)했는데도 불구하고 강원 지역 제조업에 대한 예금은행 대출 비중은 감소(-2.5%p)한 반면 지역 내 총생산비중이 크게 감소(-8.6%p)한 건설업의 대출비중은 오히려 증가(+1.8%p)했다고 분석한다.
금융은 실물경제의 기반에서 큰다.
실물경제의 부진은 다시 금융 부문 성장을 발목 잡았다.
강원지역의 금융 부문은 강원지역 실물경제 위축으로 인해 함께 위축됐다.
강원지역 금융기관의 97년 이후 연 평균 여신, 수신 증가율은 각각 6.4%, 6.6%로 다른 지방 평균 여신, 수신 증가율보다 각각 5.7%p, 1.4%p 낮았다.
수신 자금을 서울 등 투자여건이 나은 다른 지역에서 운용하는 지역자금의 역외유출 현상도 심해졌다.
비은행기관의 2003년 말 기준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중)은 51.2%로 외환위기가 온 97년말보다도 10%p가 낮아졌다.
이 보고서는 특히 우체국 예금의 경우 예금을 받아 지역에 투자, 대출하지 않고 중앙조직에서 운용해 지역자금의 역외유출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강원 등 지역경제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서민, 중소기업 등 신용도가 낮은 고객군들은 점점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고 있다.
업계 자료를 종합한 결과 2003년말 대비 2004년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순증액은 8조2천억원으로, 2003년의 37조원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500만원 이하 소액신용대출도 크게 감소했다.
2003년6월에 5조369억원을 대출했던 국민은행은 지난해 6월 4조9465억원으로 대출을 줄였다.
조흥은행은 8050억원에서 7284억원으로, 신한은행은 1747억원에서 1539억원으로, 외환은행은 1393억원에서 1345억원으로 감소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 서민들의 자산 형성 기회도 줄고 있다.
은행권뿐 아니라 상호저축은행 등 서민금융기관까지 거액 예금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2천만원 이하 소액예금은 상호저축은행 전체 수신 중 47%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6월엔 17%로 급감했다.
금융소외, 사회 갈등 높여 성장잠재력 훼손 되돌아보자.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대던 1960년대 서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주인공 중에는 신협, 마을금고 같은 자생적 서민금융기관이 있었다.
80년대 중소기업경제를 북돋고 대기업을 육성시킨 주인공 중엔 은행이 있었다.
지금 그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은 누굴까? 신용카드 회사와 대부업체의 돈은 돈을 벌어 갚기엔 금리가 너무 높다.
벤처투자회사들의 돈은 저성장 경제 속에서도 고성장할 기대가 있는 신기술업체로만 몰린다.
금융 서비스의 양극화는 실물경제의 양극화, 이것은 다시 금융 서비스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양극화 현상은 금융 기회의 편중으로 인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우리 사회는 머지 않아 기업이든, 개인이든 글로벌 스탠다드의 경쟁력을 가진 10%와 중국에조차 뒤쳐지는 90%로 나뉘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경제발전 단계에서 이런 부작용을 경험한 선진외국들 중 나름의 해법을 개발해낸 나라들은 성장 동력을 지속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자본사회가 스탠다드로 삼고 있는 미국에선 예금을 받는 금융기관이라면 어디나 예금을 받는 지역, 계층에 대해 일정 부분을 대출,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 대출, 투자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지역기업과 함께 급성장하는 조합형 ‘벤처’은행까지 등장했다.
다음 편에서 영미권의 지역재투자, 중소기업 육성책에 대해 소개하겠다.
금융기관 공적 자금 투입 현황
금융권출자출연예금대지급자산매입등부실채권매입
은행.34조원13조8천억원-14조4천억원24조6천억원86조8천억원
제2금융권종금2조7천억원4천억원18조3천억원-1조5천억원22조9천억원
증권투신9조6천억원1천억원100억원3천억원8조5천억원18조5천억원
보험15조9천억원3조1천억원-3천억원1조8천억원21조2천억원
신협--4조8천억원--4조8천억
저축은행-2천억원7조3천억원6천억원2천억원8조3천억원
소계28조2천억원3조8천억원30조3천억원1조2천억원12조원75조6억원
해외 금융기관 등----2조4천억원2조4천억원
.62조2천억원17조6천억원30조3천억원15조7천억원39조원164조8천억
자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2004년 11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