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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한국식 게임의 룰을 만들어라
[기획시리즈]한국식 게임의 룰을 만들어라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5.0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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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논리에휘둘리지않을방패막마련을…지역사회책무강조하는미국CRA주목

“후우~,우리가그때왜이걸몰랐을까요?”최정식국제사무직노조연맹(UNI)한국협의회사무처장이안타까움에양미간을찌푸린다.
“금융구조조정이진행되면서지방은행들이합병되고금융시장이개방되어외국자본이들어오는것을보면서우리도이런문제가일어날것을우려했어요.그땐몰랐죠.시장개방,구조조정의글로벌스탠더드를만든미국엔지역재투자법같은것이있다는걸요.그때알았으면우리도공적자금투입,금융시장개방전에이런법을만들어야한다고주장했을텐데요.”

최사무처장처럼‘이런문제’를지적한사람들은사실한두명이아니었다.
1998년이후은행합병과퇴출,외국자본의국내금융기관인수가이어지면서지방대학의경제학과교수들,한국은행지역본부의조사자들은끊임없이‘이런문제’에대해우려섞인목소리를냈더랬다.


먼저그들이우려했던문제들이어떻게현실로나타나고있는지보자.첫번째는여러분이이미피부로느끼고있는문제다.
‘낮은예금금리와높은대출이자.’

지난2월15일,금융통화위원회가콜금리동결을결정한뒤시중은행들은시중금리상승폭을감안해수신즉예금금리를올리겠다고발표하기시작했다.
국민은행과하나은행,농협에이어우리은행과제일은행은18일부터정기예금금리를최고0.2~0.3%포인트인상한다고17일밝혔다.
다른은행들도수신금리인상을계획하고있어조만간시중은행1년짜리정기예금금리는기존3.4%수준에서3.5∼3.7%로조정될것으로보인다.


예금자에게유리한소식이아니냐고?은행들은시장금리가오를때는천천히,적은폭으로수신금리를올리고시장금리가떨어질땐즉각적으로금리를내린다.
은행권대출의70%는시중금리에따라금리가달라지는변동금리부상품이므로대출금리는바로바로시장변동에노출된다.


그렇게되면은행의주수익원인예금과대출금리의차,즉예대마진차는차츰벌어지게된다.
한국은행에따르면지난해말신규취급액기준저축성수신평균금리는연3.41%이고대출평균금리는연5.52%였다.
예대마진은2.11%포인트로,2000년말1.54%포인트에비해4년사이37%가높아졌다.


지난해은행들이번순이익은모두합해8조원이넘어설전망이다.
내수경기호황속에은행산업이최대순이익을냈던2001년보다도2조7천억여원이많아진금액이다.
2001년120으로시작했던증권거래소의은행지수는200대로올라섰다.
은행들의주가가66%이상뛰었다는뜻이다.


이런이익은대개해외로간다.
2005년2월기준으로14개시중은행의48.7%는외국인이보유하고있다.
스탠더드차터드은행(SCB)이제일은행지분을100%인수하게되면시중은행의외국인소유지분은53%로높아진다.
외국인지분율이63%인신한지주가63%의지분을보유한제주은행을계산에서제외하면,은행업의외국인소유지분은57.8%가된다.
은행이돈을벌어수익을많이내면,주가가높아지면그로인해생기는이익의58%는외국으로나가는셈이다.


시중은행지분100%단일기업에내줘

이와중에앞으로상징적인사건하나가더일어날예정이다.
지금증권사사이버트레이딩시스템에서제일은행의외국인지분율을찾아보면‘0%’라고나온다.
주식이거래중지상태이기때문이다.
우리증권시장은은행지분의80%이상을동일인이소유할경우거래가정지된다.
현재제일은행의동일인지분율은48.56%이지만스탠더드차터드은행의100%지분취득이확정된상황이라거래가중지된것이다.
지난해7월한미은행이씨티은행에합병되면서상장폐지된것과같은이유로,제일은행은조만간주식시장에서살수없는주식이된다.

한국의금융산업이태동된이래,이만한대형은행을동일인이100%소유하는것은유례가없는일이다.
물론한명의예외자가있었다.
한국정부말이다.
정부는산업은행의100%대주주였고국민은행,주택은행,조흥은행등일부은행의지배주주이기도했다.
씨티은행과스탠더드차터드은행은한국정부말고처음으로한국에서시중은행에100%지배권을행사하게되는것이다.


미국계사모펀드인론스타가보유한외환은행까지이들과비슷한길을걷게되면한국시중은행중3개가증권시장과시민사회의시야에서사라지게된다.
유철규성공회대교수는“제일SCB와한미씨티의출현은한국금융과경제에치명적인위협요인이될수있다”고경고한다.
상장폐지와함께투자자보호에근거한모든규제와감독장치가논리적으로근거를잃게되면한국에서거둬들인예금과수익을어떻게사용하는가에대해한국사회가아무것도알지못하게되는셈이라는지적이다.
이런일은선진금융시장에선전례를찾기가힘들다.
이찬근인천대교수는"세계각국은3%미만으로은행지분을분산하거나,정부가지배권을갖거나,다른자국은행혹은관계기업이지분을보유하도록해은행이특정주주의이익에부합하는행위를하지않도록견제한다"고지적한다.


그런들어쩌랴.한국정부와국회는1998년금융위기때은행민영화,부실은행의퇴출과약체은행의합병을승인하면서은행을시장논리대로운영하겠다는데에사실상동의했다.
미국의한프라이빗뱅커는이렇게묻는다.
“은행수익을높인최고경영자를정부가나서서몰아낸것에대해한국의투자자들은어떻게반응합니까?이것이한국에선상식적으로통용되는일인가요?”국민은행수익을크게향상시켰던김정태전국민은행행장이주주,직원들의평가와관계없이퇴진하게된데에대해해외투자자들은꽤충격을받은모양이었다.
지난해가을김전행장은표면적으로는국민카드인수관련한회계처리문제로,본질적으로는선도은행이면서도한국가계가과다한부채에시달릴때앞장서서가계대출을회수했다는이유로옷을벗었다.


미국은행“CRA덕에이미지개선”

맞다.
날카로운지적이다.
미국시장에선수익을낸기업의최고경영자가기업수익을높이기위해회계상편법,그것도회계법상불법으로보기애매모호한편법을썼다는이유로자리를내놓는다는것은상식적으로통하지않는다.
설사그것이은행의최고경영자라도마찬가지다.
하지만미국엔있고,한국에없는것이있으니,그것은지역재투자법(CommunityReinvestmentAct·CRA)이다.

당초CRA는73년시카고지역사회단체인‘거대도시주택연맹’(MetropolitanAreaHousingAlliance)이은행등금융기관들이저소득층,소수인종,지역에서거둬들인예금까지고소득층,백인,대도시중심으로대출,투자하는데대해문제를제기하면서77년입법화됐다.
이법은저축을받은금융기관들이저소득,중간소득계층과소수인종에대한대출,금융서비스를공정하게제공하고이것을입증하도록의무화했다.
그러나CRA를평가만하고공시는하지않으면서이법은큰관심을끌지못한채유명무실해졌다.


CRA가실제효력을발휘하기시작한건대규모저축대부조합(S&L)부도사태가미국전체를뒤흔든80년대후반부터였다.
매사추세츠주의하원의원조케네디는저축대부조합의구제승인조건으로CRA평가등급과검사내역을의무적으로공시하라는개정법안을발의했다.
또기존의계량화된평가방식도서술적방식으로바꿔지역주민과학자들이검사결과의의미를쉽게알아볼수있도록만들었다.
저축을받는미국의금융기관들은규모와형태에따라조금씩은다르지만모두다이법을이행할의무를갖는다.


90년CRA개정안이통과된뒤,미국금융시장의분위기는확달라졌다.
이제도의중요성을알게된지역주민과학자들이“예금을한사람은대출을받고투자를받고금융서비스를누릴권리가있다”며적극적으로자신의권리를주장하고나서기시작한것이다.
CRA준수여부를감시하는그린라이닝(Greenlining)www.greenlining.org은미국의금융기관들이가장무서워하는시민단체가되었다.
최근엔저학력,저소득의소수인종들조차은행에서대출을거절받으면“당신들CRA를위반하는거야!”라고항의할정도로이법은대중화됐다.


기업으로써수익을높여야하는은행들로선이법이달가울리없을터.“CRA가은행수익성을저해한다”는CRA반대론자들의요구에따라2001년500개금융회사를대상으로제도성과를분석한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뜻밖의결과를얻었다.
CRA와관련해저소득,소외지역,소수민에게제공한여신의수익성및건전성이전체여신과별다른차이가없었고심지어긍정적성과도올렸던것이다.


CRA관련여신의수익률은주택저당대출,주택개선용대출에서는전체평균보다6~13%정도가손익분기점이하로떨어졌지만소규모사업(SmallBusiness)대출,지역개발대출에서는전체평균과차이가없었다.
또은행중33%정도가CRA덕분에새로운수익원을발굴할수있었으며,지역사회에서은행의이미지가개선되었다고답변했다.


미국정부는지역재투자프로젝트를정부와함께진행하도록함으로써은행의부담을덜어준다.
홍현기미국한미은행부행장은“CRA관련대출,투자의부실률은낮다”며“특히저소득층주택마련등주정부프로젝트의경우엔부실률이0%까지떨어진다”고전한다.


CRA에대한호감은영업기반이미국안에있는금융기관일수록더높다.
수익의99%를미국안에서얻는아메리카은행(BOA)은지난해1월7500억달러,우리돈으로870조여원을CRA중한파트인지역개발금융에할당하겠다고밝혔다.
이것은아메리카은행총자산의70%를넘는금액이다.


이에대해브라이언트레이시지역개발금융담당상무는“지역사회에은행의사회적책무를하고한편으로는아메리카은행의수익창출을위한지역기반을만들기위해서”라고설명한다.
지역사회의평균소득을높이고은행서비스를받는고객을늘려장기적으로이자등은행수익을높이겠다는얘기다.


남이만든게임판에서내려오라

다시한국으로돌아오자.한시민단체간부는“부실은행에대한공적자금투입도다끝난마당에,CRA를하자고하면은행이가만히있겠느냐”고반문한다.
미국에서CRA를조사하고온금융감독당국의한관계자는“미국은행들과금융감독기관들은CRA성과를보고하고평가하기위해많은예산을쓰고있다”며“한국에서과연그만한예산을확보할수있겠는가”라고반문한다.
한국은행한관계자는“현실적으로주요산업기반이서울,수도권에몰려있어CRA를하려고해도은행들이지방에투자,대출하기가쉽지않을것”이라고지적했다.


그와중에괴로운건저소득층,지역민,지역의중소기업들이다.
특히금융구조조정뒤지방의토착금융기관이퇴출되거나금융지주로흡수된강원,충청권의중소기업들은관계금융망이끊어져자금조달에어려움을받고있다(237호‘은행의배신’편참조).조복현한밭대교수는“은행구조조정이후지방은행이폐쇄되거나시중은행으로통합되면서특히지방은행이없는지역에선은행의지방기업,지방경제발전에대한필요성도줄고기여도도줄었다”고지적한다.


사실은은행들도괴롭다.
이제막글로벌스탠더드의영업기반을만들려고하는마당에외국계대형금융사가한국에공격적으로진출하면서시장경쟁이더치열해졌기때문이다.
이찬근인천대교수는“한국의은행들이따르고자하는글로벌스탠더드영업방식에서씨티은행과스탠더드차터드은행만큼잘하는곳이있겠느냐”고지적한다.


98년외환위기를겪으며한국정부와국민은외국이만든룰을어영부영따라갔다.
그러다보니한국금융산업은글로벌스탠더드를만든미국조차도겪지않는초유의사태,민간기업이전국규모은행지분의100%를소유하는사태까지겪고있다.
미국의전국규모은행의경우단일주주가가진최대소유지분은3%를넘지않는다.


남이만든게임의룰에서내가이기긴쉽지않다.
우리는지금국민경제를건게임에서남이만든게임판위에올라갔고,가진말조차남에게빼앗겼다.
아,남은말은있다.
민영화를2~3년뒤로미룬우리금융과소유지분이국민에게분산된농협,새마을금고,신협,상호저축은행등서민금융기관들말이다.





**표1/은행의외국인지분율(자료:증권거래소,금융감독원.2005년2월17일기준)
신한지주 63.1%
우리금융 11.94%
제일은행 48.56%
하나은행 69.8%
외환은행 72.17%
대구은행 55.56%
부산은행 59.61%
제주은행 0%
전북은행 12.15%
기업은행 16.27%
국민은행 75.86%
한국씨티은행 100%
평균(현재기준) 48.75%
(인수확정기준)53.03%
(제주은행제외)57.86%
주1)현재14개시중은행중지분이거래되는은행은9개.신한은행과조흥은행은신한지주에,광주은행과경남은행은우리금융지주에편입되어거래됨.
2)제주은행은신한금융지주가대주주이나상장거래중임.
3)씨티은행이합병한한미은행은2004년7월상장폐지됨.

인터뷰/오웬 G 클레이버 미국 한미은행 CRA 담당 부행장 “지역재투자, 은행에 새 수익원 가져다 줘” 분산은 에너지…지역재투자는 은행에 새로운 성장점 줄 수도 미국 한미은행은 지난해 외환은행 계열이던 퍼시픽유니온뱅크를 인수하면서 자산 규모 기준으로 1위의 한인 은행으로 떠올랐다.
특히 LA 한인타운에서 한미은행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런데 의외로 전체 고객 중 한인 비중은 60%에 미치지 못한다.
1980년대(?)만 해도 전체의 90%를 넘나들던 이 은행의 한인 고객 비중이 지금처럼 줄어든 건 지역재투자법(CRA)이 활성화된 9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유색인종이 많은 지역에서 히스패닉 등 소수민은 이제 한인 못잖게 중요한 이 은행의 고객군으로 자리 잡았다.
89년 CRA등급 공시가 의무화된 뒤부터 CRA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가 있다면?
“CRA등급이 공시되기 전에는 사실 지역 내 한인들이 주요 마케팅 대상이었다.
한미은행 자체가 한인사회에 기반해 있어 은행 직원도 한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CRA등급 공시가 의무화된 이후엔 지역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인뿐 아니라 히스패닉, 인디언, 흑인 모두 다.
공시만으로 CRA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소수민이 자기가 은행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한번은 어떤 히스패닉이 찾아와 ‘내가 한인이 아니어서 대출심사에서 떨어진 것 아니냐, 그렇다면 CRA 위반 아니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
그가 대출심사에서 떨어진 건 신용점수가 낮기 때문이었다.
CRA는 미국에서 매우 대중적인 법이다.
학력이 낮은 소수민이라고 해도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금융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은 대부분 알고 있다.
은행으로선 저소득층 대출이 느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가? 부실위험도 상대적으로 높을 텐데? “아니다.
저소득자들은 고소득자보다 대출을 성실히 갚는 성향이 있다.
중요한 건 신용기록(Credit History)이다.
소득이 적다고 해도 장기 대출 원리금을 꾸준히 잘 갚으면 신용점수를 높일 수 있다.
얼마를 버느냐와 대출의 부실위험은 다르다.
CRA가 은행의 성장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가? “두 은행이 합병을 하려고 하는데 어느 한쪽이라도 CRA등급이 낮으면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또 CRA등급이 낮으면 지점 개설도 하지 못하게 된다.
평판도 좋지 않아진다.
그린라이닝 같은 시민단체가 비판을 할 수도 있다.
CRA를 충족하지 못하면 여러모로 은행 성장에 제한이 생긴다.
그러면 은행 입장에선 CRA가 부담스러운 존재 아닌가? “지역 경제가 강해지면 우리도 강해진다.
분산은 곧 에너지다.
당장 실리콘밸리가 투자 전망이 좋다고 거기에만 하고 샌디에이고에는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고객을 찾을 기회를 잃게 된다.
새로운 고객은 은행에 새로운 성장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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