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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주년 기념/테마에세이]쿨하게 산다는 것
[창간 5주년 기념/테마에세이]쿨하게 산다는 것
  • 이명랑/소설가
  • 승인 2005.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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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욕을퍼붓고싶었다.
대체누구야?전화기를박살내버릴까,간신히뜨고있는눈으로전화기를노려보다결국받고말았다.
선배언니였다.
나는이틀밤샘작업을했고그순간에는정말이지황금덩어리를던져준다해도싫었다.
그저자고싶을뿐이었다.
잠에취해선배언니의말을건성으로흘려듣던나는점점더화가나기시작했다.
그러니까뭐야?결론은,애인이…생겼다는거잖아?이런일로내단잠을방해하다니!

순전히열받아서나는약속장소로나갔다.
호기심도없지않았다.
그선배언니로말할것같으면여성으로서의매력은꽝이었고,특히나요사이유행하는‘나풀나풀’이나‘하늘하늘’과같은수식어가붙는옷들하고는전혀인연이없는우람한체구의소유자이다.
게다가그녀는또똑똑하기까지한것이다.
인터넷에떠도는유머중에이런것도있지않은가.얼굴은예쁜데머리가나쁜여자를보면남자들은“사랑을뭐머리로하니?사랑은가슴으로하는거야.”자신의넓은가슴으로여자의봉긋한가슴을꽉끌어안고,반대로머리는똑똑한데얼굴이못생긴여자를보면“잘난척은,밥맛없게.”혀를찬다나뭐라나.

하여튼,그녀를아는내주변의남자들은대부분그녀와함께있는것을달가워하지않는다.
하물며그녀와연인관계로발전한다는것은그들에게는구국의일념이아니고서야도저히저지를수없는미친짓이다.


도대체누가?어떤남자가그녀의애인이되었단말인가?
단언하건대,그남자는대한민국의평범한남자들과는달라도많이다를것이다,나는참특이한여성취향을가진그남자에대한호기심으로쏟아지는잠을이겨내고있었다.


몇달만에만난그녀는몰라보게달라져있었다.
우선,꽃무늬블라우스를입고있었다.
럴수럴수이럴수가?흰색시폰블라우스에피어있는꽃은참흐드러지게도피어있었다.
그녀의가지런히빗어내린생머리를보는순간,그녀와알고지낸10년세월이허무해졌다.
여자란이런것인가?

그녀와그녀의남자와나,우리셋은허름한호프집으로들어가구석자리에앉았다.
나는원래구석자리가아니면불안해서앉아있지를못하고,그녀와그녀의남자는어디에자리를잡고앉든지말든지별상관이없는듯했다.
하기야호프집의나무의자가깨져있었다해도두사람은개의치않았으리라.

그녀의남자는예상대로참,특이했다.
특이해도너무특이해서그남자와마주앉아있는것조차도괴로울지경이었다.
어디다눈을두고있어야할지,우선시선처리부터문제였다.
그남자의목둘레에는콩알만한붉으죽죽한반점들이목걸이처럼퍼져있었는데안보려고해도자꾸만눈이가는것이었다.
혹시AIDS?만약에남자가AIDS에걸린거라면모른척해주는편이남자의마음을편하게해주는것인지,아니면애써외면하는내태도가남자에게는더큰상처를주는것인지,나는내내마음이불편했다.


불편한내마음이남자에게전해졌는지남자가내게물었다.

“제목에이반점들,궁금하시죠?”

나는고개를끄덕였고남자는여자처럼가는손가락으로목둘레의반점들을매만졌다.
남자의입가에는흐뭇한미소마저흘러넘치고있었다.

“이사람작품이에요.”

남자는정말이지사랑스러워못견디겠다는눈빛으로선배언니를바라봤다.
선배언니는킥킥,소리내어웃더니내작품어때?하는듯이나를쳐다봤다.
그러니까남자의목둘레에퍼져있는반점들은선배언니가남자에게찍어놓은키스마크였다.


순간,얼굴이화끈거려서나는냉수를벌컥벌컥들이마셨다.
이쯤이야뭐,태연하게웃어넘기려해도워낙에무뚝뚝한남자와사는탓에덩달아있던애교마저없어져버린나는당황하지않을수없었다.


선배언니와남자는막불붙기시작한자신들의사랑을굳이숨기려고조차하지않았다.
남자의체구는그녀의딱절반이었는데그녀가그우람한팔을들어남자의어깨를감싸안으면남자는고양이처럼우아하고,고양이처럼가볍게그녀의어깨에자신의머리를기대었다.
남자를보고있자니‘애완동물’이라는단어가떠올랐다.
남자는사랑을표현하고,사랑을받는일에너무나도익숙해보였다.
마침나는‘애완’이라는소재로단편소설을구상하고있던터라남자에게굉장한호기심이일기시작했다.
애완….말그대로사랑하고사랑받기위해사는존재….저남자에게서사랑을거세시키고나면무엇이남을까?
“초면에실례지만꼭묻고싶은게있어요.어디까지나소설가로서의질문입니다.
여자를많이사귀어보신분같아요.당신이야기를해주실수있나요?”

웃으면가지런하게끝이말려올라가단정하다는느낌을주는남자의입술이살짝벌어졌다.
잠시후살짝벌어진그입술에미소가번졌다.

“단,이사람이좋다고하면요.”

남자는선배언니의손을꼭잡았다.
선배언니가고개를끄덕였고,남자가이야기를들려주기시작했다.


얼마전까지남자는영업사원을했다.
인테리어쪽의일이었는데여자,특히주부들을상대하는경우가많았다.
처음영업쪽의일을시작했을때남자는그일의특성상꼭필요한교육,<사람의마음을공략하는방법>에대한교육을받았다.
사람의마음을공략하는방법이라니?그런방법이있다면나에게도알려달라고내가조르자,남자는몇가지방법을이야기해주었다.
예를들면이런것들이다.


1.밥을차려주면배가터져도먹어라!상담을한뒤에는일의특성상고객의집을방문하는경우가많은데주인이밥을차려주면절대로,배가터질지라도,밥그릇을싹싹비우고음식솜씨를칭찬해주어라.

2.웃는얼굴과화난얼굴을적절히사용하라.시종일관웃는얼굴만보여주면물건을팔아먹기위해비굴하게군다는인상을줄수있다.
가끔은화난얼굴도보여주어야만한다.
내가단순히영업을하는것이아니라당신에대해,당신의집에대해진지하게생각하고있다는느낌이들수있도록말이다.


3.상대방과어떤감정을공유하라!그것이슬픔이든행복이든불행이든분노든상대방과어떤감정을공유하게되면상대는나로하여금동지애를느끼게된다.


4.고객이주부인경우에는환상을심어주어라.상담시간이마치데이트시간인것처럼느낄수있도록.

5.자녀가있는주부의경우에는일단아이에대한이야기를잘들어준다.
그다음에아이에대해칭찬하라.

6.마지막으로가장중요한것은제품에대한철저한이해와숫자를가지고노는감각이다.
일의특성상센티미터에따라값이달라지는데견적을뽑을때막힘이없이계산이나와주는것이좋다.


남자에게서이런등등의<사람의마음을공략하는몇가지방법>을듣고났더니,나는몹시기분이나빠졌다.


“참…씁쓸하네요.”

“그렇습니다.
슬픈일이지요.”

그리고또남자는말했다.
이런식의방법들이먹혀들어간다는걸알게되었기때문에,그것도예상밖으로잘먹혀들어가는경우가많았기때문에자신은점점더쿨(cool)해졌다고.쿨해진다는것은사실은인간의심성이비뚤어지는것이라고.쿨하다는것,그리고그쿨함을계속해서유지해나간다는것은실은도덕성을상실하는것과같다고.남자는길거리헌팅에서시작해인터넷의채팅까지,그때그때그시기에유행하는방법으로여자를낚았다.
남자는대략200명의여자와잠자리를같이했다.
데이트첫날에잠자리를같이하지못한여자는다섯손가락에꼽을정도라고,남자는덧붙였다.
여자의마음을사로잡는일,그마음을사로잡아어렵지않게여자의몸을탐하는일을남자는예사로하고다녔다.
<사람의마음을사로잡는공략>을교육시키는이사회가남자로하여금그런일을하게만들고있었던것이다.
그사실을남자는이제야알게됐다고,이사회와스스로에대해분노했다.


“이사람을만나고나서야알게됐습니다.
어느날이사람하고마트에장을보러갔는데이벤트행사요원이이리와서보고가라고이사람어깨에손을대는거예요.나도모르게이사람어깨에올려진그남자의손을제가뿌리쳤어요.만지지말라고소리쳤지요.그순간에저는알게됐습니다.
질투하고,화내고,그러다상처를입더라도마음이느끼는것을고스란히전하며사는삶을이사람이내게선물했다는것을말이지요.”

호프집에서나와그두사람은손을꼭마주잡고지하철을타기위해전철역을향해걸어갔다.
덩치가코끼리만한여자와그여자의절반도안되는체구의남자가못견디게사랑하는모습을몇몇행인들이동물원원숭이보듯쳐다보는것을나는보았다.
그리고또나는보았다.
한사람이지나온시간과그시간위에굳은살처럼박혀버려어느새몸의일부가되어버린삶의방식을어느날순식간에깨부숴버릴수있는유일한힘,사랑의위력을.

저두사람의마주잡은손바닥안에가득히고여있는온기가행복이아니라고한다면,그러면무엇일수있을까?[필자 약력] 1973년 서울 출생 1998년 장편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웅진출판) 2002년 젊은 문학인 창작지원금 수혜(문예진흥원) 2002년 연작소설집 <삼오식당>(시공사) 2004년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실천문학사) 현재, 계간 <작가세계>에 장편소설 <키싱 피버> 연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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