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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느림의 지혜(스튜어트 브랜드)
[지식창고] 느림의 지혜(스튜어트 브랜드)
  • 이용인
  • 승인 2000.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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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년에 한번 우는 뻐구기 시계를 만들자
정신없이 질주하는 디지털 세계에 스피드건을 들이대보자. 그 속도감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당신에게도. 액정화면에 나타난 수치는 얼마를 가리키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쭈뼛 서지 않는가.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의 종착역은 아무도 모른다.
열차는 가속도가 붙고 있는데 계기판은 무용지물이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느림의 지혜>(스튜어트 브랜드 지음, 해냄 )는 “삶의 속도를 늦춰보자”고 제안한다.


속도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가히 파시스트적이다.
인텔의 공동설립자인 고든 무어가 발표한 ‘무어의 법칙’이 말해주듯, 컴퓨터의 성능은 56년 동안 1370억배나 향상됐다.
90년대 중반 인터넷의 폭발 이후 콘텐츠는 100일마다 두배로 증가했다.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12∼24개월마다 두배로 늘어난다는 ‘몬샌토 법칙’도 있다.
한데, 이젠 이런 법칙마저 탄력이 붙었다.
마치 성난 훈련교관처럼 가속페달을 밟으라고 다그친다.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속도’의 논리 어디 기술뿐인가. 세계경제 역시 “큰 것이 작은 것을 포식하는 단계”에서 “빠른 것이 느린 것을 포식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최선을 다한다고 공들여 상품을 만들어낸다면 이미 속도우위의 시장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누가 빨리 선점하느냐가 기업과 개인의 생존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멈칫멈칫하는 것은 이제 죄악에 가깝다.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지은이 스튜어트 브랜드는 한가하게도 “느리게 가라”고 충고한다.
어떤 독자는 이 대목에서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떠올릴 것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게으름도 권리”라며 산업사회에 통렬한 비판을 퍼부었다.
발명가이자 설계사인 브랜드 역시 ‘문명 비판’이란 측면에서 러셀과 동지애를 느낀다.
하지만 그가 근거로 제시하는 사례들은 훨씬 더 현실적이며 절박하기조차 하다.
<느림의 지혜>의 지은이에게 ‘느림’은 더 이상 현대인의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꼭 지켜야 할 ‘의무’이다.
급변하는 기술과 시장상황에 재빨리 적응해 얻은 소득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 ‘잠시 동안의’ 화려한 성공? 높은 보수? 하지만 그들은 적응의 대가로 ‘근시안적 발상’이란 족쇄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60년대와 70년대에 위성을 통해 전달받은 지구의 모습을 저장한 디지털 영상 자료들은 시대가 변해도 과학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제 낡아빠진 자기테이프에 기록되어 있어 읽을 수조차 없다.
자기테이프가 모두 썩어버리기 전에 현재 통용되는 저장매체로 데이터를 모두 옮겨야 한다.
그럼에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엄청난 예산과 시간 때문에 손도 못대고 있다.
모든 자료가 손실되는 ‘디지털 빅뱅’이 찾아올 수도 이처럼 디지털 정보는 저장하기 쉬워보이지만, 현재 사용하는 매체로도 접근할 수 있게끔 보존하기는 어렵다.
시디롬에 엄청난 양을 저장하고 있다 해도, 나중엔 시디롬 드라이브를 구할 수 없어 폐물이 될 수도 있다.
암호와 프로그램간의 호환성 문제도 보존이 녹록찮은 작업임을 보여준다.
디지털화 덕택에 모든 정보를 영원히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아마도 미래의 과학사학자들은 1590년대 갈릴레이의 서적보다 1960년대 컴퓨터 발전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을 더 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 정치, 문화 등 앞으로 모든 지식의 저장을 점점 더 컴퓨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술에 대한 장기적 관점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디지털 빅뱅’이 일어날 수 있다.
그땐 돌이킬 수 없는 자료의 손실과 망각이 인류에게 찾아올 것이다.
문명의 관점에서 그것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지은이가 “빠르게 일어나는 일은 환상이며, 느리게 일어나는 일은 현실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번 똑딱거리는 데 1년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지은이가 속시원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기대하지 말자. 지은이는 ‘장기적 관점’의 중요성을 전파할 수 있는 카리스마적인 상징물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한번 똑딱거리는 데 1년, 괘종이 한번 울리는 데 100년, 뻐꾸기가 한번 뛰어나오는 데 1000년이 걸리는 그런 시계”를 말이다.
다소 엉뚱하고(?) 신화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툭 터진 바다를 보는 양 가슴이 뻥 뚫리지 않는가. 이런 거대담론이나 ‘공상적인’ 이야기가 싫다면 다음의 경구만 기억해도 짭짤한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2∼3년 동안만 기업을 운영하고 손을 뗄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믿을 만한 지도자라고 생각할 때 장기적인 관점을 채택한다.
구성원들은 게임의 규칙이 정당하다고 믿을 때 장기적인 관점을 채택한다.
구성원들은 조직시스템이 역동성 있다고 생각할 때 장기적인 관점을 채택한다….” 이 책의 논지를 따라가는 건 쉽지 않은 편이다.
25개로 구성된 각각의 장들이 모두 독자적인 볼륨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편린들을 짜맞춰 완벽한 하나의 모자이크로 만들어내는 데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도 지은이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또 하나의 ‘느림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무어의 법칙이란?”
1965년 4월19일 기술잡지 <일렉트로닉스>의 기획시리즈 가운데 ‘더욱 집적되는 집적회로’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필자는 당시 페어차일드의 반도체 연구개발 책임자였으며, 후에 인텔의 공동설립자가 된 고든 무어였다.
무어는 집적회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전자공학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면서, 칩 하나에 집적되는 소자, 즉 트랜지스터의 수가 6년 동안 매년 두배씩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경향이 10년 동안 지속돼 1975년까지 하나의 칩에 무려 6만5천개의 소자가 집적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만들어진 것이다.
1975년에 실제 집적회로의 집적률은 1만2천개였기 때문에 무어의 법칙은 ‘18개월에 두배’라는 공식으로 하향 수정된다.
무어의 법칙은 기하급수적인 기술발전의 속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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