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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물결은 그래도 흐른다
자본주의 물결은 그래도 흐른다
  • 홍기빈/ 칼럼니스트
  • 승인 2005.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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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주권국가서헌법부결까지변화상…‘경쟁력강화’위한개혁계속될듯

유럽문명은16세기이후근대주권국가라는독특한정치단체를만들어냈다.
이국가는스스로의‘주권’을안팎으로내세울수있는물리적폭력을갖춘군사국가이며,동시에그폭력을뒷받침할수있는물질적동원력을갖춘경제국가라는2개의기둥위에선구조였다.


그런데이근대주권국가가2차대전이후유럽에서‘현대국가’라는새로운형태로변모하기시작했다.
먼저근대국가의가장본질적인측면인‘군사적주권’이결정적인변화를겪게됐다.
손바닥만한유럽에다닥다닥붙어있는나라들이갑각류생물들마냥제각각군사주권을내세우며경쟁과대립을일삼은결과,파시즘과양차세계대전이라는전대미문의비극을낳고말았다.
더욱이종전후에는패전국독일,이탈리아는물론프랑스나영국등왕년의강대국들모두완전히탈진된상태였으므로,바로코앞까지밀려온공산진영의팽창에대응하기위해서는군사적문제에있어서의‘주권의양도’를감수하고서라도미국의지휘아래‘자유진영블록’에합류하지않을수없었다.
이리하여NATO라는이름의탈근대적군사질서의맹아가생겨난다.


그런데근대국가의다른한기둥인‘경제적주권’은오히려극적으로강화되는일이벌어졌다.
원래자유무역과금본위제가지배하던19세기의고전적자유주의시대에는경제의작동이철저하게세계시장의운동에내맡겨지는게규범이었다.
따라서경제적주권이라는말자체가곧‘뜨거운얼음’같은어불성설로여겨졌고,국가의경제개입은금기시되었다.
하지만20세기중반에이르면,이러한자유방임자본주의가대공황과사회주의혁명이라는유럽근대국가체제의또하나의위기의원인이라는것도분명해졌다.
그래서전후미국패권하에새로이조직된세계경제는경영학자피터드러커의표현처럼‘일국자본주의’(capitalisminonecountry)를그모토로삼는것이었다고할수있다.
스탈린의‘일국사회주의론’이세계사회주의혁명이라는공산주의본래의이상을포기한것처럼,자본주의도‘세계시장’대신국내의안정이라는목표를우선으로해야만살아남을수있다는얘기였다.
그래서유럽각국은이제각자의문화적전통,노동과자본의갈등,사회복지,진보정당의등장등국내의복잡한‘비경제적요인’들을충분히(!)고려하여자국에어울리는다양한형태의경제체제를발전시킬수있었다.
이렇게한편으로군사적주권이크게약화되면서경제적주권은크게강화되는대칭적경향이냉전시기유럽근대국가가변모하는양상이었다고할수있다.


냉전이후통합논의계기로새전기

그런데냉전이끝난90년대이후,이러한유럽국가의변모방향은또한차례새로운전기를맞게되는데,이는주로유럽통합논의를계기로나타나고있다.
첫째,지정학적인조건의변화를꼽을수있다.
공동의적이었던공산주의의위협이사라진지금EU는군사강대국으로서의정체성을어디에서찾을것인가.여기에는2가지방향이있다.
한가지는냉전시대에그러했던것처럼미국과의협력을강화하면서일본과나란히미국의유라시아경략의한쪽날개역할을맡는방향으로서,1차이라크전쟁으로부터코소보전쟁에이르는90년대내내이러한경향이두드러졌던것이사실이다.
그러나이와는달리최근의2차이라크전쟁을거치면서시라크정부와슈뢰더정부를중심으로오히려프랑스와독일을축으로삼아미국을견제하는독자적존재로서EU를자리매김하려는이른바‘드골주의’(Gaullism)적경향이대두하고있다.
이에반해미국이심어놓은‘트로이의목마’로불리는영국과,새로가입한동유럽국가들은군사안보문제에있어서부시대통령과의협력을강화하려한다.
여기에다가최근중국에대한프랑스의무기수출해금움직임에서볼수있듯이,유럽이독자적인군사안보노선을지향하도록브뤼셀에서암약하는군산복합체까지가세하여판도를더욱복잡하게만들고있다.


둘째,자본의지구화와함께냉전시기에주어졌던경제적주권이‘몰수’됨에따라유럽각국경제가이른바‘앵글로색슨자본주의’의침입에무방비로노출되고있는상황을들수있다.
기존유럽각국의경제체제는모든국민들이요람에서무덤까지최대한사회복지체제의보호망에폭쌓여살아갈수있도록짜여져있었던것이며,각국의금융체제나기업지배소유구조의특징도그러한각국의독특한역사적블록의산물이었다고볼수있다.
그런데‘글로벌스탠더드’의확장으로금융체제,회계관행,기업소유구조가모두영미식‘주주자본주의’에맞추어변화되면서유럽시민들도대량해고와생활불안정등신자유주의의삶이어떤것인지를피부로느끼기시작했다.


최근라인강양쪽의사람들모두가이러한경제체제의변화에대해느끼는공포와반감은실로대단하다고한다.
독일의사회민주당은지난4월지방선거에즈음하여이러한민심에편승하기위한고육지책으로뮌테페링당의장지휘아래국제투자가들을향해독일경제를잡아먹는‘메뚜기떼’라고악담을퍼붓는등,때아닌‘자본주의논쟁’을벌이기도했다(그래도선거에서는참패했지만).시라크대통령도이러한민심을업어보려고“신자유주의야말로이시대의공산주의”라는막말과함께“앵글로색슨자본주의의공세에맞서프랑스식자본주의를계승창조하자”는프랑스식주사파노선(!)을영도하고있다.


사실이번헌법부결사태의가장큰원인도헌법통과가가져올기존경제체제의해체에대한두려움이었다는것에의견을달리하는사람은없다.
헌법초안은경제및고용정책이EU의독자적권한이며모든회원국은여기에자국의정책을맞추어야한다고명시함으로써각국의경제적주권의‘회수’를명확히밝히고있다.
게다가그경제및고용정책이라는것이뚜렷하게신자유주의적인방향을띠고있다는것또한분명하다.
어떤이는이헌법안에‘은행’이라는단어와‘실업’이라는단어가나오는횟수가각각131회와0회라는점을환기시키기도한다.


셋째,냉전시대의낡은정당구조의온존이라는문제도빼놓을수없다.
중도좌파와중도우파가중심이되고극우정당과공산당이그외곽을이루는서유럽식정당구조가냉전시대의독특한자본-노동간합의의산물임은잘알려진바이다.
그런데그러한안팎의환경이근본적으로변한90년대이후유럽사회는새로운문제들과도전에끊임없이직면하고있음에도불구하고,낡은정당구조가계속유지되어온것이다.
제도정치판과민심이서로괴리되고정치판전체의정당성위기가심심찮게논의되어오는건이때문이다.
이것이각국정부와엘리트들사이에서폐쇄적으로준비된유럽헌법안에대해민심이등을돌린또하나의중요한원인이다.
현재프랑스정치판의상황이야말로이러한위기를극명하게보여주고있다.
여당인국민운동연합(UMD)은물론제1야당인사회당의공식적인입장도분명히헌법안지지였고,여기에독일의슈뢰더와스페인의자파테로까지국경을넘어와서열심히바람을잡았건만,절반이넘는프랑스국민들은이제도정치판전체에대고“non!”이한마디로매몰차게외면해버린것이다.
그런데도국회해산과조기총선이벌어져야마땅한이상황에시라크대통령은겨우개각으로사태를수습하려하고있다.
게다가‘프랑스의대처’라고불리는강경신자유주의자사르꼬지를부수상에임명할수밖에없는형국이다.
이런식의미봉책속에서기존정치판의위기가어디까지곪아갈것인가는실로예측하기어려운일이다.


결국이번부결사태는회원국정부와엘리트들에의해‘옥상옥’처럼진행되어온EU라는국가형태가결국시민들로부터동의의동원이라는근대국가의해묵은작동방식에서완전히풀려나지못했다는점,그렇기때문에유럽이새로운현대국가로의변모를계속하기위해서는근본적인정당구조개편이반드시필요하다는점을분명하게보여주었다.
이점에서최근새로운좌파정당의필요성을외치며독일사민당을탈당한전당수라퐁텐의행보를주목할필요가있다.
빌리브란트의후예를자처하는그는사민당이민심과괴리해위기를맞을때마다항상과감한행동으로당의외연을왼쪽으로넓혀온인물이었기때문이다.
이번탈당이새로운종류의좌파정당의탄생으로이어질지,아니면또한번의독일사민당의확장으로이어질지는물론두고보아야할것이다.


개혁조치,미국주도지구화촉매제로될까

이러한요소들사이에벌어지는역동성으로인해EU라는현대국가가발전해나갈큰방향은아직선명하게모습이드러나지않는다.
하지만비교적분명해보이는것하나는현재진행되고있는유럽각국의기존정치경제체제개혁은계속될것이라는점이다.
냉전시대에형성된유럽의지배엘리트층은이미보수당과사회당을통틀어서‘경쟁력강화’를위한자유주의적개혁이필수적이라는점에분명한공감대를형성했다.
독일경제에국제금융자본의침투가급속하게벌어진계기는2000년이후본격적으로벌어진각종금융및기업소유구조개혁조치였다.
그런데적극적으로이러한조치를도입한세력은금융자본을향해‘메뚜기떼’라고욕하고있는,바로그독일사민당인것이다.
그야말로누군가의지적대로영화<카사블랑카>의르노대위처럼“술집을열어놓으니까도박판이벌어지는구나!”라고펄펄뛰는격이다.


이제이러한개혁조치들을경제적불안에떨고있는국민들에게어떤방법으로설득해동의를얻어낼수있을까.또이런흐름은미국이주도해온지구화의촉매제로작용할까,아니면미국과의경쟁의발판으로쓰이면서보호무역주의가횡행하고있는경향을가속화시킬까.이러한물음들을머릿속에담아둔채각사회세력의행보를유심히관찰해가야할때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칼럼니스트·캐나다요크대경제학과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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