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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헤르메스 고발 ‘무늬만 초강수’?
금감원, 헤르메스 고발 ‘무늬만 초강수’?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5.07.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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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에 따르면 헤르메스펀드의 아시아 지역 총괄 펀드매니저 로버트 클레멘츠는 지난해 3월 삼성물산 주식 777만2천주를 취득한 뒤 삼성물산의 M&A 가능성을 언론에 흘린 혐의를 받고 있다.
클레멘츠는 특히 11월29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자청해 이 같은 허위사실을 발표한 뒤, 주가가 오르자 12월3일 보유주식을 전부 내다팔아 292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바 있다.
금감원은 헤르메스가 부당하게 취득한 이득이 8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부당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고의로 풍설을 유포하거나 위계를 쓴 행위는 증권거래법 제188조 사기적 부정거래 금지조항에 위반된다.
이 법은 부당이득 규모가 50억원이 넘을 경우, 징역형으로는 최고 무기징역까지, 벌금은 부당하게 취득한 금액의 3배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헤르메스의 경우 80억원의 3배, 최대 240억원까지 추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금감원은 이날 클레멘츠와 헤르메스, 그리고 이들과 공모한 대우증권 영국법인 김아무개 대리를 함께 고발조치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헤르메스의 불공정거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올해 3월 영국 현지조사까지 다녀왔으나 결과를 밝히지 않고 7개월 가까이 시간을 끌어왔다.
이 같은 금감원의 소심한 태도에는 외국 자본 차별론을 주장하는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의 견제도 한몫을 했다.
그런 금감원이 예상을 뒤엎고 검찰 고발이라는 강도 높은 조치를 들고 나온 것이다.
고발이 접수되면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하고 3개월 이내에 잠정적인 결론을 금감원에 통보해야 한다.
과거 워버그핀커스 등의 불공정거래가 검찰에 통보하는 정도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검찰 고발은 지금까지 외국 금융기관에 대한 금감원 징계 가운데 최고 수위라고 볼 수 있다.
헤르메스는 이날 홍보대행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내고 “헤르메스가 얻은 이익은 장기 투자로 얻은 것이며 인터뷰 직후에는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들은 또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을 M&A하려 한다는 오해가 많아 해명 차원에서 인터뷰를 자청했던 것이며 이로 인한 부당이득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는 금감원 발표를 하루 앞둔 7월21일 “한국이 헤르메스를 검찰에 고발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우리 정부의 외국 자본 규제를 여러 차례 비판해 왔던 이 신문은 “금감원이 헤르메스를 본보기로 삼아 한국은 투기꾼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외국 투자자들에 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검찰 고발해도 출두 안 하면 제재 못해 금감원이 모처럼 단호하게 맞섰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조선일보>에 헤르메스의 인터뷰가 나가던 날 삼성물산의 주가는 1만5300원에서 1만5850원으로 조금 올랐으나 그 뒤 이틀 연속 떨어져 이들이 주식을 팔던 12월3일에는 1만4300원까지 떨어졌다.
M&A 소문과 언론 인터뷰로 주가를 띄웠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주식 매각 직전의 <조선일보>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헤르메스는 “인터뷰에서 '삼성물산을 M&A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일반적인 견해를 밝혔을 뿐 구체적인 시도나 그 세력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했다”고 반박했다.
이 날 기자회견에서 금감원 관계자들은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고찬태 금감원 조사2국 팀장은 “7차례 정도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막판의 인터뷰가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 고발도 능사는 아니다.
국내 비거주 외국인의 경우 검찰에 출두하지 않으면 강제로 구인할 수는 없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기소중지로 끝나는 등 사실상 아무런 제재조치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태철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들이 기소중지 상태에서 국내 영업을 계속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헤르메스에 대한 이번 제재 조치가 일회성 실적 내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관련 법제도의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단 공은 검찰에게 넘어갔고, 금감원으로서는 이제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태도다.
금감원은 대외적으로 명분을 챙기고 손을 턴 셈이지만 헤르메스는 결국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법이 그만큼 허술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금감원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의지가 약한 탓이다.
그동안 외국 자본의 횡포에 대해 줄곧 수수방관해 왔던 금감원은 이번 헤르메스의 경우도 실제로는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감원은 이에 앞서 한국씨티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 관련 사기혐의와 관련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금융산업노조 한미은행 지부는 7월19일 한국씨티은행을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노조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은 변동금리 부동산 담보대출을 취급하면서 변동금리가 아닌 고정금리로 대출이자를 받아 74억원 규모의 불법이득을 취득해 왔다.
2001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씨티은행의 담보대출 금리는 7.9% 수준으로 6.6% 수준의 다른 은행보다 최대 1.3%나 높았다.
박선오 한국씨티은행 홍보부장은 “씨티은행 서울지점 시절, 점포수가 많지 않아 조달금리가 높았기 때문에 금리 하락을 바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사실상 노조의 주장을 시인했다.
금감원, 왜 외국 자본을 싸고도나 주목할 부분은 이 문제를 보는 금감원의 태도다.
금감원은 일찌감치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으면서도 지난 3월 금리 인하 권고안을 내놓는 데 그쳤고 그 이후 시정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노조의 거듭된 문제제기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검찰 고발 이후에도 검찰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금감원은 지난 6월 노조가 씨티그룹 모은행의 자금 유출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도 기꺼이 발 벗고 나서서 은행을 변명해 주기에 바빴다.
씨티그룹은 한미은행을 인수하는 데 4조원을 들였는데 이 가운데 3조7천억원 정도가 대주주 신용공여 등으로 빠져나간 상태다.
노조는 씨티그룹이 임시로 급전을 융통해 한미은행을 인수한 뒤 한미은행 자산을 빼내 그 급전을 변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런 노조의 주장에 맞서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한미은행의 신용공여는 유휴자금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열사간 거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른바 'SK사태'와 관련해서도 금감원의 태도는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금감원은 SK의 지배구조를 위협하면서 1조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리고 빠져나간 소버린자산운용에 대해서도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칼라일이나 론스타펀드에게 국내 굴지의 은행을 넘겨주는 데 커다란 일조를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법조항을 무시하거나 자의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았다.
국내 금융기관 앞에서 그렇게 서슬 퍼렇던 금감원이 외국 자본 문제에서는 거듭 꼬리를 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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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 이래도 싸고 도나
한국씨티은행의 대주주 신용공여와 대출사기 논란과 맞물려 씨티그룹의 투기적 행태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의 일련의 사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말썽을 빚어왔던 씨티그룹의 투기행각을 돌아보면 선진 금융기관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무색할 정도다.
미국 은행들은 지난해 1200억달러라는 기록적인 순익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179억달러가 씨티그룹의 몫이다.
단일 은행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그런 씨티그룹이 지난 6월 영국 금융감독청으로부터 변칙 채권거래로 부당이익을 올려 유럽 채권시장을 교란했다는 이유로 1390만파운드의 벌금형을 받았다.
씨티그룹은 국채를 대규모 매각한 뒤 가격 하락을 이용해 다시 사들이는 수법으로 996만파운드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이번 벌금은 씨티그룹이 얻은 차익에 벌칙금을 더한 것으로 영국 금융감독청 사상 두 번째 규모다.
씨티그룹은 현재 영국 외에도 이탈리아와 벨기에, 포르투갈에서도 비슷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에는 일본에서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허가하는 대가로 채권 상품을 끼워 파는 일종의 '꺾기'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 국채입찰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또 고객들에게 복잡한 채권 상품을 판매하면서 그 위험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일본지점의 프라이빗뱅킹 사업부는 주가조작에 사용된 자금을 대출한 것이 적발돼 영업중지 명령까지 받았다.
일련의 비리 덕분에 씨티그룹은 일본 내 소매금융 시장에서 완전히 추방당했다.
중국에서는 4대 국영은행 중 하나인 건설은행의 기업공개 과정에서 공모주를 불법 배정하는 등 비리가 드러나 주간사에서 탈락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지난달 씨티그룹은 과거 엔론의 회계부정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주주들에게 20억달러를 배상하기로 했다.
또 뮤추얼펀드 명의개서를 대행하면서 이 사실을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부당이익 2억800달러를 반환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3월에는 주가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이탈리아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미국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칠레의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트 피노체트의 자금 세탁에도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같이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 3월 "비리의혹이 해소되고 내부통제제도가 강화될 때까지 주력 사업인 인수합병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최근 한국씨티은행과 노조의 갈등을 빚어낸 일련의 사건들도 씨티그룹의 이런 세계적인 금융 스캔들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11월 한미은행을 인수한 뒤 은행의 자산을 착실히 빼내간 데 이어 온갖 불법, 탈법 영업을 자행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이런 씨티그룹을 선진 금융기관으로 치켜세우며 감싸고 도는 모양새가 석연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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