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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정보는 공짜란 생각 버리세요”
“날씨정보는 공짜란 생각 버리세요”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5.08.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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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상산업 이끄는 케이웨더·진양공업…“기상산업 투자 확대해야” 한목소리 예로부터 자연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예고 없는 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력한 존재였다.
순식간에 마을을 덮치는 강물과 끝없이 쏟아지는 폭우, 온 산야를 불바다로 만드는 낙뢰 앞에서 인간은 다만 하늘에 운명을 기댈 뿐이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곧 두려움의 대상인 자연을 모방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자연신 숭배의 탄생이다.
이성에 눈을 뜨면서, 인간은 비로소 자연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자연을 ‘지배’하게 된다.
둑과 댐을 쌓아 강과 바다의 범람을 조절하고, 관개·치수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근대 산업의 불씨는 이렇듯 인간의 ‘계몽’과 더불어 지펴졌다.
IT산업이 활짝 꽃핀 21세기 들어서도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아니, 자연현상을 앞당겨 예측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는 시도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복잡한 자연현상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걸러내는 그물망도 더욱 촘촘해졌다.
기상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능력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렇듯 기상정보를 각종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 중심에는 국내 기상산업을 이끄는 2인방이 있다.
“이 업종도 알고 보면 미래 산업입니다.
당장 돈이 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를 해야 결실을 거둘 수 있죠. 그런데 아직도 날씨정보를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인식은 요원한 실정입니다.
” 강동식(35) 케이웨더 www.kweather.co.kr 사장의 투정 아닌 투정이다.
그럼에도 일반인에겐 이런 투정조차 낯설기만 하다.
TV나 일간 신문, 하다못해 웹사이트만 조금 뒤져도 날씨정보는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세상인데, 날씨정보를 돈을 주고 사라니…. 그런데 김 사장의 말을 조금만 더 들어보면, 그의 투정이 괜한 것이 아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날씨를 어떻게 사업에 활용하느냐고들 물으시는데요. 실제로 업종이나 분야별로 70~80%가 직간접적으로 날씨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온도나 습도, 바람이나 비의 영향을 받는 기업들은 기상으로 인한 위험관리에만 수백억원씩 들기도 합니다.
날씨에 따라 손익이 수백억원씩 차이나는 셈이죠. 그런데도 정확한 기상정보를 공짜로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김 사장 또한 날씨를 팔아 돈을 벌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96년 미국 MIT 박사과정을 마쳤을 때만 해도 잘나가는 미국계 경영 컨설팅회사 컨설턴트로 앞길이 트여 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기상협회의 컨설팅 과제를 맡으며 질 좋은 기상정보를 팔아 사업을 해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고, 내친 김에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사진:박미향 기자blue@economy21.co.kr
마침 시기도 잘 맞아떨어졌다.
지난 97년, 정부는 기상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민간에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민간예보사업자’제도를 도입했다.
기상청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기상정보와 기상관측 등을 전담하고, 좀 더 상세하고 특화된 맞춤정보는 민간예보사업자가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제공하자는 뜻에서다.
공공기관과 민간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분담하자는 것인데, 케이웨더 또한 이때 민간예보사업자로 첫발을 내디뎌 지금에 이르렀다.
케이웨더의 사업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주요 사업으로는 고객별로 특화된 맞춤형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수집된 정보를 전문 예보관과 기상 컨설턴트들이 종합 분석해 고객이 원하는 정보로 가공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자체 날씨예보 시스템을 원하는 곳에는 기상솔루션을 직접 설치해 주기도 한다.
이와 함께 유통·제조·레저 등 산업별로 날씨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상품기획에서 판매, 마케팅, 영업 등의 모든 과정에 날씨요소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날씨컨설팅 서비스도 병행하고 있다.
기업들은 날씨를 어떻게 사업에 활용하는 것일까. 사례를 따져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7년째 날씨정보를 팔고 있지만, 요즘도 가끔 ‘이런 곳에도 날씨정보가 활용되는구나’ 하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며 김동식 사장은 혀를 내두른다.
쉬운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자. 국내 스키장은 눈이 적게 내리는 시기엔 이용객을 위해 한겨울에도 인공눈을 뿌린다.
양질의 슬로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국내 스키장의 90%는 인공눈 없이는 사실상 슬로프를 유지하기 힘들다.
하루에 인공눈을 뿌리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한 600만원 정도. 기껏 눈을 뿌렸는데 다음날 폭설이 내린다면 스키장은 허망하게 거금을 날리고 만다.
이때 해당 스키장이 있는 지역의 날씨를 1시간 단위까지 정확히 예측해 제공한다면 스키장으로선 날씨를 고려해 인공눈을 뿌릴 시기를 조절할 수 있고, 이는 곧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건설업계도 케이웨더의 주요 고객이다.
지금까지 건설업계에서 비 오는 날은 곧 ‘공치는 날’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는다면, 비가 내리는 시간만 피해 공사를 계속할 수 있다.
케이웨더는 해당 건설현장의 시간별 날씨와 기온, 습도 등을 종합 분석해 건설업계의 공사 일정을 조절해 주는 종합 컨설팅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예컨대, 오후에 비가 올 예정이라면 외장 페인트칠을 오전 중에 마치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전체 공사기간의 20~30%를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사진:박미향 자 blue@economy21.co.kr
국내 시장에서 케이웨더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현재 케이웨더의 기상정보를 받는 곳은 대략 4천여곳으로,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른다.
날씨정보를 활용하는 국내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케이웨더의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주위에선 김동식 사장이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라며 섣불리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김동식 사장은 “날씨정보를 팔아서 밥 먹고 살기엔 여전히 요원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97년부터 지금까지 문을 닫지 않은 기업은 케이웨더와 진양공업, 웨더뉴스 등 3곳에 불과하다.
물론 이는 날씨정보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여전히 부족한 탓이다.
그래서 김 사장은 “정부가 나서 기상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기상청의 예보 적중률은 85%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상청이 좋은 정보를 내놓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기상을 예측해 시스템을 만들고 정보를 활용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재해가 터진 뒤에 사후보고용으로 기상정보를 사가는 실정이죠. 어떤 방법으로 기상정보를 활용해야 할지도 모르고, 대개는 활용할 생각도 안 합니다.
태풍 한 번만 와도 수천억원의 피해가 오는데, 그 100분의 1만 투자해도 투자금의 100배는 벌 수 있습니다.
” 그래서 김동식 사장은 최근 출범한 ‘기상산업진흥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기상산업을 활성화시키고자 기상청과 민간예보사업자들이 손을 잡고 만든 재단법인이다.
지난 8월5일 창립총회를 마쳤으며, 초대 원장은 봉종헌 옛 기상청장이 맡았다.
“우선은 기상정보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관련 사업을 시작하려는 업체들의 창업보육도 지원할 생각이고요. 활용 가능한 기상정보를 민간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중간다리 역할인 셈이죠.” 올해부터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도 확대했다.
8월 초부터는 휴대폰으로 해당 지역 맞춤 날씨를 제공하는 모바일 날씨정보 서비스를 이동통신 3사를 통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날씨 관련 제품들을 판매하는 e쇼핑몰 날씨백화점 www.weathershop.co.kr을 통해 가정에서 소품으로 활용 가능한 제품들도 판매 중이다.
“앞으로 날씨는 더욱 예측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외국에선 실적 부진을 날씨 탓으로 돌리는 CEO가 가장 무능한 CEO로 꼽힐 정도입니다.
‘비가 오나 보다’ 하고 기다릴 게 아니라, 정보를 적극 활용해야죠. 날씨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이면 한영호(47) 사장의 휴대폰은 연신 불이 난다.
너나 할 것 없이 전화를 걸어 언제쯤 비가 그치겠느냐는 둥, 오후에 필드에 나가도 되겠냐는 둥 캐묻는 탓이다.
모두가 한영호 사장의 독특한 사업 아이템 덕분이다.
한영호 사장은 기상관측장비 제조업체인 진양공업 www.jinyangind.com을 운영하고 있다.
주력 제품은 자동기상관측장비(Automatic Weather System·AWS)로, 삼각형 타워에 풍향·풍속·온도·강우량 등을 자동으로 측정해 해당 정보를 컴퓨터가 실시간 분석·제공하는 기기다.
기상청이 사들여 운영하는 400여곳을 포함해, 전국 600여곳에 AWS가 설치돼 각종 기상상태를 신속히 분석하고 있다.
이 밖에도 항공관측, 이동관측, 고층 및 시각관측장비 등을 비롯해 각종 센서류와 시험장비까지 생산한다.
진양공업은 현재 방위산업체로 분류돼 있다.
첫 출발 때 맺은 군(軍)과의 인연 때문이다.
진양공업이 처음 문을 연 것은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75년. 날씨정보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하던 당시, 부친인 고 한규승 사장이 첫 삽을 떴다.
당시 민간에선 풍선을 띄워올려 기상을 측정하는 고층관측장비를 사용했는데, 군대에서도 마침 탄도측정용으로 이 장비를 활용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외산 제품 일색이던 고층관측장비를 국산화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창업자인 한규승 사장은 회사를 설립했다.
사진:박미향 기자 blue@economy21.co.kr
도약의 계기가 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던 서울올림픽 당시 각 경기장의 기상 변화를 측정하는 AWS를 자체 기술로 개발해 제공하면서 안팎으로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진양공업은 국내 유일의 종합 기상관측장비 제조업체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상관측장비가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탕을 사듯 누구나 사서 쓰는 제품은 아닌 터. 10여년간 영업을 하다 보니, 수요가 곧 한계에 부딪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진 IMF 외환위기 때는 문을 닫기 적전까지 사세가 기울어지기도 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해외 시장에서 답을 찾기로 했습니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노크하기 시작했는데요. 제품 특성상 민간인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구매하는 사례가 많아서, 계약의 진척도가 생각처럼 빠르지 않더라고요. 몇 년을 고생했더니,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수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이렇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이라크와 터키 등에 잇따라 제품을 수출했다.
이라크에선 자이툰 부대의 파병 결정에 앞서 아르빌공항에 기상장비를 납품하기도 했다.
올해엔 인도와 중동 지역까지 수출길을 넓힐 생각이다.
진양공업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각종 기상관측 장비를 종합 생산하는 곳은, 세계 최대 생산업체인 핀란드의 바이셀라와 더불어 진양공업이 거의 유일하다.
판매하는 제품도 100% 국산 기술로 만들어진다.
관측장비는 신속 정확히 정보를 관측해야 하고 고장도 잦아선 안 된다.
최근에는 기상관측장비도 속속 디지털화하면서 관측의 정확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관측장비는 대개 외부에 노출돼 있어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해도 금방 고장 나고 만다.
이 때문에 물건을 파는 일 못지않게 사후서비스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진양공업이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진양공업의 자랑거리는 신속 정확한 관측능력, 이른바 ‘1분 관측’이다.
전국 600여곳 관측장비로부터 기상정보를 수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10초에 불과하다.
여기에 분석시간 20여초를 거쳐 최종 정보를 다시 분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50여초. 1분여 만에 기상정보를 수집, 재분배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사진:박미향 기자 blue@economy21.co.kr
판매 후 관리도 이에 못지않게 철저하다.
“사업 초기엔 장비 유지율이 50%가 채 안 됐어요. 설치하고 나면 절반 이상이 낙뢰로 멈추거나 통신장애 등의 고장을 일으켰죠. 지금은 유지율이 98%가 넘습니다.
낙뢰 예방대책이 마련된 데다 국내 통신 인프라가 강해진 덕분이죠.” 이런 장점을 내세워 진양공업은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노하우까지 일괄판매 방식으로 수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수출이 확대되면서 지난해엔 사옥도 새로 지었다.
“한번 주문하면 규모가 크기 때문에 바이어들이 계약에 앞서 국내에 들어와 제품을 미리 확인하는데요. 30년 된 낡은 건물 탓에 제품 신뢰도까지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큰맘 먹고 지난해 새 건물을 지었죠.” 덕분에 몇 년간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며 한영호 사장은 엄살을 떨었다.
한영호 사장 또한 날씨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지금의 분위기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
“이 분야 또한 부가서비스가 많습니다.
단순히 제품만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관련 소프트웨어도 만들어야 하고 제품 교육도 병행해야 하죠. 우리도 날씨정보를 제공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는데요. 고객들이 정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품질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기상청에서도 최근 기상산업 1조원 시대를 목표로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하니, 일반인의 관심만 보태진다면 산업 활성화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 사진기자(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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