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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명품 빵’으로 승부 기린, 제2창업 깃발
[커버] ‘명품 빵’으로 승부 기린, 제2창업 깃발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5.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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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시련 딛고 올해 흑자 전환 목표…제빵 의존도 낮추고 제빙·제과류 비중 늘려 동물원에서 만나는 목이 긴 기린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기린(麒麟)은 사슴의 몸에 말의 발굽, 소의 꼬리에 긴 뿔을 이마에 단 상상 속의 동물로 용·봉황·거북과 함께 4대 영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우리네 가슴속에 언제나 행복과 희망을 주고자 하는 식품회사 기린의 판타지를 담은 동물로, 얼핏 들어도 썩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충청권 위, 서울과 수도권을 맴돈 사람들에겐 식품회사 기린이 다소 낯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부산·영남권에서 삶의 터전을 닦아온 이들에게 기린이란 기업은 상상 속 동물이 아니라 동물원의 기린처럼 친근하다.
1969년 창업 이래 36년 동안 줄곧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한귀퉁이에 터를 닦고 영남권에서 소박하고 맛난 먹을거리로 서민들의 애환을 함께 달래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엿한 종합식품회사로 자리 잡은 기린이지만, 첫출발은 우리네 역사의 서글픈 페이지와 함께였다.
진절머리 나는 가난과 끝모를 배고픔을 털어내는 일이 지상과제이던 60년대 끝자락에서, 당시 ‘삼립식품’이란 이름으로 양산빵 시장을 두드리면서 기린의 주방은 첫 영업을 시작했다.
36년 기린 역사의 첫 장이었다.
대표적 식품회사에서 부실기업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건, 당시만 해도 똑같은 이름의 ‘삼립식품’이 우리나라에 2개 있었다는 점이에요. 다들 알고 계시는 지금의 삼립식품이랑 우리 기린의 전신인 삼립식품이죠. 지금으로선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당시엔 그런 일이 흔했더랬어요.” 병아리 직장인으로 입사해 기린 전체 역사의 꼭 절반인 18년을 보냈다는 김영근 마케팅팀장은 “지금도 가끔 삼립식품이 없어지고 기린만 남은 걸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추억에 젖는다.
사진:기린제공
헷갈릴 만도 하다.
회사는 둘이었지만 ‘삼립빵’은 하나였다.
“회사 이름도 같다 보니, 두 회사 경영진이 꽤나 친했던 모양이에요. 만드는 회사는 달라도 ‘삼립빵’이란 브랜드는 같이 사용하기로 했다더군요. 그 대신 지역을 나눠, 충청 이북은 저쪽 삼립식품이, 대구 이남은 우리 삼립식품이 삼립빵을 공급했어요. 그러다 81년 우리가 사명을 바꾸면서 지역 분할도 자연스레 끝난 것입니다.
”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회사 문패를 바꿔 단 뒤로는 한동안 일사천리였다.
82년 ‘본젤라또’ 아이스크림 생산과 베이커리사업 진출, 서울사업본부와 식품연구소 발족, 수원공장 준공과 쌀과자 생산에 이은 기업공개까지 8년여 동안 멈출 줄 모르고 위로 치솟았다.
석탑산업훈장과 환경배출 모범업소 선정 등 상복도 뒤따랐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는 동안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시련은 기린을 조금씩 적셨다.
으레 다른 기업들이 그랬듯, 욕심이 화근이었다.
고도 성장의 끝물을 타고 ‘기린건설’이란 자회사를 만들며 건설업에 뛰어든 것이다.
식품업 박사가 건설업에서 통할 리 없었다.
식품사업에서 얻어들인 수익이 신규 시설투자나 직원 복리후생에 투입되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엉뚱한 곳에 새나갔다.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사진:박미향 기자
“93년부터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하더니 95년부턴가 하락세로 돌아서더군요. 그러다 IMF가 닥친 97년 말, 기린건설이 결국 부도가 나고, 그 여파로 본사까지 하루아침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입사 당시만 해도 급여나 복지 면에서 부산 지역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잘나가던 회사였는데….” 직원들의 마음에 진 그늘은 생각보다 짙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혹독한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부도 직전 1800여명에 이르던 직원들은 수차례 구조조정을 거쳐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마저도 힘에 부쳐, 회사가 통째로 인수합병(M&A)시장에 나오기도 했다.
기업사냥꾼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매각 차익만 노리려는 사냥군들 손에서 회사가 살아날 리 만무했다.
적자 폭은 끝을 모르고 커져만 갔다.
1년이 멀다하고 경영주가 바뀌었다.
신규 투자는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고, 직원들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새 선장 취임, 대대적 혁신으로 흑자 전환 옛 영광을 품고 스러져 가던 기린을 되살리겠다고 나선 이는 뜻밖에도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기업이었다.
한때 30대 기업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무리한 부동산사업 확장으로 침몰하고 만 옛 거평그룹의 경영주들이 주인으로 있는 서현개발이 그 주인공이었다.
지난해 말 기린의 지분을 인수한 서현개발은 올해 3월, 계열사였던 대한중석 이용수 전무를 기린의 신임 사장으로 앉히면서 향토 중견기업 재건에 시동을 걸었다.
“식품사업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던 터에, 기린의 회생 가능성을 보고 3년여 준비 끝에 인수하게 됐다”는 것이 회사측이 밝힌 인수 이유였다.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러다 제2의 거평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부산 지역 알짜배기 터에 위치한 공장 부지가 탐나서 인수했다는 둥, 제과·제빵업은 접고 부동산사업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둥, 추측과 루머가 난무했다.
이용수 신임 사장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낡은 틀을 깨고 직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했다”고 이용수 사장은 당시의 절박한 심정을 회고했다.
무기력에 빠진 회사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게 시급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취임과 함께 가장 먼저 내건 것이 이른바 ‘11대 개혁과제’였어요. 내부적으로 바꿔야 할 과제 11가지를 부문별로 정해 실천하자는 의지의 표현이었죠. 쉽게 말하면 건강한 마음으로, 활기찬 직장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만들어 성과를 극대화하자 이런 건데…. 뭐 한마디로, 잘 먹고 잘 살자 그거죠, 허허.” ‘제 식구 감싸기’에도 적극 나섰다.
“여유도 없고 줄 것도 없는데, 뭐 딱히 할 게 있나요. 그저 현장을 자주 방문해서 식구들 얘기 듣고, 같이 토론하고, 격의 없이 얘기하고, 작은 거라도 챙겨주고 하는 것이죠. 그때까지 줄여라, 아껴라, 하지 마라, 뭐 이런 얘기에 익숙하다 보니 좀 더 잘하자, 더 많이 팔자, 이런 얘기조차 생소해하던 게 공장 분위기였어요.” 신임 이용수 선장이 방향타를 잡은 지 6개월. 주위의 삐딱한 시선과 달리 ‘기린호’는 점차 제 항로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회계장부엔 어느덧 희망의 파란줄이 하나 둘 늘어나고, 직원들의 주머니도 조금씩 제 부피를 찾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사기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김영근 팀장은 바뀐 분위기를 전한다.
“무엇보다 목표를 심어주고, 이를 달성하도록 독려하는 스타일이 믿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항상 직원들을 다독이고, 신규 투자나 직원 복리 향상에도 굉장히 적극적이고요. 사실 97년 부도가 나면서 급여나 복지 면에서 모든 게 동결돼 있었어요. 경쟁사와 비교해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죠. 신임 사장님이 부임하면서 이 간극도 좁혀가는 중입니다.
” 결실은 판매 성적표가 말해 준다.
지난해까지의 만성 적자는 올해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될 조짐이다.
올 상반기 흑자 전환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는 850억원 매출에 20억원의 수익을 거머쥘 전망이다.
남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기린이 희망으로 도약하는 순간이다.
사진:기린제공
“기능성 식품으로 차별화할 것” 현재를 추스리고 나니, 미래를 준비할 차례가 왔다.
다시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새로운 먹을거리를 비축할 시간이 온 것이다.
이를 위해 이용수 사장이 선택한 것은 ‘명품 전략’이었다.
경쟁 제품보다 건강에 좋고 맛있는 다기능 식품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명품이란 게 굳이 비싸고 희귀한 게 아니며, 건강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맛있고 싼 제품이 결국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것”이란 이용수 사장의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 출발로 선보인 게 ‘기능성 식빵’이다.
기린은 최근 바이오 벤처기업 오스코텍과 손잡고 뼈의 성장을 돕는 물질인 ‘SGA’가 함유된 식빵 2종류를 선보였다.
제과·제빵류에 건강에 이로운 물질을 첨가한 기능성 식품으로, 제빵업계에선 처음 시도된 것이다.
산학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급변하는 식생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내 연구소의 기술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전문기관과 공동 연구 개발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지난 6월 말 경남대학교와 산학협력을 맺었으며, 2~3곳의 국내외 전문 기관과도 협력을 위한 최종 사인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미뤄 왔던 설비투자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금의 반여동 6천여평 공장을 2007년까지 부산 신도시인 정관산업단지로 이전하면서 최첨단 시설에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금의 반여동 터는 주변 개발 추세에 발맞춰 주거용 아파트로 개발해 회사 수익에 보탤 생각이다.
제품 다각화를 위한 설비 확충도 병행키로 했다.
아이스크림류를 주로 생산하는 지금의 수원공장에 모두 70여억원을 들여 최신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공장 규모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제빵류 의존도를 낮추면서 제빙·제과류 비중을 늘려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린측은 기대하고 있다.
카테고리
기린을 몰라? ‘쌀로별’, ‘본젤라또’는 들어봤니?
기린의 사업부문은 크게 제빵·제과·제빙부문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제빵부문으로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제과부문이 35%를 차지하며, 제빙부문은 전체 매출의 15%로 가장 비중이 적다.
이 가운데 제과부문에선 ‘쌀과자 전문 기업’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쌀로별’이란 대중적인 브랜드가 있다.
쌀과자 붐과 함께 출시한 이 제품은 수입쌀이 물밀듯 들어오는 요즘에도 국산쌀을 이용한 프리미엄 전략 등을 앞세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콘칩’, ‘뻥소리’나 쿠키부문의 ‘고프레’ 등도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제품이다.
마찬가지로 제빙부문에선 ‘본젤라또’ 아이스크림이 기린의 대표적 브랜드로 꼽힌다.
재미있는 것은,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과·제빙부문은 내로라하는 핵심 브랜드가 있는 반면, 주력 사업인 제빵부문에선 이렇다 할 브랜드가 없다는 점이다.
“애당초 제빵부문에 있어선 브랜드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단팥빵’을 놓고 봐도 제빵업체 어디서나 모두 제품이 나오고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프레시델리 단팥빵’이라고 외쳐봐야 소비자 입장에선 그저 ‘단팥빵’일 뿐이죠.” 그럼에도 효자 상품은 있게 마련이다.
기린의 일등 자랑거리는 ‘프리미엄 사각 토스트’란 식빵이다.
1999년 처음 출시된 이 제품은 초창기엔 큰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지난해 토스트 전문점 붐을 타고 매출이 급격히 증가하며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프리미엄 사각 토스트’ 단일 제품만으로도 1년에 1천만봉지가 팔린다.
제품 1봉지의 소비자가격이 1450원이니, 단일 제품 매출액만 연간 145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현재 국내 토스트 전문점의 70%가 이 제품을 쓴다”고 기린측은 말한다.
이 제품의 인기 비결은 독특한 공법에 있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바로 맛의 비결이다.
이렇게 제작된 식빵은 맛이 쫄깃쫄깃하고, 입에 넣었을 때 촉감이 한결 부드럽다고 한다.
‘이등발효공법’이라 불리는 이 독특한 제조공정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
겨울엔 뭐니 뭐니 해도 ‘호빵’이 식품업계 최고의 전략 상품이다.
샤니·삼립·기린 등 주요 제빵업체들이 앞다퉈 혹한기를 겨냥해 ‘호빵 마케팅’에 벌써부터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린만 해도 이미 30여종 이상의 호빵이 출전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기린측은 “지난해 호빵 마케팅을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 매출 목표보다 150% 초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올해엔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50% 이상 매출을 더 올릴 수 있도록 홍보와 마케팅을 밀어붙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카테고리
기린 연혁
1969년 삼립식품 주식회사 창립 1979년 대구공장 준공 1981년 주식회사 기린으로 사명 변경 1982년 ‘본젤라또’ 아이스크림 생산 개시, 밀탑사업부 신설, 오븐후레쉬 베이커리 분야 진출 1983년 석탑산업훈장 수상, 서울사업본부 발족 1987년 식품연구소 발족, 수원공장 준공, 쌀과자·아이스크림·스낵 생산 1989년 기업공개, 자본금 50억원으로 증자 1995년 경영혁신운동 전개 1997년 기린개발 부도 2003년 자본금 225억원 증자, 화의 탈피 2004년 서현개발에 피인수 2005년 이용수 대표이사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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